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S 현장에서 ⑤ 과학외교를 생각한다]
글 : 김승환 POSTECH 물리학과 교수

필자는 지난 2월 중순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본부와 과학외교센터를 2주간 방문학자로 다녀왔다. 잘 알고 지내던 러쉬 홀트 AAAS CEO와 탐 왕 과학외교센터장의 초청으로 세계 최대 과학자단체 AAAS의 내부 인적네트워크와 다양한 과학진흥 활동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다.

최근 과학외교가 국제관계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과학외교 교류 현장과 맞닥뜨리며 '과연 우리나라 과학외교가 어떤 방향타를 갖고 움직여야 하는지' 그 미래를 고민해 본다.

# 과학외교 장면 1 - 터프츠 대학의 과학외교 행사
과학자는 민간외교관···"국가 특성화된 과학외교 생태계 구축 필요"

AAAS의 과학외교센터에서 만난 빌 콜글래지어 박사는 'Science & Diplomacy' 전문학술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11년부터 3년간 미국 국무부의 4대 과학기술자문관을 지냈으며, 미 과학외교의 핵심리더 중 한 사람이다.

그는 CALTECH의 이론물리학 박사 출신이라 서로 물리학 분야의 국제협력에서 시작해 과학외교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그의 초청으로 참석하게 된 터프츠 대학의 과학외교 관련 행사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미국 보스턴에 소재한 터프츠 대학에는 국제적인 명성의 플레처법외교대학원이 있다. 마침 보스턴에서 열렸던 AAAS 연례대회와 연계해 터프츠대학에 새로운 과학외교센터를 창립하고 관련 교과과정의 시작을 축하하는 킥오프 행사였다.

빌 콜글래지어 '과학과 외교' 편집장.<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빌 콜글래지어 '과학과 외교' 편집장.<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터프츠 대학의 과학외교 프로그램의 목표는 국제적, 학제적, 내재적 과정으로서 궁극적으로 지구촌 모두의 수혜를 위해 국익과 공동의 관심사를 증거에 기초해 균형있게 통합하는 것이다.

이 행사는 터프츠 대학의 대학생뿐 아니라 MIT, 하버드대학의 동료 학생들이 함께 창립한 과학외교클럽이 공동주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학외교클럽의 소속 학생들뿐 아니라 관련 대학의 참여 교수들, AAAS의 과학외교센터 관계자들, 전·현직 국무부 과학기술 자문관들, 그리고 여러 국가의 외교 관련부처 과학자문관 등 지역과 세계의 과학정책외교 커뮤니티가 동참해 성원을 보내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행사를 공동주최한 탐 왕 AAAS 과학외교센터장은 "과학외교는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잇는 것"이라며 "각 권역과 국가에 맞게 특성화된 과학외교 생태계의 구축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자들은 과학외교에 기초한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민간외교관으로, 과학과 증거에 기초한 정책의사 결정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2015년 뉴질랜드의 수상 수석과학기술자문관인 피터 글루크만 경과 미 국무부 바우겐 투레키안 현 과학기술자문관의 주도로 창립되어 미국, 영국, 일본, 뉴질랜드, 세네갈, 오만, 폴란드 등 세계 각국 외교부처의 과학기술자문관들이 동참하는 네트워크인 FMSTAN 회원들도 이날 터프츠 대학의 행사에 참여했다.

터프츠대학의 과학외교 킥오프행사.<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터프츠대학의 과학외교 킥오프행사.<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한편 세계과학평의회(International Science Council)를 통한 정부차원의 과학자문 국제네트워크인 INGSA도 FMSTAN과 더불어 과학외교의 한축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정부 및 비정부 기관들이 다양한 과학외교 관련모임을 조직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과학외교센터가 발간하는 과학외교 관련 전문잡지 'Science &Diplomacy'를 비롯한 각종 자료를 참조하는 것을 권한다.

