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원장 공모 불참 선언 후 기관경영 마무리 총력
한의학의 글로벌화, 내‧외부 활발한 소통으로 책임경영 귀감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은 최근 세월호 사고 현장을 찾았다. 세월호 사고 희생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나약해진 건강이 걱정돼 한의학 의료봉사활동을 위해서다. 그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며 한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은 최근 세월호 사고 현장을 찾았다. 세월호 사고 희생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나약해진 건강이 걱정돼 한의학 의료봉사활동을 위해서다. 그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며 한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최근 무더운 여름 뙤약볕이 한창 내리 쬐는 진도 팽목항 세월호 사고 현장을 다녀온 한 백발의 남자가 있다. 세월호 희생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나약해진 건강을 조금이나마 지키기 위해 한의학 의료봉사차 동분서주했던 이 남자.

·외부 관계자들의 추천으로 기관장 연임에 도전할 수도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고 원장 공모 불참을 선언, 3년간 맡아왔던 기관경영 마무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과학계 리더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의 '아름다운 퇴장'이 연구현장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보통 정부출연연구기관장이 되거나 과학기술 관계기관 원장이 되면 재임을 위해 노력하는 관례 아닌 관례가 있지만, 이를 벗어나 최 원장의 케이스는 여느 기관장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같은 출연연 기관장의 깔끔한 퇴장은 과학기술계 인사 문화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할 수 있음은 물론, 새로운 리더를 통한 기관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힘찬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사실 최 원장의 퇴임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단순히 최 원장이 기관장 재임 불출마 선언을 했다고 연구현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기관경영 성과 덕분에 더 관심을 받고 있다. 성과를 요약하면 글로벌, 소통, 학습이 키워드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한의학 글로벌화' 발판 마련

최 원장은 한의학 글로벌화의 기반을 확실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국제보완의학학술대회 국내 유치를 위해 발표하고 있는 최 원장의 모습.<사진=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최 원장은 한의학 글로벌화의 기반을 확실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국제보완의학학술대회 국내 유치를 위해 발표하고 있는 최 원장의 모습.<사진=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한의학계 안팎에서 꼽는 최 원장의 가장 큰 성과는 한의학의 글로벌화다. 국내에서만 머물던 한의학 R&D를 세계화시키는데 확실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이 많다.

최 원장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활약했던 경험을 토대로 적극적인 글로벌 한의학 마케팅을 펼쳤다.

무엇보다 재임기간 공들인 세계적인 보완의학 연례학술대회를 국내에 유치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10회 국제보완의학학술대회 ICCMR 2015(International Congress on Complementary Medicine Research)가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돼 세계적인 전통의학자들의 지식향연을 펼치게 될 예정이다.

WHO 전통의학협력센터 회의에서 중국 중의과학원 류바오옌(劉保延) 상무 부원장과 공동 의장을 역임하면서, 미국 하버드 의대로부터 초청 받아 한의학의 강점을 설파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하버드 의대와 공동연구도 추진되고 있다.

한의학연이 세계 최대 보완의학학회(ISCMR:International Society for Complementary Medicine Research) 아시아 지역 커뮤니티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아시안 챕터 초대 의장을 맡기도 했다.

한의학연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최 원장 부임 이후 한의학의 국제화 표준화가 심도있게 추진되면서 직원들 스스로 세계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이야기 한다.

3년간 끊임없이 ''했다

최 원장은 과학기술계에서 소통의 달인으로 통한다. 2011년 취임 이후 끊임없이 한의학을 주제로 이야기가 흐르게 했다.

퇴임을 앞두고서도 무던히 직원들과 대화를 펼쳤다. 지난 3월부터 직원 100여명과 11 면담을 3~4개월동안 지속했다. 그간의 활동을 점검하며 연구소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하는데 열을 올린 노력이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굳이 퇴임을 앞두고 대화를 할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말단 사원부터 보직자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듣고 필요사항을 파악해 조금이라도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모습에 적잖은 구성원들이 마음이 따뜻해 졌다는 후문이다.

우선 '도시락 간담회'가 인기였다.  점심시간 젊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10명 정도와 함께 조별로 만나는 소통이었다. 201111, 20126, 작년에는 9번 등 매년 꾸준하게 펼치며 연구소의 혁신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는 모두 기록해 각 이슈별로 액션 플랜을 만들어 실행 과정과 결과를 체크해 나갔다.

