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2015년의 마지막 저녁노을_2015년이 저물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늘 한 해의 끝과 시작점에서는 묘한 감정들이 교차하곤 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의 석양은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를 리 없지만 세밑의 석양은 마치 지나간 365일의 무게를 모두 걸머지고 넘어가는 듯 많은 상념 속에 진다. Pentax K-3, 20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5.6, 1/125 s, ISO100
2015년의 마지막 저녁노을_2015년이 저물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늘 한 해의 끝과 시작점에서는 묘한 감정들이 교차하곤 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의 석양은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를 리 없지만 세밑의 석양은 마치 지나간 365일의 무게를 모두 걸머지고 넘어가는 듯 많은 상념 속에 진다. Pentax K-3, 20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5.6, 1/125 s, ISO100

2015년이 저물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늘 한 해의 끝과 시작점에서는 묘한 감정들이 교차하곤 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의 석양은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를 리 없지만 세밑의 석양은 마치 지나간 365일의 무게를 모두 걸머지고 넘어가는 듯 많은 상념 속에 진다. 그리고 새해 첫날의 태양은 정말 모든 것을 말끔히 씻어버린 가볍고 밝은 모습으로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달력은 인간의 발명품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태양이지만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은 유난히 희망으로 가득한 태양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이나 바닷가에서 해맞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해돋이_똑같은 태양이지만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은 유난히 희망으로 가득한 태양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이나 바닷가에서 해맞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2014년 1월, 동해) Pentax K-3, 20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5.6, 1/125 s, ISO100
해돋이_똑같은 태양이지만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은 유난히 희망으로 가득한 태양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이나 바닷가에서 해맞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2014년 1월, 동해) Pentax K-3, 20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5.6, 1/125 s, ISO100

그런데 나는 올해에는 특별한 해맞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 물론 그럴듯한 일출 사진도 찍지 못했다. 1월 1일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걷고 보니 하늘은 엷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일찍 일어나 동네 산에라도 올라가 해돋이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했었는데, 어차피 날씨 탓에 제대로 된 해돋이를 보지는 못하게 되었으니 조금 늦게 일어났어도 그리 서운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돋이는 볼 수 없었지만 꽃이 귀한 계절에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는 화분 하나가 있어 밝은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지난해 아내의 생일 선물로 사 왔던 란타나 화분을 겨울이 되자 실내에 들여놓았더니 여름철보다 오히려 꽃을 잘 피우고 있다. 꽃과 단풍잎을 좋아하는 다섯 살배기 외손녀가 지난 가을 틈틈이 고사리 손으로 주워 모아 창가에 둔 가을 잎들 또한 특별한 정초의 해돋이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외손녀가 아까워하여 버리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마른 채로 창가에 놓여 있는 단풍잎들이 비스듬히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아 아이의 예쁜 마음을 아는 듯 붉게 가을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에 피는 란타나_해돋이는 볼 수 없었지만 꽃이 귀한 계절에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는 화분 하나가 있어 밝은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지난해 아내의 생일 선물로 사 왔던 란타나 화분을 겨울이 되자 실내에 들여놓았더니 여름철보다 오히려 꽃을 잘 피우고 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25 s, ISO100
겨울에 피는 란타나_해돋이는 볼 수 없었지만 꽃이 귀한 계절에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는 화분 하나가 있어 밝은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지난해 아내의 생일 선물로 사 왔던 란타나 화분을 겨울이 되자 실내에 들여놓았더니 여름철보다 오히려 꽃을 잘 피우고 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25 s, ISO100

새해는 원숭이 해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원숭이띠라는 말 대신 '잔나비 띠'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국어 사전을 보면 '잔나비'는 원숭이의 방언이라고 나와 있는데, 홍윤표 한글박물관 위원장에 의하면 '원숭이'라는 말이 쓰이기 이전부터 '납'이라는 말이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이것이 변하여 '잔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잿빛인 원숭이 털 색으로부터 유래하여 '진납'이 되고 이것이 변하여 '잔나비'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께서 쓰시던 방언이나 옛말을 싫어했는데 이제 그 말들이 때로는 내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깊은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가 보다.

