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등 연구기관 "보안 문제와 연구환경 저해"
대전시 "일몰제 해제 후 난개발 보다 78% 공원 보호 필요"

현재 진행 중인 도룡동 사거리 인근 아파트 건립과 매봉 근린공원 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를 가정한 모습(아래사진). ETRI 인근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며 연구소 보안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게 아파트 건립 반대를 주장하는 출연연의 입장이다.<사진= 14개 출연연>
현재 진행 중인 도룡동 사거리 인근 아파트 건립과 매봉 근린공원 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를 가정한 모습(아래사진). ETRI 인근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며 연구소 보안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게 아파트 건립 반대를 주장하는 출연연의 입장이다.<사진= 14개 출연연>
대덕연구단지의 허파 '매봉 근린공원' 개발이 정부출연연구기관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으로 알려지며 15개 연구기관이 한 목소리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출연연은 주요 국가 보안시설로 보안의 어려움과 연구환경이 저해된다는 이유에서다.

15개 출연연은 31일 오전 10시30분 대덕특구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대전시의 '매봉 근린공원' 개발안은 도시공원법에 따라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공공 복리 증진에 이바지하기보다 건설경기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출연연에 의하면 매봉 근린공원 개발 계획은 매봉산 35만4906㎡(10만7300평 규모) 부지 중 7만4767㎡(2만2600평, 21%)에 12층 규모의 24개동 450세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나머지 28만0139㎡(8만4700평, 79%) 부지에 체육시설, 조경, 휴양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450세대 아파트가 연구기관 50m 인근에 들어서면 출연연 보안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통 체증, 녹지 훼손 등 연구환경 저해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15개 출연연의 입장이다.

매봉 근린공원 개발 사업이 대덕특구 내에 이슈로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5년 공원으로 지정된 매봉산은 과학동네 관문에 위치, 대덕연구단지의 허파 역할을 해 왔다. 전체 부지 35만4906㎡ 중 국유지와 공유지가 4722㎡(국유지4083㎡, 공유지 639㎡) 뿐으로 사유지(35만0184㎡)가 98.7%에 이르는게 사실이다.

사유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부지를 공원, 도로 등 도시계획 시설로 지정해 놓고 장기간 집행하지 않는 부지인 장기 미집행 부지에 해당된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지자체가 특정 토지를 보상없이 장기간 사적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행위 제한은 사유권 침해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라 유예기간 20년이 되는 오는 2020년 7월 1일 이후 장기 미조성 공원 일몰제 해제로 사유지 개발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공원 난 개발을 막기 위해 2009년 도시공원법 특례 조항을 설립, 공원부지 중 20%를 주거와 상업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민간에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로는 수익성이 없어 건설업체들이 나서지 않으며 민간공원 조성은 흐지부지한 상태였다. 정부는 2015년 1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공원시설을 30% 미만으로 확대했다.

이후 대전시는 매봉 근린공원의 난개발을 막기 위한 사업 추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개발에 강한 의지를 밝혀 왔다. 지난해 3월 매봉 근린공원 조성 도시관리계획을 공고했다.

당초 계획에는 도룡동 사거리 KAIST 교수아파트와 현대아파트, 공동관리아파트 인근에 450여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매봉산 난개발을 반대하는 도룡동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시청 방문 등 항의 집회를 지속하며 대덕특구내 이슈로 부각됐다.

당초 매봉 근린공원 개발안은 도룡동 사거리 현대아파트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안(사진 오른쪽)이었으나 주민 반대로 연구소 옆(사진 왼쪽)으로 계획을 변경 발표했다.<사진=14개 출연연>
당초 매봉 근린공원 개발안은 도룡동 사거리 현대아파트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안(사진 오른쪽)이었으나 주민 반대로 연구소 옆(사진 왼쪽)으로 계획을 변경 발표했다.<사진=14개 출연연>
주민 의견을 반영한 대전시는 지난해 7월 새롭게 매봉 근린공원 개발안을 공개했다. 변경 안은 당초 현대아파트 인근에서 ETRI 옆으로 변경해 아파트 450세대가 들어선다는 내용이다. 민간공원추진예정자는 매봉파크피에프브이로 알려진다. 매봉산에 아파트를 건립하려는 대전시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출연연은 지난해 12월 3일간의 서명을 접수해 1182명의 아파트 건립 반대 서명부를 대전시에 전달했다. 올해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매봉 근린공원 개발 현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또 대덕연구단지 난개발에 반대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입장을 담아 대전시에 공문을 발송한 상태다.

오성대 ETRI 경영부문장은 "주민설명회가 단 한차례만 열린 상태다. 연구기관과 충분한 소통도 없었고 환경 영향 평가 등 제출된 자료도 미비하다"면서 "과학도시 대전시가 대전시민의 자부심은 물론 연구자의 연구환경 특성까지 외면하고 있다. 도시공원위원회를 연기하거나 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국장 역시 대전시의 성급한 결정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도 공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다. 굳이 매입하지 않더라도 임차, 권한 부여 등 다양한 방안으로 국가에서도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대전시가 성급하게 추진하면 소급적용이 어렵다. 대전시가 좀더 고민하며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4개 출연연을 대신해 오성대 ETRI 경영부문장이 연구소 옆 아파트 건립으로 인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14개 출연연을 대신해 오성대 ETRI 경영부문장이 연구소 옆 아파트 건립으로 인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 도룡동 주민간에도 입장 차…대전시 "해제 후 난개발보다 78% 보호"

매봉산 난개발을 반대했던 도룡동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는 개발 찬성과 반대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개발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막연한 소망 보다는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단과 면담을 통해 손기화 주민은 "ETRI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도 보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대안없이 매봉산이 난개발 되는 것보다는 일부 개발로 78% 이상의 공원이 남는 쪽이 적극적 환경보호라고 생각한다"며 입장을 밝혔다.

아파트 건립을 반대 주민은 "매봉산은 연구단지의 관문으로 중요하다. 때문에 무분별하게 연구단지 공원 녹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과학도시에서 연구기관은 중요한 곳인데 바로 옆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연구소를 몰아내는 것과 같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대전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시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2020년 장기 미집행 부지 해제 후에는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전시 내에 16곳 이상이 장기 미집행 부지로 이를 시에서 매입할 경우 2조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민간사업과 우선순위 재정사업으로 할 수 있는 것도 9500억원 규모만 가능해 1조원 이상은 대안이 없는게 사실"이라면서 "지방자치법에 의한 도시공원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권자로 정부에 예산을 신청할 수 없는 구조로 난개발보다 78%의 공원 보존을 선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열린 도시공원위원회는 매봉 근린공원 개발시 비공원시설 축소, 아파트 위치 변경 필요성 문제가 제기되며 오는 2일 재심의 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매봉 근린공원 아파트 건립 반대 15개 출연연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보안기술연구소 ▲국가핵융합연구소 ▲안전성평가연구소 ▲한국기계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기관명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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