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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출연연 연구자의 '한숨'

경주와 포항 지진 연구 결과 책자 '한반도 동남권 지진' 배포에 대해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꽤 오래 근무해 온 연구자가 한숨을 푹푹 쉬더니, 힘들다는 말을 연발한다. 연일 계속되는 더위에 '누군들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푸념으로 듣고 넘기려했다. 그런데 그가 불쑥 '출연연의 미션과 역할'을 묻는다.

"출연연의 미션은 무엇일까. 국민들은 알까.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관 홈페이지를 다시 보라"고 너스레를 떨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질문의 퍼즐을 맞춰보기로 했다.

이야기는 지난 6월말 그가 근무하는 출연연에서 지진 관련 책자를 배포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정확히는 2016년과 2017년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놀라게 했던 경주와 포항 지진 발생 시기로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경주와 포항 지진(규모 5.8과 5.4)은 우리나라에서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당시 대한민국 전역이 흔들리며 건물 밖으로 뛰어나온 국민들도 다수였다.

인터넷 검색창은 지진이라는 단어로 도배됐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여러번이었다. 그동안 지진안전지대로 알려졌던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이 크게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진앙지였던 경주와 포항시는 건물이 파손되고 사람이 다치는 등 피해가 많았다.

포항 지인에 의하면 지진피해 이재민 중에 아직도 대피소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는 이도 있다. 부동산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평소에 많이 찾던 관광객들은 발길을 뚝 끊은 상태다. 지역경제도 타격을 입었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고민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런 가운데 지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우리나라는 지진 발생시 공식 채널은 기상청에서 맡고 있다. '지진·지진해일·화산의 관측 및 경보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지진 연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담당한다. 지질자원연의 설립 목적에도 '지진·지질재해 및 지구환경 변화 대응 연구개발 등'이 명시돼 있다. 이러한 근거에 따라 지질자원연은 경주와 포항 지진을 분석하고 두 지진을 비교해 지난 6월 25일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책자로 발간됐고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 해 볼 수 있게 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책자는 지진 관련 용어부터 지진 발생시 상황별, 장소별 행동요령을 카드뉴스로 제작, 국민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문제의 발단은 '경주와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을 연구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중대형(규모 6.0) 지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포항 지인에 의하면 포항 시민 중 일부는 '포항 지진이 포항에 들어선 지열발전소가 원인일 수도 있다'는 국내외 발표가 있음에도 지질자원연이 너무 성급하게 책자를 내놓았다고 보고 있다. 그로 인해 지역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몇몇 지역언론에서는 지질자원연의 연구 결과가 '엉터리'라고 부인하는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지질자원연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는 지열발전소가 원인일 수 있다는 다른 발표를 희석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도 서슴지 않는다. 포항시청에서는 책자의 내용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하며 지질자원연에 항의 방문 하기도 했다.

지질자원연 책자에 지열발전소 자료는 빠진게 사실이다. 관계자에 의하면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고 경주와 포항 지진 자체만 연구한 사례와 거리가 있어 넣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지역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민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경주와 포항 지진은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규모다. 전 국민이 불안에 떨었고 과학기술에 기반한 지진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지진안전지대였던 대한민국에 더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은 국내는 물론 일본 학자들도 여러번 해 왔던 바다. 포항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네 탓' 공방이나 지역중심 사고가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더 큰 지진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대응책이나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출연연 연구자의 한숨 섞인 우려처럼 서로를 신뢰하며 준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서로의 힘을 모아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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