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R&D혁신안, 콘트롤타워 제 기능할 수 있어야
"출연연·대학·기업 등 혁신 주체들이 제시하는 바텀업 의견 담아 진행해야"

"정부 R&D 콘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한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이하 국과심) 사무국으로 과학기술전략본부를 미래부에 설치한다는 발표는 환영한다. 그러나 본부가 제 역할을 하려면 그에 맞는 권한과 인력도 필요하다. 국과심이 총리 산하기관이라도 대통령과 총리의 관심이 있어야 부처에서도 더 신경을 쓸 것이다."(출연연 L 기관장)

"콘트롤타워를 정비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간섭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아 그동안 지적됐던 이야기들을 모아 정리한 수준으로 느껴진다.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과학정책연구 관계자)

"기관장 임기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 환영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관장 선임 과정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눈치를 보는데 과학계가 피폐해지는 원인이다. 원장 임기를 2년 늘린 것만은 생색내기 용에 불과하다.(이공계대학 P 교수)

'정부 R&D혁신 방안'을 놓고 연구현장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일부는 환영하지만 우려하는 분위기도 적지않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정부 R&D 혁신방안'에 대한 과기계 연구현장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그동안 연구현장에서 거론됐던 문제들에 대한 개선안들이 담겼지만, 국가적인 장기적 비전 아래 절박함이 묻어난 혁신안은 제시돼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장에서는 이번 혁신안을 제대로 보완해 실행하기 위해 무엇보다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콘트롤타워 역할 결국 리더의 관심이 좌우"

우선 정부가 과학기술전략본부를 미래부 내 별도 조직으로 분리 신설해 정부 R&D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도록 하겠다는 안에 대해 과기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과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폐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권 교체마다 콘트롤타워가 없어졌다 탄생했다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내비치는 연구자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권한과 인력이 지원되지 않으면 자칫 이름만 있는 허수아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KAIST 한 교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거기에 맞는 권한과 인력이 필요한데 자칫 현재 구조에서 이름만 바꾸고 민간에서 몇명 보완하는 식이라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출연연의 P 박사는 "과학기술전략본부는 국과심 사무국으로 미래부 산하에 두는데 국과심은 총리 산하 기관"이라면서 "총리를 비롯해 리더의 관심이 없으면 관련 부처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총리와 리더의 관심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공계대학의 한 교수는 "콘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좋은데 미래부 산하에 두면 안된다. 정부가 하면 어렵다"면서 별도 설치를 주장했다. 그는 "미래부에 설치되면 출연연은 일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힘들어 진다. 자율성과 전문성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기정책대학원의 한 교수는 "이름과 달리 기존 부처의 행정적 지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중장기적 정책개발과 지원조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병주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R&D 혁신의 강력 추진과 콘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해 전략본부를 설치하고 싱크탱크인 과학기술정책원을 설립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면서 "좋은 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천과 실행이 중요하다. 후속 대책 마련과 지속적인 연구현장 모리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원장 임기 늘리고 PBS 축소안 대체로 환영

원장 임기를 3년에서 5년으로 확대, PBS(연구과제중심운영체계) 축소, 전문 기관 통합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기관장의 임기가 3년인 경우 1년 계획하고, 1년 마무리하다보면 실제 원장으로서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에서 1년 반 정도 뿐이라는데 대부분 동의했다.

출연연의 E 박사는 "해외의 경우 기관장의 임기가 10년 이상이고 연임도 가능하다"면서 "다만 처음 원장 선임부터 제대로 해야한다. 지금처럼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면 과기계를 망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박사는 "기관장의 임기를 5년으로 하면 대통령과 임기가 같으니 대통령과 같이 시작해 같이 끝나는 것은 어떠한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PBS 축소에 대해 출연연의 S 박사는 "1996년 연구자간 경쟁 유발과 성과 중심으로 시작돼 연구자들이 인건비를 벌기위해 과제 수주에 나서게 되는 나쁜 제도로 변질됐다"면서 "이번 혁신으로 연구자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PBS 축소안은 구체적 대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정부가 축소한다고 밝힌 것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 산업기술 출연연 한국형 프라운호퍼로?…"獨중기와 성격 다른 점 고려해야"

"ETRI, 기계연 등 6개 출연연연구을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개편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R&D지원 체계를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산업기술 중심의 출연연 개편에 대해 H 출연연이 한 박사는 "각 기관마다 기초에서 원천 대형사업과 사업지원을 대부분 하고 있는데 산업기술 중심으로 나눈다고 산업계가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는 "각각 잘하는 것이 있는데 묶음 예산을 주고 잘하는 분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게 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B 출연연의 H박사도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독일과 한국의 중소기업은 규모와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개편을 하더라도 실제 R&D를 직접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가진 중소기업은 거의 없고 중견기업도 많지 않다"면서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할텐데 일방적인 구분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 지원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C 출연연의 K 박사는 "정년 연구자 소속을 출연연에 그대로 두면서 이들의 인건비를 묶음 예산에 포함해 산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13일 오후 '정부 R&D혁신방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결기구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되살릴 것과 국과위가 과학기술 기획, 예산, 평가, 조정 기능 등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R&D 혁신'안에 대해 현장 과학자들은 찬성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전에 정부는 출연연, 대학, 기업 등 혁신 주체들이 상향식(bottom-up)으로 제시하는 혁신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을 입을 모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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