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한의 음악이야기] 바이올린 만들기

김양한 교수는 소리의 가시화(sound visualization)와 소리 그리기(sound manipulation) 분야의 개척자로서 이 공로로 미국 음향학회에서 수여하는 Rossing Prize를 2015년 수상한 이 분야 석학으로 잘 알려진 학자 입니다. 이 분야를 개척하게 된 것은 온전히 그림 감상 취미가 준 선물이라 합니다. 우연히 시카고 미술관에 있는 조르즈 쉐라가 점묘법으로 그린 “파리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그림을 보고 모든 소리가 점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발전시켜 sound camera, sound ball 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림감상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안내자가 된다는 아이디어로 "공학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많은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그림과 음악이 어떻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지 그만의 독특한 경험에서 우러난 길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김 명예교수가 1990년 경에 바이올린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알기 위해 실험에 사용한 바이올린. 가로, 세로로 나 있는 선이 만나는 점마다 두드려서 나는 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이용해 공간으로 펼쳐 나가는 소리를 비디오로 영상화한 바 있다. [사진=김양한 KAIST 명예교수] 
김 명예교수가 1990년 경에 바이올린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알기 위해 실험에 사용한 바이올린. 가로, 세로로 나 있는 선이 만나는 점마다 두드려서 나는 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이용해 공간으로 펼쳐 나가는 소리를 비디오로 영상화한 바 있다. [사진=김양한 KAIST 명예교수] 
학생들이 바이올린을 만들고 연주하면 어떨까? 공학적인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이 해 보는 것이 최고다. 도전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부여하면 학생들은 재미있어한다. 악기를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아주 매력적이다. 용기를 내어 첼로를 하시는 교수님과 만났다. 이야기했더니,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너무 복잡하고 정밀한 작업이에요!'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힘들다는 것은 무엇인가 할 만한 일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우선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바이올린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17세기 18세기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지역의 현악기 제작 명가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개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는 2014년 경매에서 약 1600만 달러에 낙찰된 1741년 산 과르네리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2011년에 약 1590만 달러에 팔렸다 한다. 이런 고가의 바이올린을 개인이 소장한 경우는 드물다. 재단 등이 소장하고 있다 우수한 연주자에게 재단이 대여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약 1100개 정도가 만들어졌는데 현존하고 있는 것이 약 600개 정도라 한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애호하는 바이올린이기도 하다. 정경화는 3개의 명품 바이올린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라디 바리우스 해리슨(1693년산): 이 바이올린은 부모님이 한국에 남아있던 집을 팔아서 샀다 함, 과르네리 'ex-쿠벨릭' 그리고 다른 과르네리 'ex-로데' 등을 사용했다 한다. 검색해 보면 요새는 주로 과르네리를 쓴단다.

좋은 바이올린은 무엇인가?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좋은 소리는 무엇인가? 애매한 질문이다. 과학적인 해답을 찾기 어렵다. 좋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좋은 바이올린이란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를 잘 내어 주는 바이올린이라 할 수 있다. '잘 내어 주는'이란 말 속에 좋은 바이올린의 정의가 숨어 있다.

파가니니가 좋아하던 과르네리 델 제수 캐논은 캐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듯이 파가니니가 열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아주 잘 소화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라 한다. 크게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평가에 우선 주목해 보자. 비슷한 크기의 바이올린이 소리를 크게 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이올린 상판(윗판)을 많이 진동시키는 것이다. 같은 활(바이올린 연주 활)의 문지르는 힘에 대하여 큰 진동을 내기 위해서는 상판이 보다 얇아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얇게 할 수 없다. 내구성 문제도 있고 활의 움직임을 하판(뒷판)에 전달하고 동시에 상판에 전달하는 바이올린 소리 전달의 매우 정교하고 중요한 브릿지와 사운드 포스트와 잘 어울리는 특성을 가져야 한다.

바이올린 브릿지와 사운드 포스트는 모든 서양 현악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바이올린 구성 요소인데 매우 민감한 부품이다. 이 두 형제는 바이올린 현(줄)의 떨림을 정교하게 효과적으로 뒷판과 상판에 전달하여 원하는 소리를 내는 현과, 두 판의 전달자이다.

브릿지 모양을 보면 매우 복잡하다. 멋을 낸 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 계산을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브릿지는 여러 개의 구멍을 예술처럼 가지고 있다. 이 구멍들의 배열과 크기에 따라 전달하는 힘의 정도가 주파수별로 다르다. 활과 바이올린 통의 대화를 정교하게 이끈다.

