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연-에스티팜, 대장암 치료 '탄키라제 효소'억제물질 공동개발
허정녕 의약화학연구센터장

"함께 한 연구원들과 기업이 숨은 공신이죠."

에스티팜과 공동연구로 대장암 치료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한 허정녕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 의약화학연구센터장은 인터뷰 첫 마디부터 '공동연구'의 힘을 강조했다. 신약 후보물질 발굴 뒤에는 연구소와 기업의 '공동연구', '시너지 효과'라는 키워드가 있다.

화학연은 대장암 치료 후보물질을 개발해 지난 3월 3일 에스티팜과 기술이전 협약식을 가졌다. 이번 후보물질 개발은 화학연과 더불어 에스티팜, 서울아산병원 등 산‧연의 공동협력으로 이룬 성과다. 성과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부터 ‘출연연 10대 성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후보물질은 대장암을 일으키는 신호 전달 과정 중 '탄키라제(Tankyrase)' 효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탄키라제가 과도하게 분비되면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인 베타카테닌이 체내에 쌓이는데 후보물질이 탄키라제를 억제해 암을 치료하는 원리다.

현재 연구팀은 후보물질에 최적으로 반응하는 환자군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허정녕 센터장에 따르면 암 2기 또는 3기 환자들의 항암화학요법 단계와 전이 단계 환자에게 적용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약개발 후보물질의 전임상 단계부터는 10억, 100억 단위의 연구비가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확신이 있어야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허정녕 센터장은 "에스티팜의 의지는 크다"며 "임상 1상부터는 해외에서 진행하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올해 1월 의약화학연구센터장이 된 허정녕 박사. 화학연에 온 지는 만 13년이 됐다 <사진=한효정 기자>
▲올해 1월 의약화학연구센터장이 된 허정녕 박사. 화학연에 온 지는 만 13년이 됐다 <사진=한효정 기자>

◆ 단기간에 후보물질 발굴 성공?…"함께여서 가능했다"

"신약개발에서는 타깃 선정이 가장 큰 고민이죠. 경쟁 상대와 정보를 공유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혼자만으로 성과를 이루기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신약개발의 기로에서 화학연의 선택은 '함께'였다. 화학연과 에스티팜은 2014년부터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하나의 후보물질을 발굴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허 센터장은 이에 "공동연구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연구 결과는 2014년 말, 세미나에서 허정녕 센터장과 에스티팜 김경진 소장의 대화로부터 시작됐다. 이 세미나에서 김경진 소장은 탄키라제에 대해 발표했고 관심 분야가 같았던 두 사람의 탄키라제에 대한 대화가 지금의 연구 결과를 가져온 시초가 됐다.

당시 허 센터장은 대장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새로운 타깃을 찾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인 탄키라제는 2009년 노바티스에서 타깃으로서 가능성을 이미 확인한 바 있고, 임상실험은 없었으나 여러 제약회사들의 연구로 데이터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또한 탄키라제가 속한 PARP 계열 중 PARP1에 대한 작용기작이 알려져 이미 이를 타깃으로 하는 약이 나왔다. 이러한 이유로 허 센터장은 탄키라제를 주목했다.

김경진 소장은 연구 시작을 이끄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에스티팜이 독자적으로 연구과제비도 부담했다. 연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허 센터장은 "후보물질은 화학연과 에스티팜이 반씩 나눠 테스트했고 한 달에 한 번 미팅과 데이터 공유, 일주일에 2~3차례 김 소장과의 전화 통화, 텔레컨퍼런스까지 진행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런 밀착연구가 있었기에 방향잡기가 수월했다고 회고했다.

◆ 후보물질, 동물실험 이상 無…'First-in-Class' 신약 목표

연구팀이 개발한 탄키라제 억제 후보물질은 동물 실험에서 독성을 보이지 않았다. 대장암 치료제에 독성이 있으면 대장 내 세포들이 일그러지고 피와 설사를 동반하는데, 이번 물질을 쥐에 실험한 결과 대장에 이상이 없을 뿐더러 독성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에게도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예측된다.

허 센터장은 "현재 전임상 실험 중이고 특이사항은 없다. 단, 약과 독은 한 끝 차이이므로 최대 복용량과 안전성에 대한 실험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 센터장의 목표는 'First-in-Class' 신약 개발이다. 특정 물질을 타깃으로 하는 신약 중 첫 번째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First-in-Class'로 비아그라, 글리벡처럼 세계 시장에서 뚜렷한 선점 효과를 누리는 약들이 있다. 그는 "도전적이지만 그만큼 얻는 이익과 보람도 크다"며 "현재 진행 중인 다른 대장암 치료 화합물들이 있지만 우리의 것은 그것과는 다른 대상 환자군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대장암 치료에 그치지 않고 추가 연구를 통해 이번 후보물질이 유방암, 혈액암 등까지 효과가 지속되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 김경진 소장과 1주일 3번 전화…"교류가 큰 도움됐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허정녕 센터장과 김경진 소장의 교류는 활발했다. 허 센터장은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처음부터 학문적으로 마음이 잘 통했다"고 말했다.

허 센터장과 김 소장은 1주일에 3번씩은 전화 통화를 하며 진행상황과 아이디어를 나눴다. 그는 "김경진 소장이 연구 경험이 많아 이번 결과에 큰 역할을 했고 그와 토론하면서 배운 것이 많다"고 소감을 말했다.

가장 애가 탔던 순간을 묻자 그는 "동물모델에서 약효과가 나올 것인지를 기다릴 때였다"고 답했다. 허 센터장은 "신약개발은 생물과 화학이 같이 해야 하는데 생물 분야 사람들의 고충도 크다"고 말했다. 화합물 변형과 합성은 늦어도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지만 생물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3~6개월이 소요된다. 이 부분은 화학연 내부에서 생물활성 시스템을 확립하고 작용기작 실험을 담당했다. 허 센터장은 이에 아산병원 김광록 박사가 도움을 줬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허 센터장이 이끄는 의약화학연구센터는 박사급 인력 30여 명이 함께 해 꽤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항암제, 감염증, 대사질환, 심혈관 질환 관련 화합물을 만드는 그룹이 모여 있고 과제 중심으로 연구팀이 구성된다.

허정녕 센터장은 "이번에 개발한 탄키라제 억제 물질이 보여줄 것의 다가 아니다"라며 "이것보다 더 기대를 모으는 것들이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대기중이다"라고 야심차게 말했다. 그는 어떤 후보들인지는 지금 밝힐 수 없지만, 앞으로의 연구 행보를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허 센터장은 직접 화합물 합성 실험을 했다. 4년 만에 실험복을 새롭게 장만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허 센터장은 직접 화합물 합성 실험을 했다. 4년 만에 실험복을 새롭게 장만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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