# 과학외교 장면 2 - UN의 인류 도전적 과제와 과학기술 가치
과학 없는 정책은 도박···글로벌 협력 및 커뮤니케이션 필수

현대 사회는 지역 , 국가 , 권역, 국제 수준에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도전적인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에너지, 물 , 식량자원 , 의료 , 일자리 , 경제 안정 , 커뮤니케이션·인프라, 지속가능한 환경, 안전 등 과학기술이 기여할 수 있거나 제기할 수 있는 다면적 과제들을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특히 UN은 2015년 9월 '모두를 위한 가난 종식, 지구보존, 번영 보장'을 위한 17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를 채택해 세계 각국과 함께 의욕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UN의 17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UN의 17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이러한 SDG 목표는 국경을 넘나드는 다학제간 이슈를 다루어야 하며, 관련 정책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주게 된다. 따라서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수많은 데이터 및 정보의 분석과 과학기술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 설정 및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정책 입안과 실행프로그램의 개발, 정책의 집행 및 효과 분석 등이 체계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의 혁신은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며, 복잡한 글로벌화 시대에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핵심적이며 사회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SDG 라는 복합적이고, 다학제간이며, 글로벌 차원의 과제를 풀어가려면 이해당사자들과 지구촌 사람들 간에 과학기술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과 외교적 해법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른 증거기반의 정책과 실천을 지원하기 위해 과학기술자와 정책입안자들간의 상호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기제들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본래 과학기술자들은 개척자들이며 경계가 없이 활동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국가들 간에 과학기술자들은 서로 단결, 협력, 함께 행동하며, 역경이 닥치면 이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사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증거에 기초한 보편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작동한다.

정책입안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면 그 결과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이 없는 정책은 도박'과 같으며, 증거기반 정책의 입안과 의사결정은 훌륭한 거버넌스와 책임있는 공공행정의 표상이 된다. 또한 개방성과 투명성에 뿌리를 둔 과학적 시도, 방법론, 과학문화의 여러 측면은 보편적 가치와 폭넓은 활용성이라는 강점을 보여준다.

일상 생활 속에서 과학적 관심사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고 대중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많은 과학자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와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그러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사회 간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대중과의 과학커뮤니케이션은 언론, 뉴미디어, 정부와 의회 등을 아우르는 형태로 더욱 더 넓게 외연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특히 사스, AI, 메르스, 에볼라, 지진, 쓰나미 등 세계적 재해나 재난이 발생하면, 과학 소통과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국가 사회적으로도 더욱 중요해지며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 된다.

이 경우 각 당사국의 리더들은 핵심 커뮤니케이터로서 제일 먼저 도착하고,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므로, 관련 과학기술자들의 과학가치 사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학외교는 과학기술 콘텐츠, 과학커뮤니케이션 방법론과 함께 공공외교의 전략, 도구, 전술 들을 통합해 적절하게 운용해야 한다. 과학외교는 가끔 양면성을 띠게 될 수도 있지만, 적절하게 설계되고 집행된다면 국제관계의 관리·발전에 있어 탁월한 보완재이자 다목적이며, 적응가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특히 과학기술은 무력을 쓰지 않는 '매력자산'이자 소프트파워로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대표적인 방식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는 과학커뮤니케이션이 그 본성상 공개된 정보와 데이터 에 기초해 상대가 따르거나 혹은 규범을 준수하도록 하는데 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최근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소프트 전장에서의 승리에 과학기술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핑퐁외교에서 무력시위까지 외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외교의 전통적 정의는 하드 파워를 바탕으로 한 국가 간 공식 협상에 대부분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 패러다임은 21세기에 들어와 수많은 민간 기구들의 등장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개방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소프 트 파워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크게 바뀌고 있다.

공공외교에서는 외국인과 직접 소통하거나 국제 커뮤니티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증대하거나 또는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국가의 이미지나 브랜드를 향상시킴으로서 국가의 문화, 정책, 비전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를 확산하고자 시도한다.

과학기술자들은 우수한 커뮤니케이션 역량, 증거기반 설득력,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의 풍부한 경험 등 과학기술 공공외교의 민간외교관으로서 탁월한 자산을 지니고 있다.

과학외교의 3대 유형 중 '과학기술을 위한 외교 Diplomacy for Science'는 과학기술자들이 가장 익숙하고 잘하고 있는 영역으로, 외교는 과학기술의 발전, 인력교류, 과학기술 협정 등 다양한 국제협력을 위한 수단적 요소로 이용된다.

'외교 속 과학기술 Sciece in Diplomacy'에서는 국제기구의 아젠더 형성에 참여하거나 과학기술 전문지식 조언, 증거기반 정책을 제공하는 등 외교 역량을 지원, 강화하는데 과학기술이 활용된다 . 이는 많은 외교관들이 과학기술자로부터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를 넘어 '외교를 위한 과학'은 과학기술 ODA나 남북과학기술협력처럼 공공외교의 도구로서 과학이 활용되고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외교관계의 구축, 유지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부족한 영역이지만, 최근 소프트 파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공공외교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 과학외교 장면 3 - 40년 이어진 쿠바와 미국 과학협력
미국의 과학외교···전체 거시적 틀에서 접근

강력한 과학 기술 역량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들은 다양한 유형의 과학외교를 통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 선진국이며 과학외교의 저변이 넓은 미국은 '전체 사회적 접근'을 강조한다. 이 경우 과학외교는 정부 기관 간 협력을 넘어 다양한 학술단체, 대학, 재단, 민간 회사, 비영리기구를 포괄하는 거시적 틀에서 수행된다.

