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시간에 쫓기고 운동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저는 주로 밤에 동네 학교 운동장과 산책로를 빠르게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합니다. 시간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목표 운동량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동네 한 바퀴를 돌자'거나, '오늘은 운동장을 12바퀴 돌아야지'하며 운동을 나갑니다.

그런데 몸이 살짝 피곤하거나, 날이 너무 덥거나, TV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나가기 싫어집니다. 이렇게 하루 이틀 거르다 보면 어느새 귀차니즘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슬그머니 누르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갈 즈음,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트위터를 통해 유심히 보아왔던 NIKE+라는 운동 보조 앱을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앱을 사용하고부터 슬슬 기록에 욕심이 생깁니다. 어제 7km를 걸었으면 오늘도 그만큼은 걸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고, 구간 최고 속도를 냈다는 칭찬을 들으면 슬그머니 다른 기록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겁니다.

오늘 80분을 정말 온 힘을 다해 걸어서 소모한 칼로리가 380kcal라고 하는데, 도너츠 하나에 300kcal가 넘는 것을 보면 집었던 간식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됩니다. '귀찮아져서 '하루 쉴까'하면 '오늘은 3.8km'를 달려야 하는 날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데이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알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데이터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하자 제 생활 방식이 바뀌는 것이지요.

일반인을 연애박사로 만들어 주는 '텍스트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카톡 대화 내용을 분석해 둘 사이의 감정을 분석해주는 앱입니다.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인지, 카톡이 왔을 때 언제 답장을 보내는 것이 좋을지, 어느 시점에 고백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고 합니다. 초기에 30만명이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를 바탕으로 분석을 시작했고, 지난 6월에는 이용자 수가 6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역시 기본은 데이터입니다.

전통적인 PC의 강자 마이크로소프트도 데이터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CEO인 Satya Nadella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미래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오는 '데이터'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을 개선할 때 어떤 데이터를 사용할지,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데이터 기반 문화'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전에는 그냥 버려졌던 시스템 로그 데이터나 거래 데이터들도 활용하여 '버려졌던 데이터'가 '새로운 연료'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구글의 검색 엔진이 초기 디자인부터 '유저의 검색 및 클릭 행태'라는 데이터에 기반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늦은 감은 있습니다. 하지만 저력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드디어 데이터의 신세계에 눈을 떴다는 점에서 그 후속 행보가 무척 기대가 되는 바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정부 3.0이라는 구호 아래 공공정보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공유하여 국민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정부운영 패러다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의 핵심도 정보의 개방과 공유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위의 두 가지 사례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부 3.0의 핵심은 '정보 공유'이지 '데이터 공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려졌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생성된 정보를 모아 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게 만든 확대된 웹 포털 서비스인 셈이지요. 물론 이러한 시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 국민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일상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가게를 내려고 할 때, 이사할 동네를 고를 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할 때 공개된 정보를 활용하면 어느 동네에 어떤 가게가 부족한지, 어느 유치원의 프로그램이 좋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보다 창의적인 활동이 일어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정보는 있되 데이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완성된 요리라면 데이터는 식재료입니다. 완성된 요리는 차려준 대로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메뉴를 고를 수는 있지요. 정부 3.0은 다양한 메뉴를 준비해 놓은 푸드코트와 같습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창의적인 음식을 개발하여 새로운 메뉴를 창조하려면 데이터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IBM의 Ginni Rometty도 '데이터를 21세기의 원유'라고 표현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의 Satya Nadella도 '회사를 재탄생시킬 새로운 연료'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인 페이스북이 매출액 2000만 달러, 순익이 900만 달러에 불과한 와츠앱을 190억 달러(약 20조원)라는 거금을 주고 인수한 것도 결국 데이터에 투자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빅데이터 시대, 창조경제가 빅데이터 기반으로 꽃을 피우려면 우리도 '데이터'에 집중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의 생성 단계에서부터 이를 어떻게 저장하고 공유할 것인가를 고려하여야 하고, 버려지는 데이터가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데이터의 신뢰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누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도구를 이용하여 데이터를 수집하였는지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창의적인 서비스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선화 KISTI 원장은

한선화 KISTI 원장.
한선화 KISTI 원장.
현재는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IDC의 '디지털유니버스 보고서'에 의하면 올 한해동안 생성되어 유통된 디지털 데이터의 양은 2.8 제타바이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1제타바이트를 책으로 만들어 쌓으면 지구에서 태양까지 1억5000만km를 37번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선화의 정보 프리즘'에서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사건,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재조명 해줄 예정입니다. 한 박사는 투명하게 보이는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무지개로 바뀌듯이 사물과 사건을 보는 또 다른 창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선화 박사는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성균관대학교 정보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산학을 전공했습니다. 1997년부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근무하며 국내외 과학기술 정보와 관련 정보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정보통으로 올해 9월15일부터 KISTI 원장직을 수행 중입니다.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첨단융합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부회장, 과실연 대전·충청지역 대표 등 활발한 대외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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