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 본부 리더 구성원이 직접 선거해 선출… 연구 자율성 창의성 발휘 계기
"본부장은 연구 큰 그림 그리고 연구 조율까지"

정부출연기관의 중간 보직자 임명이 원장이 아닌 구성원들이 직접 투표해 선발하는 직선제로 바뀌는 등 출연연의 조직 구성에도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과제를 위한 연구가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국가연구소로서 출연연 본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탑다운의 연구가 아니라 출연연의 연구자들이 직접 연구 기획부터 성과확산까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좀 더 체계화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는 최근 조직 개편과 구성원 참여형 본부장 인선 계획을 발표하고 본부장 직위 지원을 위한 공고를 마쳤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기존 원장, 연구소, 연구단, 센터, 부, 실로 이어지던 복잡한 체계를 원장→연구소→본부→프로젝트 리더(PL)로 대폭 축소한 것이다. 즉 본부 중심으로 연구조직이 운영되며 중간 보직자인 50여명의 부장과 200여명의 실장 보직이 없어지게 된다.

본부장은 연구의 큰 그림을 그리며 연구 방향, 연구 분야를 조정하게 된다. 또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연구자와 행정 인력의 업무를 보다 명확하게 해 각각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ETRI는 본부장 보직을 원장 임명이 아닌 직선제로 바꿨다. 관련 연구분야에 대해 내부 구성원의 인정을 받는 인력이 와야한다는 취지에서다.

ETRI의 한 관계자는 "지난 3개월동안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이번 안이 나오게 됐다. 빠르게 달라지는 외부 환경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며 연구에 집중하기 위함"이라면서 "PBS 등으로 과제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연구의 큰 방향에 따라 과제를 기획해 출연연에서 연구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실장과 실원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책임지며 실장 한명이 몇개의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는 등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면서 "구성원들의 신뢰에 기반한 본부장이 선발되고 행정 분야도 본부단위에서 책임지며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기술축적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부장 선발은 어떻게? 연구원들이 직선제로

ETRI 전경.<사진= 대덕넷 자료>
ETRI 전경.<사진= 대덕넷 자료>

ETRI는 ▲SW·콘텐츠 연구소 ▲초연결통신 연구소 ▲미래전략연구소 ▲ICT 소재부품연구소 ▲방송·미디어 연구소 아래 19개의 본부를 두기로 하고 본부장 직위에 대한 공모를 마쳤다.

공모 참여자는 49명으로 단독 응모부터 최대 5명까지 응모한 본부도 있을 정도로 구성원들의 관심이 높았다. 이들은 서류를 제출하고 각각 지원 본부의 운영계획을 온라인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발표했다.

구성원들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본부장 후보의 평가를 마쳤다. 본부장 선발은 성실성, 리더십, 사명감 등의 항목에서 구성원들로부터 5점 만점에 평균 3점 이상을 받은 후보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단독 출마의 경우에도 평균점수가 3점 이하면 임명하지 않는다. 대신 소장이 추천한 인물 중 원장이 임명하는데 과락자는 추천대상에서 제외한다. 철저하게 내부 구성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인사를 실시하는 셈이다.

ETRI 관계자는 "본부장은 연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고민하는 역할이다. 우리의 미래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자리로 구성원들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그동안 원장이 부서장을 임명하는 방식이었는데 바텀업으로 직선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내부 분위기도 좀 더 활성화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본부 운영과 본부장 역할은?

ETRI는 지난 10년간 200여개의 연구실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연구마다 특성이 있지만 실 단위의 연구가 반복되며 연구성과 간 연계와 연구 지속성이 떨어졌던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기술축적에도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개편으로 본부 아래에는 관련분야 연구 프로젝트 리더(이하 PL)들이 참여한다. 또 개별연구가 필요한 분야는 본부와 PL의 중간단계에 그룹을 두지만 연구분야는 본부에서 전체적으로 조율하게 된다.

본부장의 역할은 전체를 꿰뚫으면서 꼭 필요한 연구를 조율하는 것이다. 기존 실 단위 연구가 아니라 기술 중심으로 본부장이 연구의 방향성을 잡고 내부 연구 분야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

ETRI 관계자는 "PBS 등 과제 중심으로 실이 운영되며 전체를 보기 어려운 구조였다"면서 "본부장은 하나의 연구테마에 대해 전체를 보고 고민하며 PL의 연구분야에 코멘트까지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에 대해 오성대 ETRI 경영전략본부장은 "수평적 연구조직으로 조직을 설계해 연구실간 소통확대와 연구수행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면서 "R&D 수행 시스템을 쇄신해 개인의 창의성을 널리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연구몰입도 높은 전문화, 개방화된 연구수행 플랫폼 구축에 그 주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ETRI는 이상훈 원장 취임과 함께 한달여간 TFT를 거쳐 올해 초 6연구소 3단 3본부 1부 조직에서 5연구소 3단 3본부 3센터 1부 체제로 바꾼 바 있다.

당시 34년만의 외부 인사가 수장으로 오면서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 받았다. 이번 개편은 10개월만에 더욱 파격적인 실험으로 이 원장의 시도에 과학기술계의 이목이 다시 쏠리고 있다.

과학기술계 한 인사는 "출연연이 조직적으로도 그동안 정체된 것이 사실이다. 기관장이 부임하며 자기 사람 심기에 치중하는데 이번 ETRI의 시도는 연구중심 체계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제대로 된 인물이 본부장으로 선임돼 미래 기술 개발에 주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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