AAAS도 과학외교센터 뿐 아니라 과학기술 공동연구, 과학커뮤니케이션, 과학 정책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과학외교 분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AAAS가 주도한 과학외교의 가장 큰 성과로는 미국-쿠바 그리고 미국-이란 간 관계 개선을 들 수 있다.

쿠바 과학학술원 사무총장, 터프츠대학 과학 외교클럽 회장과 함께.<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쿠바 과학학술원 사무총장, 터프츠대학 과학 외교클럽 회장과 함께.<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이를 위해서는 관련국의 과학기술자들 간의 오랜 물밑 노력과 기여가 필요하다. 이번 AAAS 연례대회와 터프츠 대학 행사에서 만난 쿠바 과학학술원의 서지오 호헤 파스트라나 사무총장 겸 대외협력관에 의하면 쿠바와 미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은 수많은 정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40년 이상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과학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2000년 국무부에 과학기술자문관실이 처음으로 설치되었고, 외교정책 수립 시 포괄적이고 정확하며 최신의 과학기술 전문지식이 장관에게 제공되고 있다.

특히 국무부의 역대 과학기술자문관들인 노먼 노이라이터, 빌 콜글래지어, 바우간 투레키안과 같은 과학기술자들은 AAAS의 과학외교센터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이들의 탄탄한 민관 네트워크가 세계의 과학외교 아젠더를 주도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센터의 바로 옆 사무실에 자리한 찰스 와이스 AAAS 펠로우는 1971~1985년 월드뱅크의 첫과학기술자문관으로 봉사하며,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에 있어 과학기술의 차원을 확장하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고 한다.

한편 보스턴에서 열린 AAAS의 연례대회에서도 다양한 과학외교 관련 세션이 개최되어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올해 5번째로 열린 NODES 포럼은 미국 이민 과학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디아스포라들의 네트워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실천 방안과 지식들을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보스턴 AAAS 연례회의의 NODES포럼.<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보스턴 AAAS 연례회의의 NODES포럼.<사진=김승환 교수 제공>
# 과학외교 장면 4 - AAAS의 4가지 과학외교 연결 모델
가장 큰 효과 '펠로우쉽'···"과학외교 모멘텀? 정부에 확실한 지지자 있어야"

전 세계적으로 정부, 대학, 학술원, 전문학술협회, 지지단체나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과학기술과 정책간의 괴리를 좁히고 과학외교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AAAS가 학계, 정부, 비영리 법인, 국제기구, 민간 등 200여 과학정책 이해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과학과 정책을 연결하는 15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기제가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제관계에서 과학과 정책간 연결고리를 만드는 모델은 크게 보아 펠로우쉽, 인턴쉽, 짝짓기, 정부 내 순환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특히 펠로우쉽 모델은 STEM 분야의 대학원생, 초기-중기 과학자, 정책입안자들이 1년 이상 정부, 입법부, 국제기구 등에 직접 파견되는 프로그램으로 그 파급효과가 가장 크다. 파견 과학기술자들의 경우 과학이 어떻게 정책에 임팩트를 주는지 를 배우고, 정책 입안시 전문성과 경험을 나누어 주게 된다.

예를 들어 1973년부터 시작해 많은 학술단체들이 동참한 AAAS의 과학기술정책 펠로우쉽은 매 년 300명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이 연방 정부의 여러 부서에서 정책입안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배우며, 전문적 지식과 분석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 동문들로 형성된 두터운 과학정책외교 네트워크들이 다양한 정책부서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관련 부서의 증거기반 정책·의사결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모델들은 그 범위, 테마, 지정학적 초점, 목표대상, 기간 등이 각각 다르지만, 과학자들이 다양한 커리어 단계와 분야에서 정책 과정에 기여하거나 정책입안자들과 관계를 구축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자들이 정책 또는 공공서비스 분야의 커리어로 진출하기도 하고, 상 호 이해를 통해 정책 입안자나 관료들이 과학자와 함께 일하는 부담을 줄여주기도 한다. 사실 과학정책과 외교에 대한 모멘텀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 내·외에 확실한 지지자가 있어야 한다.

