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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알파고, 이세돌 그리고 한국 과학

이세돌 선수 덕분에 AI 가공할 위력 미리 실감
알파고 승리는 문명사적 사건…한국 과학 환골탈태해야

대국장 기자실 한국어 해설 코너의 모습. <사진=이석봉 기자>

광화문 일대 겉모습은 평상시와 같았다. 주말의 길거리 풍광과 시민들의 발걸음에서는 휴일의 한가로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속내용은 다르다. 인류가 차원이동을 했다. 그것도 며칠 사이에.
인류와 인공지능이란, 이전과는 전혀 다른 MACHINE과의 공존이 공식화된 것이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로 인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5번의 대국에서 예상과 희망을 깨고 알파고가 3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이긴 것이 '기적'이라고 일부에서 받아들일 정도로 알파고의 위력은 막강했다.

대국이 벌어지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느껴지는 두 진영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이세돌 선수는 철저히 혼자다. 1, 2국에서의 연패로 멘붕 상태임이 중계를 통해 여과없이 전달됐고 이후에도 논의 상대가 없다. 게임 중간 쉬는 날에도 친구들이 일부 오기는 했지만 거의 혼자 지내며 대국을 준비한다. 바둑이 혼자하는 게임이라고 하지만 외로움이 전해진다.

이에 비해 알파고팀은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국장인 호텔 6층에는 알파고팀이란 검은색 티를 입은 사람들이 함께 밥 먹고,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정보를 주고 받는 등 활기차다. 외로움이라고는 안보인다.

알파고의 산실인 딥 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CEO는 대국이 쉬는 날인 금요일에는 대전 KAIST에 가서 특강했다. 게다가 2차 대국 첫 날 제3국이 이뤄지는 12일에는 알파벳으로 이름을 바꾼 구글 지주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세르게이 브린이 참관차 방문해 격려했다.

'一對多'의 불공정 게임이란 인상도 들지만 알파고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임을 생각하면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대국 보도 자료에 나온 이세돌 선수와 알파고 팀의 모습. <사진=이석봉 기자>

중요한 것은 그동안 바둑을 조금이라도 알던 평범한 사람들 백명이 달려들어도 1명의 프로를 꺾기 어려웠던 것이, 아마추어 실력의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 세상 최고의 천재를 꺾었다는 것이다.

하사비스 대표는 아마 6단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고, 알파고 대신 돌을 놓았던 아자 황도 아마 6단 정도의 기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세돌 9단이 당황하는 모습을 전해주는 영상은 그가 인공지능이란 새로운 문물과 몸으로 부딪히며 얼마나 멘붕에 빠졌는가를 생생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홀로 이 거대한 쓰나미를 온 몸으로 맞닥뜨리는 모습에 감사함과 안스러움이 동시에 떠오른다.

어찌보면 우리는 미래의 일을 지금 미리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대국이 타국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 했으면 우리 국민의 정서상 토픽의 하나로 그냥 지나칠수 있다. 그런데 서울 한 복판에서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세돌이란 같은 DNA를 가진 사람에 의해 벌어지니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건은 문명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식자들은 말한다. 3천년 전통의 바둑이란 동양 문화가 과학 전통을 가진 서양에 의해 2년만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서양의 동양 침공은 역사적으로 1백수십여년전에 있었다. 하나는 1840년의 아편전쟁, 다른 하나는 1853년의 흑선 사건. 하나는 중국에 전쟁이란 직접적인 폭력으로 행해졌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무력 시위로만 끝났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동양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통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하지만 기득권에 밀려 변화 흉내를 내는데 그친다. 그 결과 1백년에 걸쳐 큰 혼란을 겪는 대가를 치른다. 이에 비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란 근본적 변혁을 이루고 서양을 배워 자신들의 주권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이때 조선은 그 충격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다보니 신문물의 파괴력을 실감할 수 없었고, 내부 헤게모니 싸움에만 몰두했다. 결국은 나라를 잃고 세 나라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당하게 됐다. 식민 상태로 들어가 전통은 단절됐고, 남자는 징용으로, 여자는 위안부로 노예가 돼야 했다.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해서 제한적 주권을 갖게는 됐으나 여전히 과거의 그늘에 발목이 잡혀 현재도 혼돈이 진행형이다.

그런데 이번에 1백여년전과 본질은 유사하면서 형태가 좀 다른 역사적 사건이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1백여년전 서양 세력의 동양 침공이 무력에 의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지력'에 의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서양 과학 전통의 총집합물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이 서양 과학을 흉내내기는 했으나 아직 DNA까지 형성될 정도는 아니다.

서양은 과거의 지적 전통을 충실히 이어가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고, 그것이 컴퓨터로, 인터넷으로 모습을 나타내다가 그것이 총집약돼 인공지능이란 형태로 등장한 것이다.

모습을 보인 곳이 아시아에서도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도, 아시아 대표 과학국인 일본도 아닌, 두 나라 사이에 있는 한국이다.

이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대응해야할까?
1백여년전의 서양 문물 충격이 조선에 간접적이어서 대응에 소홀했다면 이번에는 직접적이다. 그것도 선혈이 낭자하게.
바둑계 중요인사이고, 문필가인 모씨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어디로 가는 배를 탔는지 모르겠다"고 심정을 표현한다.