겨울 속에 남겨진 가을 빛_꽃과 단풍잎을 좋아하는 다섯 살배기 외손녀가 지난 가을 틈틈이 고사리 손으로 주워 모아 창가에 둔 가을 잎들 또한 특별한 정초의 해돋이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외손녀가 아까워하여 버리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마른 채로 창가에 놓여 있는 단풍잎들이 비스듬히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아 아이의 예쁜 마음을 아는 듯 붉게 가을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00 s, ISO100
겨울 속에 남겨진 가을 빛_꽃과 단풍잎을 좋아하는 다섯 살배기 외손녀가 지난 가을 틈틈이 고사리 손으로 주워 모아 창가에 둔 가을 잎들 또한 특별한 정초의 해돋이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외손녀가 아까워하여 버리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마른 채로 창가에 놓여 있는 단풍잎들이 비스듬히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아 아이의 예쁜 마음을 아는 듯 붉게 가을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00 s, ISO100

이번 연말과 연초에는 서울에서 큰딸이 외손녀 둘을 대리고 휴가를 오는 바람에 우리가 키우고 있는 작은딸의 딸까지 세 명의 외손녀로 종일 북새통을 이룬 어린이집을 차리게 되었다. 덕분에 가족이 다 모이게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는 있었지만 차분히 앉아 지난 해를 뒤돌아보고 새로 오는 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지인이 카톡을 통해 보내와 읽은 스티브 잡스가 병상에서 남겼다는 마지막 말들은 새해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였다.

12월의 석양빛_지난 해 12월에는 두어 차례의 눈이 내렸다. 12월의 석양빛에 서있는 눈 쌓인 마른 풀은 한 해를 뒤 돌아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Pentax K-3, 11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3.5, 1/400 s, ISO100
12월의 석양빛_지난 해 12월에는 두어 차례의 눈이 내렸다. 12월의 석양빛에 서있는 눈 쌓인 마른 풀은 한 해를 뒤 돌아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Pentax K-3, 11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3.5, 1/400 s, ISO100

그 중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대목을 다시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노후를 위한 부를 충분히 축적했다면, 우리는 부와 상관 없는 것들을 추구해야만 한다.
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예를 들어 관계나 예술 혹은 젊은 날의 꿈과 같은 것들이 아마 그런 것들일 것이다.
끈임 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을 나와 같이 뒤틀린 인간으로 만들뿐이다."

"신은 우리에게 부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닌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다. 내 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다만 사랑에 의해 만들어져 쌓인 기억들뿐이다." 

"가족의 사랑과 배우자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정을 소중하게 여겨라. 자신에게 잘 대하고 타인을 소중히 여겨라."

이 시대에서 가장 성공한 혁신적 사업가의 하나였던 그가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권면은 어쩌면 누구나 다 아는 너무도 평범한 말이어서 싱겁기까지 할 정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늘 잘 실천하면서 살기 어려운 진정한 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비_지난 해 12월에는 두어 차례의 눈이 내리기는 하였지만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씨로 인해 가끔 겨울비가 내리곤 하였다. 비에 젖은 산수유 열매는 유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지난 가을을 추억하게 하였다. Pentax K-3, 20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3.5, 1/125 s, ISO100
겨울비_지난 해 12월에는 두어 차례의 눈이 내리기는 하였지만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씨로 인해 가끔 겨울비가 내리곤 하였다. 비에 젖은 산수유 열매는 유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지난 가을을 추억하게 하였다. Pentax K-3, 20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3.5, 1/125 s, ISO100

지난 해 12월에는 두어 차례의 눈이 내리기는 하였지만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씨로 인해 자주 겨울비가 내리곤 하였다. 한 해가 가는 세밑 아침에 가을 잎을 아직도 매달고 서 있는 비에 젖은 겨울 단풍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보기에 따라서는 미련을 못 버린 애처로운 나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 삭막한 겨울에도 누군가에게 소소한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 애써 가을 잎을 붙들고 서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나무처럼 느껴졌다.

세밑의 나무 하나_한 해가 가는 세밑 아침에 가을 잎을 아직도 매달고 서 있는 비에 젖은 겨울 단풍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보기에 따라서는 미련을 못 버린 애처로운 나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 삭막한 겨울에도 누군가에게 소소한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 애써 가을 잎을 붙들고 서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나무처럼 느껴졌다. Pentax K-3, 139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3.5, 1/60 s, ISO100
세밑의 나무 하나_한 해가 가는 세밑 아침에 가을 잎을 아직도 매달고 서 있는 비에 젖은 겨울 단풍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보기에 따라서는 미련을 못 버린 애처로운 나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 삭막한 겨울에도 누군가에게 소소한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 애써 가을 잎을 붙들고 서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나무처럼 느껴졌다. Pentax K-3, 139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F/3.5, 1/60 s, ISO100

겨울나무 너머로 지는 해를 따라 펼쳐진 2015년 12월 31일의 저녁노을은 가는 해가 아쉬워서인지 유난히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 퇴근하던 길을 멈추고 서서 노을 빛이 사라질 때까지 서쪽 하늘을 가슴과 사진 속에 담고 있었다.

이제 달력이 바뀌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권면처럼, 또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사랑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새해 아침 / 이해인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주빛 끝동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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