25개 원전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정부, 원자력계 특별법 제정·재활용 연구 공감한다는데
20대 이어 21대 국회, 관련 법안 폐기 전망
차일피일 미루다가 미래세대에 부담 줄 수 있어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돼 있는 수조. 10m 물 아래 사용후핵연료가 묶음, 개별단위로 보관돼 있다. 임시보관만 하는 상황으로 오는 2030년께부터 순차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사진= 대덕넷 DB]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돼 있는 수조. 10m 물 아래 사용후핵연료가 묶음, 개별단위로 보관돼 있다. 임시보관만 하는 상황으로 오는 2030년께부터 순차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사진= 대덕넷 DB]

국내에 가동중인 25개 원자력발전소(2024년 2월 기준, 이하 원전) 마다 보관중인 사용후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나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사용후핵연료 처분 특별법안은 여전히 통과되지 못해 20대 국회에 이어 또 다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친원전 정책을 표방한 현 정부 들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연구 예산 마저 줄어들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원자력계에 따르면 국회 계류 중인 사용후핵연료 관련 의안은 4건이고 주로 처리와 보관에 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사용후핵연료 처분 특별법안은 지난번 국회에 이어 또 다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원전에서 사용하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해당 원전내 수조에 임시보관 중이다. 고리와 한빛, 한울 원전은 이미 저장량이 용량의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고리원전은 88.3%, 한빛은 78.7%, 한울은 77.8% 포화율로 오는 2030년께면 더 이상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없게 된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지난 2월 20일 원자력정책연대 출범과 함께 열린 포럼에서 "미국,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 일본, 독일 등은 원전 도입 직후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법제화하고 재처리(현재는 재활용으로 표현) 연구에 들어갔다"면서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나 사용후핵연료 법제화 안건들은 국회에서 논란의 쟁점이 되며 계류와 폐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관련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연구개발 관련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5위의 원전 강국임에도 국내외적 문제로 인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등 지속가능한 원전을 위한 논의는 추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6년 1차 고준위방폐물(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2021년 사용후핵연료(처분)와 기술발전을 감안한 회수가능성을 추가했다. 이는 처분과 반감기 감축 등에 대한 재활용 연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계의 한 원로는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그동안 산업부는 폐기물, 과기정통부는 자원으로 보는 정의부터 달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왔다"면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의 법제화와 함께 에너지 확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재활용 연구개발이 중요하다. 정부계획에도 포함돼 있다면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초부터 사용후핵연료 연구에 참여했던 K 박사와 L박사는 우리나라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연구가 분분한것에 대해 정부의 부처 간, 정부와 국회 간 불통으로 봤다. K, L박사는 지난해 조성경 전 차관이 사용후핵연료 연구분야를 카르텔로 지목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의 무관심이 불러온 사태라고 질책했다.

◇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연구, 일본과 달리 우리는 중단 위기

K박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원전 건설과 함께 1972년 8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연구시설 건립을 위해 프랑스와 협력협정을 맺었다. 원전 가동과 동시에 사용후핵연료 대응방안을 같이 마련코자 했다. 1974년 지금의 원자력연 부지(당시 충남 대덕군 탄동면 덕진리)에 핵연료 가공, 재처리, 방사성폐기물 처리기술을 연구할 대덕공학센터를 세웠다. 원전 운영국으로 정부에서도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대한 인식이 분명했다는 의미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우라늄, 플루토늄 등이 여전히 포함돼 있다. 때문에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핵무기에 사용되는 우라늄, 플루토늄을 분리해 낼 수 있다는 우려에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은 핵비확산조약으로 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있다.

K 박사는 "1974년 인도 핵실험 이후 미국은 카터 대통령 시기 연간 1500톤 규모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완공하고도 핵비확산조약(NPT)을 지키기 위해 가동 허가를 승인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은 우리나라, 프랑스, 브라질 등에도 압력을 가했다. 우리나라는 고리2호기 건설 차관을 받는 조건부로 모든 연구개발을 포기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연구를 지속했다. K박사는 그 비결로 원자력의 중요성을 인지한 과학자와 정치인의 노력을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미국을 설득한 정치인의 역할이 컸다고 꼽았다.

K 박사는 "일본은 1974년 재처리 시설을 완공하고 프랑스의 재처리 기술을 도입해 미국의 조건부 승인하에 우라늄을 넣고 시운전까지 했다. 일본의 원자력 아버지로 불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수상의 역할이 컸다"면서 "우리는 대통령의 혜안으로 시작했지만 정권 문제 등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미국의 통제 하에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연구개발을 하지 말라는 중단 지시에 따라야 했다"고 덧붙였다.

◇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로 선회했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적 대안으로 꼽히는 파이로프로세싱. 국내에서는 연구진에 의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사진= 대덕넷DB]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적 대안으로 꼽히는 파이로프로세싱. 국내에서는 연구진에 의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사진= 대덕넷DB]

그렇다고 연구진이 사용후핵연료 연구개발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K, L박사는 원전 운영국으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은 필수라는 생각에 주요과제를 하면서 연구의 끈을 이어왔다. 1982년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아닌 재활용 연구가 거론된다. 우라늄 자원은 한정되고 사용후핵연료가 쌓이면서 재활용 필요성을 미국 정부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거기에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별개라는 논문도 나오면서 탄력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가 상당히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정권 교체 등 여러 문제로 사용후핵연료 연구가 중단됐다가 1997년에서야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을 선택한다. 

K 박사는 "연구진은 미국과 협의를 통해 협력연구 계획을 제출했다. 이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이미 협의를 했음에도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수시로 반복됐다"면서 "재처리 연구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해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제한했지만 파이로프로세싱은 두 원료를 분리하지 않는다. 원전 운영국에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원자력연 연구진은 1997년부터 24년간의 연구와 실증 끝에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국내에서는 기술 타당성을 입증할 시설이 없어 미국의 핫셀에서 공동연구를 하며 'JFCS 10년 보고서'를 통해 기술의 적정성까지 입증했다. 또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소형원전과 연계한 기술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부분도 관련 법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K박사는 "지금 우리는 핵연료 수급 안정성, 자원 지속성이 없는데 원전은 계속 가동되고 있다. 대안을 정부에서 마련해야 하는데 정부도 국회도 이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다. 우려된다"고 안타까워 했다.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용후핵연료 연구는 명맥만 이어가는 정도다.
지난  2월 21일 대덕특구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사용후핵연료 연구에 대한 질문에 주한규 원자력연 원장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예산이 삭감돼 인력이 줄었다"면서 "현재 미국과 실제 원전에서 사용된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재활용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원자력연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진 이종호 장관은 인공지능과 데이터 센터 등이 급증하면서 늘어나는 전력수요 대안을 원자력에서 찾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는 언급했지만 재활용 연구개발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핵연료 주기는 정련과 변환, 가공 후 중수로와 경수로 원전에서 연료로 사용하고 그냥 원전에 임시저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현재 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어렵게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자력진흥위와 고준위방폐물관리위 간 논쟁이 지속되면서 법안 마련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용어와 명분 싸움은 안된다. 영구처분을 추진하면서 대안 기술을 같이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부처간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분 특별법이 제정되고 처분을 위한 연구와 부피, 독성을 줄일 수 있는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현재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한미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내년 연말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예산이 삭감된 것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아직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법안은 없지만 내년말 결과 이후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다만 한미원자력협정 등 조정해야할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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