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단국대 교수, 한의학 역사와 기초담은 1500페이지 저서 발간
한의학, 일제강점기 후유증+양의학 융합 등 변화 기로 "뿌리 아는 일 중요해"
"출연연 문제 남탓 하지 말고, 스스로 풀어야"

최승훈 단국대 교수가 최근 '한의학'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는 책에 한의학의 역사부터 철학적 기반, 기초 등 한의학을 제대로 소개할 근거를 담았다.<사진=김지영 기자>
최승훈 단국대 교수가 최근 '한의학'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는 책에 한의학의 역사부터 철학적 기반, 기초 등 한의학을 제대로 소개할 근거를 담았다.<사진=김지영 기자>
 
"한의학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단절됐습니다. 해방 후 회복 됐지만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봅니다. 한의학은 양의학과의 융합 등 변화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 한의학을 제대로 알고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그 시작단계가 되길 바랍니다."
 
최승훈 단국대학교 대학원 교수가 최근 '한의학'이라는 책을 집필해 주목받고 있다. 제7대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을 지낸 그는 책에 한의학의 역사부터 철학적 기반, 기초 등 한의학을 제대로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1500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 책이 빛을 보는데 걸린 시간은 20년. 한의학의 뿌리를 글로 담아내는 일, 최 교수가 한의학 연구인생에 꼭 이루고 싶었던 일 중 하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WHO 전통의학자문관에 선정돼 사상체질학의 원전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영문으로 옮기고 국내 최초로 암 치료 한약물 특허를 획득하는 등 한의학 표준화와 세계화에 주력한 연구자다. 
 
"교환교수와 연구 등으로 중국과 대만 등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중의학의 가진 일관성, 표준화 등은 굉장히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 비결에는 단절없는 중의학 역사와 국가지도자들의 서포트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한의학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단절됐으며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 한의학을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민간베이스로 맡겨져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1994년 한의학연구원 설립과 대학에서의 한의학과 설립이 되는 등 변화도 있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한의학을 제대로 추진한 역사는 길지 않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한의학도 새로운 시대에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변화를 해야한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만 그 전에 우리의 한의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최 교수가 책을 집필한 이유다.
 
그는 "양의학과의 융합, 통합, 이론화 등 다양한 변화되는 상황 속에 우리 한의학의 내용을 제대로 담고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한의계가 여러 변화상황에 맞서기 위해 한의계의 서적과 텍스트를 다 열어야 한다. 전공서적이 아닌 한의학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근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책 발간 '한의학 표준화' 시작…"현대 언어·지식으로 채울 것"
 

최 교수는 이번 책을 빅북사이트에 게재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했다. (빅북 사이트 http://bigbook.or.kr/bbs/bbs/board.php?bo_table=bo16)구매도 가능하지만 이북을 베이스로 했다. 1500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프린트 해 볼 수있고 한의학계의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추가도 할 계획이다.

그는 "이북의 형태의 강점은 수시로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1~2년에 한 번 씩 한의학의 변화되는 동향 등을 담아 수정본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엽 KAIST 특훈교수팀이 지난해 한의학 처방원리인 ‘군신좌사’의 유용성을 규명한 연구내용 등 새로운 한의학 연구가 포함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 교수는 업그레이드 과정을 이미 시작했다. 90년대 초반부터 주도한 공부모임 '기인독회' 멤버들과 함께한다. 기인독회는 최 교수가 대만에서 교환교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후배들과 한의학의 미래를 위해 뭘 하는게 좋을지 고민한 끝에 결성된 모임이다.
 
20년 전 학생이었던 멤버들은 현재 한의학계 뿐만 아니라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기인독회는 매 달 첫째주 월요일에 만난다. 20개의 챕터 중 하나의 챕터를 가지고 리뷰하고 검토한 내용 등을 제안하고 있다. 최 교수는 책 집필을 마무리한 뒤 완료 전 리뷰 과정도 기인독회를 통해 진행했다.
 
그는 "책이 나왔지만 이것은 시작이다. 많은 학자들의 논의하면서 한의학에서 나오는 새로운 근거들과 방법론이 추가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의 책은 한의학의 기본을 많이 살리는데 중심을 뒀지만 앞으로는 현대의 언어와 지식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최 교수 책의 공통점? 진립부 선생의 제자(題字)
 

최승훈 교수가 낸 책들. 그의 책 대부분에는 중국과 대만의 철학자이자 교육자, 정치가인 진립부 선생의 제자가 눈에 띈다.<사진=김지영 기자>
최승훈 교수가 낸 책들. 그의 책 대부분에는 중국과 대만의 철학자이자 교육자, 정치가인 진립부 선생의 제자가 눈에 띈다.<사진=김지영 기자>
그는 한의학 책을 준비하면서 우리 한의학의 독특한 체질론을 다루고 있는 사상의학이론 '동의수세보원'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이 외에도 다양한 한의학 관련 책을 썼다. 그의 책에는 재밌는 점이 있다. 바로 제자(題字, 서적의 머리나 족자, 비석 따위에 쓴 글자)다.
 
그가 지금까지 출간한 책의 대부분은 중국과 대만의 철학자이자 교육자, 정치가인 故 진립부 선생의 친필제자가 담겨있다. 진립부 선생은 한의사는 아니지만 1929년 중국의 국민당 정부가 중의사 제도를 없애려 할 때 가장 앞장서 막아낸 인물 중 하나다.

중국의약대학에서 이사장을 지내며 대만과 중국의 중의학을 발전시키고 서포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최 교수가 존경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는 "경희대 교수로 재직했던 80년대 말 중국의약대학 교환교수로 가면서 해당대학의 이사장이던 진립부 교수와 연을 맺게됐다. 젊은 시절에 좋은 어른을 만났다"며 "90년대 '한의학'책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쓰고 싶어 요청드렸고 흔쾌히 써 주셨다"고 회상했다.
 
◆ "출연연 문제?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스스로 변화해야"

 

그는 과학기술계까 백년대계를 준비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보람을 느끼는 현장이 되길 희망했다.<사진=김지영 기자>
그는 과학기술계까 백년대계를 준비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보람을 느끼는 현장이 되길 희망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출연연의 문제점은 이미 다 나와있습니다. 남 탓이 아니라 나 스스로 바뀌려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는 출연연 원장 임기를 마친 지금까지도 여전히 대덕연구단지를 오가며 연구자들과 소통한다. 한의학연 연구자들과도 가끔 만나 담소를 나누고, 최근에는 출연연 연구자 대상으로 건강관리 강연을 하는 등 인연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
 
그는 올해 50주년을 맞은 과학기술계가 앞으로 100년대계를 준비하기 위해 각 구성원이 스스로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출연연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연구를 하기에 분명 내놔야하는 아웃컴이 있지만 연구자들이 보람을 느끼는 연구현장이 되길 희망했다.
 
그는 "출연연의 문제점은 이미 다 나와있다. 연구자, 정부의 탓도 아니다. 각자 구성원들이 스스로 바뀌는 것이 중요한 때"라며 "정부는 디테일한 간섭보다는 연구원이 자립·자발적으로 혁신적인 자세를 갖도록 해줘야한다. 무엇보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돼야한다. 연구원도 남 탓보다는 자기 스스로 변화해야할 점들을 고민하며 자기혁신을 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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