우리 악기의 가야금에서 사용하는 안족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안족의 특징은 연주자가 소리를 들으면서 조정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거문고는 고정식이다. 큰 판(괘)으로 되어 있다. 가야금과 달리 왼손으로 줄을 위에서 아래로 밀면서 오른손으로는 술대라는 대나무 막대로 줄을 치거나 뜯는다. 가야금에 비해 소리가 장대하고 힘차 다. 아마도 서양 악기와 혼합된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면 새로운 Kpop이 될 수 있다.

어려우니 재미있을 것이고 학생들이 도전하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한 학기에 전문 제작자처럼 나무를 고르고 말리고 또 절단하고 등등의 기본부터 할 수는 없는 것. 이리저리 알아보니 중국에서 '백통'이라는 바이올린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든다 한다.

백통은 바이올린의 중간 제품이다. 이 것을 정교하게 해체하여 학생들에게 공급하였다. '와!' 학생들 반응이 뜨겁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 바이올린을 만들어요!' 첫 수업 시간은 성공! 동기 유발은 최고의 교육 방법이다. 3명의 학생에게 해체된 바이올린 1세트씩. 그다음은 강의! 재미 없을 것 같은 바이올린 음향 강의를 학생들이 열심히 듣는다. 소리는 어떻게 나고 어떻게 전파되고 어떻게 듣는가, 이 세 가지를 가르친다. 첫 번째,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학부 4학년과 대학원에서 하는 '음향학' 강의와 아주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이 학생들은 학부 학생들! 일반 물리학을 수강한 학생도 있지만 아닌 학생도 있고, 수학에 대한 이해도도 물론 다 다르다. 공통은 오직 바이올린 소리 내는 것에 매우 큰 관심이 있다는 것.
 

김 명예교수가 바이올린 제작 코스에서 만든 바이올린 중 하나. 2000년도에 개설된 강의로 기억한다. 오래 되어서 브릿지가 없어지고 줄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않지만 지난 이야기를 잘해주고 있다. [사진=김양한 KAIST 명예교수]
김 명예교수가 바이올린 제작 코스에서 만든 바이올린 중 하나. 2000년도에 개설된 강의로 기억한다. 오래 되어서 브릿지가 없어지고 줄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않지만 지난 이야기를 잘해주고 있다. [사진=김양한 KAIST 명예교수]
각자 소리를 내어 보기로 했다. 집단지성은 대단하다. 손뼉도 쳐보고 휘파람을 불고 책상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고 책을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수업은 온통 소리의 잔치! 그다음 귀를 막고 소리를 들어 보게 하고, 문 뒤에서 들어 보게 하고 등등. 소리의 세 가지 요소, 발생, 전파, 듣기를 체험한 학생들은 소리가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각자 요리 방법에 따라 다른 소리가 식탁에 오른다.
 
바이올린은 소리를 어떻게 내나요? 발생은? '예! 활로 줄을 문질러서 냅니다.' 활을 밀면 줄이 진동하고 이 진동이 바이올린 몸통으로 전해 집니다. 줄의 떨림은 예쁘고 신기한 모양을 한 브리지(브릿지)를 흔들고 다시 사운드 포스트(sound post)를 길이 방향으로 진동하게 해서 바이올린 뒷 판을 진동시킵니다. 브릿지는 마치 흔들바위처럼 좌우로 춤을 추면서 상판을 정교하게 흔드는 것 같아요. 학생들의 표현이 더 좋다.

상판의 진동과 뒷판의 진동 그리고 곡선 형태 수직 엽판은 두 개의 진동을 떠 받기도 하고 전달하기도 하면서 바이올린 전체에서는 떨림의 잔치가 벌어진다. 줄(현)을 지탱하고 있는 지판(finger board)이 모든 진동 잔치의 버팀목으로 든든하다.

바이올린 제작의 경험이 풍부한 분을 외부에서 모셔 왔다. 다행히 학교에서 신기한 코스를 위한 지원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백통의 앞판(상판)과 뒷판을 잘 떨리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 두 개의 판의 두께를 조정하기 위한 연장, 작은 손대패(손가락 대패)가 필요하다. 다행히 중고 제품도 구할 수 있어 경비 절약 성공! 학생들은 친구들, 선배들의 자문도 구하고 상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하고, 어떤 기발한 학생은 한지로 바이올린 백통을 만들어서 실험하기도 하고. 16주 중 14주는 온통 넘치는 질문과 도움 요청 등으로 시장에서 사는 느낌, 그러나 살아 있는 대화들, 토론, 설익은 냄새, 용기, 아이디어로 넘쳐 났다. 숨 가쁜 산고 끝에 일단 바니스 공정 전까지 완료!

