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기가 찾던 최종도료, 어쩌면 '옻'

[모든 것의 시작, 나노⑬] 더나인칼라, 전통 옻 과학적 성분 밝혀 산업화 개척
옻칠 도료 상품화부터 대전방지·전자파차폐 등 첨단산업 적용도료 개발 완료
"저, 옻 알레르기 있어요. 웃기죠?"
 
국가 연구소에서 25년간 일했던 그에겐 현대 화학이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다.
연구소를 나와 대학에 몸을 담으면서부터 기업을 이끌어 온 18년째 '옻'을 연구했다.
옻을 쫓아 아시아를 누비고, 옻 성분의 모든 분자구조를 과학적으로 밝혀내 객관적인 품질기준을 세웠다.
덕분에 장인의 동굴에서 나온 옻은 예술가의 물감으로 시작해 스텔스기에
 입혀질 새로운 쓰임까지 만났다.
 
물감이 묻어 얼룩덜룩한 가운을 입고 나타난 한종수 더나인칼라 대표는 마침 도료 원액을 생성 중이었다. 한 대표는 공정 확인 겸 설명 차 직원을 불러모았다.

"이 과정이 천연 옻칠을 가공하는 마지막이잖아요. 처음에는 낮은 온도에서 용제를 뽑아내고, 높은 감압(high vaccum)상태로 더 이상 증발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완전하게 뽑아내야 합니다.이것으로 다양한 도료를 만들기 때문에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해요."
 

옻 채취<사진=더나인칼라 제공>옻 채취<사진=더나인칼라 제공>
옻은 옻나무 수액으로 얻는 천연수지다. 굳으면 단단하고, 불과 물에 강하며 썩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기원전 4세기의 칠기가, 중국에선 진시황 무덤 병마총에서 옻칠 갑옷이 발견됐고 일본의 영문명인 '저팬'은 옻칠기를 뜻할 정도로 주 원산지인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애용해왔다.

한 대표는 가내수공 재료로 머물던 옻의 화학구조를 모두 밝혀 옻칠 지도를 만들고, 2013년 천연 옻칠도료 제품군인 '구채옻칠'을 생산 출시했다. 이로써 다루기 까다롭다는 옻을 누구나 쉽게 칠할 수 있도록 대중화시켰다.
 
옻은 산업화를 넘어 첨단화로 달려간다. 한 대표는 옻의 전자파차폐 성질을 극대화해 스텔스(레이더 회피)기나 EMP(전자기기 훼손 전파) 방호까지 쓰이도록 응용연구를 마쳤다.
 
전자파차폐 우수한 옻, 탄소나노튜브 혼합해 스텔스기 도료 가능
 
미군의 전투기 'F-22 랩터'는 모의전에서 한대가 144대를 격추한 전력을 자랑한다. 모의전 참가 조종사들은 "랩터가 눈앞에 보이는데 레이더에도 안 걸리고 록 온(조준 고정)도 안 되는 엄청난 스텔스 능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적의 레이더를 회피하는 스텔스 능력은 현대 무기의 척도다.
 
스텔스기는 레이더 전자파를 흡수하는 탄소나노튜브가 함유된 특수 도료를 쓴다. 그러나 기동 중 도료가 벗겨져 재도색이 필요하다. 또한 탄소나노튜브는 스스로 뭉치는 성질이 강해 분산처리가 필수다. 스텔스 도색은 상당한 기술력과 비용이 따른다.
 
전자파차폐용 옻칠 샘플을 든 한종수 더나인칼라 대표<사진=윤병철 기자>전자파차폐용 옻칠 샘플을 든 한종수 더나인칼라 대표<사진=윤병철 기자>
"옻이 탄소나노튜브와 궁합이 잘 맞아요. 둘을 그냥 섞으면 됩니다."
 
한 대표는 "옻이 탄소나노튜브와 잘 섞이는 구조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2017년 출원한 '전자파 차폐용 옻칠 도료 조성물 및 이의 제조방법' 특허를 통해 옻칠이 전자파차폐 도료로서 우수한 재료임을 입증했다.
 
초경량·고강도에 전자파차폐 성질까지 갖춘 옻은 스텔스기와 무인자동차, EMP 차폐막 등 산업과 군사용 코팅재로 가능하도록 선행연구를 마쳤다. 