이런 멘붕 상태는 그것을 직접 겪는 이세돌 선수는 물론이고 같은 DNA를 가진 한국 사람 대부분에게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대국장에서 해설하던 하호정 초단은 "이세돌 9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 혼자 대국장으로 가는 모습에서 울었다"고 심정을 전한다.

심적 충격이 큰 만큼 역설적으로 그 아픔은 우리에게 거꾸로 약이 될 수도 있다. '알파고 3.9 충격'은 우리에게 대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전 기계와, 차원이 다른 기계인 인공지능의 위력을 온 국민이 실감하며 서양 문명의 강대함을 온 몸으로 느끼리라고 본다.

알파고 충격은 특히 과학계에 강력하다. 지각변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인재 양성에서부터 연구방법, 글로벌 마인드 등등.

우리가 인재들을 습관적으로 주입과 암기로 키워나갈 때 서양은 자유롭게 공부하고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 사람을 키웠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단순한 이공계 인재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알파고를 낳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도 인생행로 자체가 체스에서 게임개발, 뇌과학자, 인공지능 사업가로 변화의 폭이 큰만큼 생각의 힘이 큰 사람이다. 그가 주커버그의 딥마인드 인수제안을 안받아들이고 구글을 택한 것도 돈이 아닌 인류 변화란 구글의 철학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은 실익도 크다. 철학으로 무장한 이공계 인재인 구글의 두 창업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가 됐다. 하사비스도 딥마인드 매각으로 이미 4천억원 이상을 손에 쥐었다. 이번 일로 앞으로 벌어들일 돈은 상상조차 어렵다.

그에 비해 비슷한 두뇌의 우리 바둑 천재들은 평생 1백억을 벌기 힘들다. 바둑 등으로 기본을 다지고 단순 문제 풀이가 아닌 복잡 과학에 도전하는 것이 부도 더 갖게 해줌을 하사비스는 보여준다.

우리도 생각을 힘을 키우고 큰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인재 양성 철학을 바꾸어야 한다.

동시에 문제 풀이 방식도 딥마인드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전 선배가 한 것을 좀 더 능숙하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개인 도제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딥마인드는 시스템으로 접근했다. 그러면서 혼자가 아닌 팀으로, 직관이 아닌 논리로, 내셔날이 아닌 글로벌로 풀었다. 발상의 수준과 방식이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런던과 실리콘밸리는 그 거리가 물리적으로는 8700여km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1000km 반경의 도쿄 베이징 서울과는 달리 문화적 심리적으로는 한 동네이다.이런 초국경 연결이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동양에 좌견천리란 말이 있는데 서양은 시스템과 글로벌을 통해 좌견만리, 좌견억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세돌이란 사람은 이런 역사적 쓰나미에 온몸을 내던져 처절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일이 없었으면 이전의 식민지처럼 나중에 한국이란 집단이 당했을 일을 그가 먼저 겪으며 그 새로운 힘의 무지막대함에 경보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계는 철저하게 이번 충격의 역사적, 과학적 의미를 분석하고 찾아내야 한다. 특히 알파고 팀이 과학을 갖고 접근한 만큼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앞으로 AI는 피할 수 없다. 인간 생활의 모든 부분에 공기와 같이 존재하며 작동할 것이다. 우리 과학이 산업 및 정보화 시대의 캐치업에 능했으나 인공지능이란 새로운 존재의 대응에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공지능이란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자신들만의 우물에서 나와서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차원이 다른 강자의 등장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벽을 허물고 연계해야한다. 수도권과 대덕의 연구자원들도 연계해 글로벌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과학도들에게 공식과 수식만을 가르치는데서 탈피해 철학과 역사, 감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눈 앞의 자기 이익에만 신경 쓰는 좀팽이가 아니라 인류를 변화시킬 꿈을 갖는 큰그릇으로 키워야 한다.

변화는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것만 있지 않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 우리를 변하도록 만드는 일도 많다. 그 상황에 적극 대응해 주도적이 되면 살아나지만 맥락을 읽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 종의 신분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 알고 있다.

인공지능이란 변화, 아니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절절히 느끼고 있다. 구글이 서울을 세기의 대결장으로 택한 것은 거꾸로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보다 우리가 그 위력을 느끼기에 대응에도 적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그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그냥 무덤덤하게 넘길 것인가.

한국 사람들은 인공지능 연구에 꽤 적절하다. 개개인의 지능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협업의 경험이 적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서툴어 바꿔야 할 숙제도 많다.

1백% 조건이 갖춰져야만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것은 보완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된다.

이세돌 선수의 혈전을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 그가 온몸으로 인공지능의 가공할 파괴력을 전달해주는 것을 우리는 하나도 놓치지 말고 습득해 대비해야 한다.

하사비스 대표는 이야기한다. 이세돌 선수를 택한 것은 그의 바둑이 독창적이기 때문이라고.

대국장 기자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 방문이 이번 처음인데 매우 흥미롭다"며 "이번 대국이 한국에도 굿 뉴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세돌 선수의 혼전(魂戰)에 보답하기 위해 이제 과학계가 나설 때이다.

대국장 기자실 영어 해설 코너의 모습. <사진=이석봉 기자>

대국장 기자실 한국어 해설 코너의 모습. <사진=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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