소리를 들어 보니 내 귀엔 신통치 않았다. 실망으로 끝나기엔 워낙 출발이 요란했다. 전문 연주자들이 하는 이야기, 바이올린 칠, 바니쉬가 소리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것. 소리는 까다로운 미인이다. 바니쉬를 몇 번 어떤 두께로 하여야 하는가는 장인의 몫이라 하는데 학생들은 장인과는 아주 먼 동네에 사는 까까머리. 10대의 바이올린이 있으니 일단 2번 바니쉬하고 들어보고 그 중 1대를 보관하고 4번하고 다시 들어 보고 하는 식으로 여러 겹의 바이올린 바니쉬가 소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했다. 시간은 흐르고 학생들은 흥미 잔치에서 인내가 필요한 학습 과정으로 급속히 들어갔다. 3명 중 한두 명은 슬슬 게으름을 피우고 등등. 평가에 대한 것을 팀워크, 즉 팀 단위로 학점을 준다 한 것이 실책인가? 학생들의 도전 정신, 쇄신이 필요하다.

바이올린을 왜 만드나? 왜 학생들이 이 새로운 강의에 흥미를 느꼈는가? 부터 다시? 생각의 원천을 찾아가자. 그 곳에서 갈증을 풀자! 동기 유발!

바이올린 만들기의 키워드는 바이올린이다. 왜 바이올린인가? 음악이라는 영역과 공학/과학이 만나는 작지만 큰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 속에 전기/전자, 물리학, 재료, 기계공학이 모두 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또 같은 모습으로 있다. 하나이면서 여러 개다. 하나이나 모두 다르다. 하나의 목표, 아름다운 소리 만들 기에 모두가 손을 잡고 있다. 그래서 학부 과정 학생들에게 좋은 유혹이다. 그리고 수업이다. 일단 유혹에는 성공하였다. 모두 열심히 참여하여 왔으니까. 그러나 담당 교수도 처음 가는 길이 서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수업의 전문성과 긴장감이 시간이 갈 수록 떨어진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관련 분야의 필요한 외부 강사를 적절히 모셨다. 바이올린 연주자, 제작자 등. 그러나 담당 교수의 지휘가 미숙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하니까? 처음 하는 것에는 약점만 있나? 아니다. 처음 하니 겁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혹시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 된다. 이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공감해야 한다.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토론하니 서로 마음 부담이 조금 덜어지고, 솔직해지니 수업은 재미를 찾고 생동감도 찾았다. 마지막 느낌표는? 연주회를 하자는 것! 만들었으니 우리가 배워서 좋은 소리를 들려주자는 것! 바이올린 연주자를 모시고 몇 회 연주에 대한 강의를 부탁했다. 다행히 바이올린 연주를 할 줄 아는 학생이 몇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이라이트는, 그래 입학식! 학교에 부탁하여 우리가 만든 바이올린으로 입학식 때 간단한 연주를 들려 주자고! 겁 없는 교수와 학생들이 일을 냈다. 학부형들은 박수! 박수! 입학생들은 근사한 꿈을 꾸는 듯하였다. 대성공!

아쉬운 것은 이 대단한 강의가 단 한 번으로 끝났다는 것. 이유는 담당 교수가 너무 부족하여 에너지 고갈 상태로 갔고, 학교도 이 비싼 강의 지원을 힘들어했기 때문. 그러나 좋은 강의에 대한 대답은 다 나와 있다. 공부하고 해 보고 만들어 보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 공부를 놀이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최고라는 것.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올린 중 하나는 아직도 연구실에 화석처럼 걸려 있다. 언젠가는 소리를 낼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먼 훗날, 이 화석을 발견한 한 열정 있는 교수가 비슷한 교육을 하는 꿈을 꾸어 본다. 화석을 만드는 일도 가치 있다.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지도 모른다.
 

김 명예교수가 직접 그린 바이올린 그림. [사진=김양한 KAIST 명예교수]
김 명예교수가 직접 그린 바이올린 그림. [사진=김양한 KAIST 명예교수]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