내부 연구자간 칸막이를 허무는 연구 분야 소통을 위한 '인터랩 세미나는 융합 공동연구를 도모하는 문화의 기반이 됐다. 매년 20차례 가까이 진행되면서 다른 연구부서에서의 연구를 서로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 

특히 인사에 대한 결정도 소통이 기반이 됐다. 다른 출연연에서 유독 관심받고 있는 소통을 통한 인사 단행 방식이다. 최 원장이 취임 6개월 후 추진했던 경영 행정부문 보직자 임명에서 같은 부문의 비보직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무기명으로 보직자들을 추천케 했다. 바로 다음날 그대로 보직 임명에 반영했다. 이는 그간 보직에 관련된 각종 투서와 불만을 일소하는 효과를 거뒀고, 상호간 모두의 책임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내부의 평가다.

최 원장은 'KIOM 문사연(問思筵)'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공개토론의 장을 펼치기도 했다. 논문 저자권이나 인센티브같은 다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슈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합의안을 도출하는데 노력했다. 덕분에 연구원의 정체성과 연구의 방향을 결정하는 온고창신(溫故創新)이라는 특유의 연구모델을 고안해 내는 성과를 거둬 냈다.

내부 구성원 뿐만 아니라 전국 한의대 한의학과 학장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한의학계를 위해 학연 연계 발전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간담회를 여러차례 펼치기도 했다.

인력교류 차원에서 출연연간 '담장 허물기'를 시도한 끝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수 연구원을 연구원의 한의기술표준센터장(물리학 박사)으로 영입하는 성과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KIOM문사연을 통해 직원들과 적극 소통하며 민감한 사안들도 공개토론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결과 온고창신의 특유 연구모델을 고안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KIOM문사연에서 좌장을 맡고 있는 최승훈 원장.<사진=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KIOM문사연을 통해 직원들과 적극 소통하며 민감한 사안들도 공개토론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결과 온고창신의 특유 연구모델을 고안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KIOM문사연에서 좌장을 맡고 있는 최승훈 원장.<사진=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만년 미흡보통에서 개원 이래 첫 1'4자성어 경영' 통했다

최 원장은 처음으로 연구원에 부임했을 때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노자 도덕경에 있는 구절을 꺼내 들었다.

당시 그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는 성질이 있습니다. 남을 항상 이롭게 하고 자라게 하며 다투지 않고 낮은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갑니다. 저는 기관장의 마음과 행동이 이처럼 마치 물과 같은 덕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관은 수월성의 연구 성과를 내야하는 출연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관장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그러한 자세가 모든 구성원들과 공유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학술세미나에 직접 참여하여 지식과 정보를 학습하고, 특히 독서활동을 중시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동안 최 원장은 연구원들의 학습을 위해 다양한 한의학 강좌를 개최하고, '창신(創新) 강좌'라는 이름으로 미래 보건의료 트렌드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전문가 초청 특강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최 원장의 경영기간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온고창신(溫故創新)'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넘어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의미의 '온고창신'은 전 구성원이 참여해 확정한 한의학연만의 연구모델이다. 이 연구모델 정신에 입각해 한의학 중심의 예방의학 개발 연구와 정보통신과 생명공학기술을 융합, 다양한 융·복합 연구사업에 착수하면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로 작년 6월 세계적 수준의 뇌영상 및 의료영상 분야 연구기관인 미국 하버드 의대 마르티노스센터와 손잡고 침치료 기전 효과를 밝히기 위해 한의학-뇌영상 접목 공동연구를 진행중에 있다.

이러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노력 덕분에 한의학연은 평가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적표를 받았다.

개원 이래 최초로 기관평가 1등을 달성했다작년 경영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우수' 평가를 받았고, 이 중에서도 당당히 1등을 기록했다그동안 '미흡'이나 '보통등급을 받아 왔다던 터라 1등 성적표의 의미는 여느 연구소와는 남다르다. 주변에서는 이제 한의학연이 타 연구소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했다는 방증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최 원장은 오는 19일 공식 퇴임을 앞두고 노자 도덕경의 '功遂身退(공수신퇴) 天之道也(천지도야)'라는 한 구절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물리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니라."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최 원장은 과학기술계 리더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며 "과학기술계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라도 국가적인 성과를 낼만한 좋은 인사가 많이 올 수 있도록 열린 문화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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