한 대표가 한밭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개발한 대전방지용 옻칠도료는 반영구적인 성능을 가지며, 전자파차폐 옻칠 도료의 수준은 표면저항 1x10 –1Ω/cm2, 전자파 차폐율 60dB(99.9999%) 이상 수준에 이른다. 또한 나노융합산업연구조합의 지원사업 'T2B' 도움으로 전자파차폐 소재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옻의 비밀 '우루시올' 화학식 전부 밝혀져 산업화···한국 토종 옻나무 보존해야"
 
옻으로 만든 각종 도료. 우하단은 스위스 회사에서 의뢰한 상온경화용 옻칠 샘플. <사진=윤병철 기자>옻으로 만든 각종 도료. 우하단은 스위스 회사에서 의뢰한 상온경화용 옻칠 샘플. <사진=윤병철 기자>

"2013년 미국에서 열린 '아시아 레커 심포지엄'에 연사로 가 한반도의 황칠과 옻칠을 소개하니, 전 세계에서 온 500여명이 매우 높은 관심을 보였어요. 옻칠은 '검을 현(玄)'처럼 특유의 깊이가 있습니다. 다시금 옻의 저력을 확인했죠."
 
옻칠은 빛을 산란시켜 얇게 칠해도 깊은 색을 보인다. 이런 색상은 화학도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옻칠이 없는 서양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옻은 특이한 광택뿐 아니라 열과 물, 부식에 강하며 썩지 않고 절연의 특성까지 보이는데, 주성분인 '우루시올' 때문이다.
 
우루시올은 카테콜 구조에 긴 불포화 알킬 사슬이 연결된 화학 구조를 갖는데, 이는 옻나무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자구조다. 화공학 박사인 한 대표는 지구상 모든 옻칠 계열의 분자구조식을 규명했다.
 
또한 2013년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옻나무가 자생하는 아시아 일대를 탐방했다. 한국과 일본, 같은 위도의 중국에서 자라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성분이 고품질의 옻칠 재료임도 밝혔다.
 
'때를 맞춰, 얇게 덧칠함'은 그동안 장인들에게 전수되던 옻칠 요령이다. 이는 우루시올이 옻에 함유된 산화효소인 락카아제가 공기 중에 반응해 경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험의 산물이었다. 옻칠은 기상에 따라 건조가 어렵거나 부패하기 쉬우며 옻을 타는 일들이 잦아 까다로운 숙련의 작업을 필요로 했다.

한 대표는 경험으로 전수되던 옻칠의 특수성을 언제든 통제 가능한 과학적 데이터로 만들었고 다양한 기능의 도료로 대량생산했다. 옻이 대중화된 순간이다. 이 가운데서 그는 '황칠'을 특별히 여긴다. 

황칠은 투명한 황색을 띠는 옻으로 일반 옻보다 특효가 강하다. 고대 진시황이나 당 태종, 칭기즈칸 등 황제만이 사용했으며 북경 자금성 내부를 칠한 황금색 도료로도 알려졌다. 현재 황칠나무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서남해안의 난대림에서만 자생한다.

"황칠의 성분분석과 구조를 밝혀내고 정제방법 등 화학적인 연구를 마쳤지만 황옻이 귀하고 수급이 어려웠죠. 옻칠도 황칠처럼 황금색이 나도록 해보자고 시작해 황옻칠을 개발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대표가 직접 탐방 작성한 세계 옻나무 자생 분포지도 <그림=더나인칼라 제공>한 대표가 직접 탐방 작성한 세계 옻나무 자생 분포지도 <그림=더나인칼라 제공>

옻칠 주성분인 카테콜의 화학구조. 한 대표가 모두 밝힌 완성형이다. <사진=더나인칼라 제공> 옻칠 주성분인 카테콜의 화학구조. 한 대표가 모두 밝힌 완성형이다. <사진=더나인칼라 제공>
 
현재 더나인칼라가 생산하는 브랜드 '구채옻칠'은 수성 물감부터 금속용 우레탄형, 프린트 잉크까지 도료 전 분야를 망라한다. 한 대표는 "옻칠의 대량생산은 옻칠 공예의 문턱을 낮추고 옻 문화의 대중화를 앞당긴 의미가 있지만, 더 큰 효과는 환경 안전"이라고 자평했다.
 
인공 화공약품을 쓰는 방부목이나 산업용 페인트는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독성이 내재해 있다. 옻칠은 항부식성 등 산업에서 요구하는 요건에 맞으면서 환경친화적인 도료다.
 
한 대표는 "현재 유통되는 옻 도료는 중국산이 대부분인데 성분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쓰인다"며 "가장 품질이 뛰어난 토종 한국산 옻나무 생태가 교란되기 전에 품종 보존과 양식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30년간 쌓아온 연구성과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단순한 사업이라 여겼으면 여기까지 못 오고 포기했겠지요. 옻은 우리 중 누군가라도 반드시 연구해야 할 한반도 미래의 농사이자 하늘이 한민족에게 준 선물입니다. 자연을 존중하는 화학을 옻을 통해 이뤄 보일 것입니다."

상호 '더나인칼라'는 일곱색깔 무지개색에 옻색과 황칠색이 더해진 아홉색깔 천연 색상을 뜻한다. <사진=윤병철 기자>상호 '더나인칼라'는 일곱색깔 무지개색에 옻색과 황칠색이 더해진 아홉색깔 천연 색상을 뜻한다. <사진=윤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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