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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CEO들의 한탄 "뺏기고 짓밟혀···그래도 희망"

인재 키워놓으면 중견·대기업서 빼가고 떠나고
"가장 어려운 점은 중소기업 보는 여전한 부정적 인식"
"상처도 많지만 창업 철학과 사람 속에서 희망 찾아"
# 5년차 중소기업 CEO. 기업 대표에게 혜택이 더 큰 카드를 신청했다가 담당자에게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이름 없는 중소기업 대표는 믿을 수 없어 카드 발급이 안 된다." 그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이야기했다. 그러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 10년차 바이오 중소기업 CEO. 창업 초기 지방에 위치한 신생기업에 지원하는 인력은 거의 없었다. 학부 출신을 선발해 동고동락하며 지도해서 나름 연구자로 키웠다. 같이 일할만하니 대기업 제의를 거절할 수 없다며 떠났다.


대한민국에서 창업한 중소기업 CEO들의 고백이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만난 창업 기업인들로부터 들은 공통적 애로다. 창업 분야는 다르지만 중소기업 CEO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지 모르겠다.

대덕의 창업기업은 대부분 딥테크 중심이다. 대학과 출연연, 민간연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정도 연구자로 연구개발에 몰두했던 이들이다. 오랜 기간 연구하며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연구성과를 통해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남다른 기업가 정신으로 창업에 나선 CEO들이 많다.

그러나 창업 이후 그들이 겪는 환경은 혹독하다. 우선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중소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국내 기업의 99%,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 근무하지만 사회 전반에 깔린 중소기업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

대덕의 창업기업들은 벤처기업, 혁신기업, 연구소기업 등 기술력,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에서 보는 시선은 '믿을 수 없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중소기업일 뿐이다. 중소기업 CEO들은 대중의 인식 변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 관료, 지원 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출연연에서 근무하다 창업한 S 대표는 "창업하고 논의할 게 있어서 이전에 만나던 지원 기관을 찾았는데 연구자였을 때는 뭐 도와주면 되느냐고 묻던 이들이 표정부터 부담스러워하는 게 보였다"면서 "상품화까지 연구개발이 더 진행되고 있었던 차라 하는 일을 같은데 개인 자격으로 가니 대하는 게 너무 달라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30년 정도 연구개발에 몰두하며 남다른 성과로 존경을 받았던 B 대표 역시 창업 후 모멸감을 경험했다. 대형 매장이 새롭게 오픈하며 카드를 발급받고자 했다.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선 가운데 그의 차례가 됐지만 중소기업 대표 명함을 본 담당자는 일방적으로 자격 미달을 통보했다. 당황한 B 대표는 회사에 대해 설명하려 했지만 담당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는 "담당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하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본인이 알 수 있는 기업이라면 늘상 광고에 나오는 대기업 정도가 아니겠는가"라며 "정부에서 창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기업은 바이오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도 찾을 정도로 기술을 인정받는다. 투자자들도 인정하며 거액을 투자하고 있고 코스닥 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다.

◆ 대기업의 기술, 인력 빼가기는 여전

중소기업에서 인력과 기술을 빼가는 대기업의 행태는 여전하다. 몇 해 전 대기업에서 바이오 분야 기업을 신설하면서 관련 인력 블랙홀이 된바 있다. 대덕의 바이오벤처들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수년씩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 인력을 양성해 겨우 한시름을 놓는 순간, 직원은 연봉과 복지가 더 나은 대기업으로 가겠노라고 통보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서 제시할 수 없는 연봉으로 인력 블랙홀이 됐다.

U 대표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나름 모국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에 민간연에서 근무하다 창업을 했다. 머물던 대덕이 좋아 창업을 했는데 수도권 인력이 내려오지 않더라"면서 "안 오면 내가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인근 대학을 방문해 교수님들에게 요청했다. 박사과정까지 배운 지식, 해외와 국내 경험들을 다 쏟아부으며 애를 썼는데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과 똑같은 조건의 연봉과 복지를 제공하기는 사실 어렵다. 애써 키운 인력이 떠나면 당장 기업에도 애로가 발생한다"면서 "정부에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 근로자에게 복지혜택을 줄 수 있는 지원제도도 다양하게 마련되길 기대한다. 대기업에서도 상생을 외치면서 인력을 빼가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대기업이라면 지속적으로 인력을 양성해 중소기업에서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창업 20년차 P 기업인 역시 공들여 성장시킨 인력이 대기업으로 여럿 이직하는 사례를 봐 왔다. 더 나은 조건을 찾는 그들을 탓할 수 없지만 서운함과 허탈함이 크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는 "신입 직원 때부터 업무는 물론 인생 계획, 가치관 등 인력 양성에 공을 들였는데 결국 떠났다"면서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한다는 것은 기업 이윤 너머 사회적 기여 부분 등이 더 많다. 중소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기술탈취와 대기업 납품 횡포도 종종 일어난다. 자동차 관련 중소기업 CEO는 대기업 담당자의 납품 횡포로 기업 문을 닫을 뻔했던 기억을 전했다. 그는 "담당자가 자신의 실적을 위해 납품 단가를 비정상적으로 요구하는데 우리는 맞출 수 없는 정도였다"면서 "그러는 사이 다른 업체로 거래처를 바꾸면서 우리는 생산해 놓은 제품이 그냥 부채로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회사를 접고 싶었지만 언젠가 세상을 놀라게 할 자동차를 선보이겠다는 꿈이 있다. 그리고 직원들이 있어서 다시 딛고 일어섰다"며 "정부의 정책이 중소기업의 인식 변화, 정말 괜찮은 기업은 대접받으며 자긍심을 갖고 히든챔피언으로 사회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2017년 7월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켰다. 중기부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을 위한 핵심 국정과제로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R&D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렸다. 2020년 중기부의 R&D 예산은 올해보다 3800억원이 늘어난 1조45000억원 규모다.

기업인들은 "기업은 창업하고 성장해 국내외서 경쟁력을 가지며 파급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R&D 지원으로 좀비기업을 양산하기보다는 건전한 창업 생태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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