특히 재정의 확보와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선 프로그램에 대한 주인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프로그램의 후원자, 참여자, 서포터를 끌어 들이려면 리더의 참여, 응용 연구, 또는 개인의 커리어 개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과학정책과 외교 프로그램의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참여자의 교육적 경험에 이바지할 수 있 을 때 그 의미가 증폭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지원을 꼭 받아야 하는 경우 정파를 넘어 정부 변화에도 지속할 수 있는 중장기 프로그램의 구축과 운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

# 과학외교 장면 5 - '과학외교의 변방' 한국
과학자들의 공공외교 참여 미흡···과학기술 조직간 협업, 과학자 적극 참여 긴요

본래 과학기술은 국제정치나 외교의 변방 주제였으나, 최근 과학기술·ICT의 가속화된 발전,혁신의 글로벌화, 사이버 외교의 부상, 일반 대중 대상의 공공외교의 강화, 지식확산과 네트워크 형태의 외교 등 급속한 세계화와 정보화에 따라 주목할 만한 외교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하드파워 외교의 효과가 줄어들고, 상대국의 마음과 이성에 호소하는 소프트파워 기반의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도 외교부가 2010년을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선언하였고, 작년에 공공외교법이 발효되었다.

최근 다양한 공공외교 프로그램에 민간인과 비영리민간기구 등이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도 세계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공공외교는 과학기술 보다 문화, 교육, 스포츠 등 다양한 다른 수단 에 더 많이 의존해 과학기술자들의 공공외교 참여 수준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북핵이나 경제성장 등 전통적 외교 현안에 밀려 과학기술외교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 로 변방에 머물러 있고 소프트파워로서 과학외교에 대한 인식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학외교는 중견국의 공공외교란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 간 과학기술 발전을 토대로 한 고속 압축성장으로 중진국에 진입했다. 특히 한국은 과학기술 발전과 보편 교육을 동력으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서 타 개발도상국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좀 더 적극적인 과학기술과 공공외교의 만남을 통해 소프트파워 역량를 강화해,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며 국익의 추구와 세계 당면문제의 해결에 균형있는 기여를 하여야 한다. 터프츠대학의 과학외교프로그램 책임자인 폴 아서 버크만 교수는 "과학자들은 '증거 중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과학외교의 최종 시험대'로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군사충돌이 때때로 일어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당면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평화, 번영, 안전과 발전으로 가는 여정은 여전히 외교에 달려 있다.

글로벌화의 심화와 4차 산업혁명의 빠른 전개는 마치 '공유지의 비극'처럼 다양한 수준의 격차와 소외를 가속화시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외교의 역할이 필수적이 될 전망이다.

러쉬 홀트 AAAS CEO는 "과학은 모든 사람들과 지구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과학적 증거가 국가, 권역, 글로벌 차원의 정책입안에 적절하게 통합 되도록 참여, 지원하는 것이 공공의 의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지구촌 시대를 맞아 일반 대중이 과학의 사회적 기여와 글로벌 역할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고, 후원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자들은 과학 발전 및 혁신, 과학적 사고, 증거기반 정책과 의사결정을 위한 일반대중과의 과학커뮤니케이션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과학기술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AAAS와 같이 포괄적인 과학외교 및 관련 역량을 제대로 갖춘 기관은 아직 없다.

따라서 과학기술단체 및 관련 기관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간 의 긴밀한 협업으로 과학외교를 포괄하는 주요 미션을 완수해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와 외교계는 두 개의 다른 세상으로 과학기술자 중 외교관 또는 외교관 중 과학기술자 출신은 극히 소수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공공외교에 관련된 부서, 국제 기구 등에서 과학기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과학기술관련 전문역량이 크게 확장, 심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서 언급된 펠로쉽 등 모델을 활용해 과학, 정책 그리고 외교의 접점에서 활약할 다양한 배경의 과학 외교관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해 이들과 탄탄한 과학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또한 과학기술관련 단체를 포함한 학계, 정부, 비영리, 기업 재정지원 커뮤니티가 힘을 모아 과학기술자들이 과학기술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들에게 과학기술과 외교가 만나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주거나, 이들이 과학외교에 참여, 봉사, 조언 활동 후 다른 공공 서비스로 나아가거나 관련 커뮤니티 내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나라가 변화된 위상에 걸맞는 과학외교 생태계를 조성하고,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남북관계, 동북아 협력, 더 나아가 세계의 다양한 무대에서 소프트파워 역량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 김승환 POSTECH 물리학과 교수는?

김승환 POSTECH 물리학과 교수.<사진=대덕넷 DB>
김승환 POSTECH 물리학과 교수.<사진=대덕넷 DB>
김승환 교수는 1981년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를 받은 뒤 1987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코넬대와 프린스턴고등연구소를 거쳐 지난 1990년부터 POSTECH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해 왔다.

POSTECH 부임 이후 연구처장과 산학협력단장, POSTECH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등의 경력을 쌓았다. 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수석전문위원, 한국뇌연구협회 회장, 아·태 이론물리센터(APCTP) 소장,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 교수는 복잡계와 뇌과학 분야의 권위자로 통한다. 한국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물리학계를 이끌고 있는 물리학자이자 교육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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