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 40년 대한민국 산업화 40년]④ 중심이 없다
"대덕의 주인 출연연 주인은 누구?" 안팎서 의문제기…정체성 문제까지

 

 

"내일 당장 출연연이 없어진다면 누가 슬퍼할까 생각해 봤다. 국민도, 정부도, 기업도 크게 아쉬워할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미래가 준비 안 된 불쌍한 배우자를 바라보는 아내나 남편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도 들었다. 과연 출연연이 없어진다고 우리나라 경제가 흔들릴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하면 발전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총론에서는 변화에 동의를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반대를 하는 이유는 총론에서 희생되는 사람이 누군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각론에서 자신이 희생해야 할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출연연은 국책연구소다. 출연연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 대한민국이 형편없이 되어 버린다고 해도 이대로 있을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은 기득권의 양보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된 지 40년.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수 있었던 시간에 유독 대덕특구에만 변화의 바람이 빗겨간 듯 보인다.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연구 성과 창출의 미진함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기에 충분했다. 과학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가슴 아픈 말들도 어느새 자극이 아닌 일상이 돼버렸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 40년의 내공이 고스란히 쌓여 있어야 할 대덕연구개발특구의 휘청임은 이미 눈에 보일 정도다. 40년 내공이 없어진 오늘의 대덕연구개발특구는 과학기술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머물게 될 수도 있다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한 채, 앞에 보이는 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지금의 상태로는 대덕의 미래가 암담하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맞게 된 특구의 노화 조짐은 이 곳 저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창조경제 전초기지라는 새로운 임무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성과도 없이 보여주기에만 치중해 있는 실정이다. 출연연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성과를 독촉하는 상위 기관의 압박때문에 정신이 없다"라며 "뭐든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마 모든 출연연이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대덕특구의 모습은 어떠한가. 상위 기관 말 한 마디에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새로, 이미 중심축은 심각한 붕괴 상황에 직면한 듯 보인다. 뭉치지 못하는 출연연 뒤에는 애정과 관심이 없는 기관장들, 그리고 개인주의가 만연해진 연구원들이 있다.

◆ 출연연 주인은 누구인가?…개인주의 만연한 연구현장

과연 출연연 연구원들은 대덕특구의 주인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모든 것에 주인이 있는 시대다. 볼펜부터 음식, 하다못해 아무렇게나 심어져 있는 이름모를 풀마저 주인이 있다. 그렇다면 대덕특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같은 것이라도 내 것과 남의 것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인의식'은 사회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토대로 작용해왔다.

'남이 하겠지', '내가 할 필요가 있나?'. '나보다는 저 사람이 해야 하는 게 맞지' 등의 푸념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에서 나오는, 일종의 자기 안주인 셈이다. 일처리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주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다.

잘 되는 조직은 다르다.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갖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하나로 뭉쳐진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점에서 대덕특구에 가장 필요한 건, 물질적인 부분이 아닌 연구원들 개개인의 의식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 첫 걸음은 바로 자발적 실천이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스스로 행동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도 돕지 않는다. 스스로가 주인공이란 생각을 갖고 노력할 때, 더 좋은 방향이 나올 수 있다"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자발성이고, 자발성은 주인의식에서 나온다. 자기 자신이 이 곳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부와 KISTEP 8월 발표한 '2012 이공계인력 육성·처우등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 중 이공계 인력 이직률.
미래부와 KISTEP 8월 발표한 '2012 이공계인력 육성·처우등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 중 이공계 인력 이직률.

 

◆ 출연연 수장들의 낙하산 논란, "진정한 리더십 필요"

매번 되풀이 되는 출연연 수장들의 인사 논란. 지난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난 10월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최민희 의원은 '낙하산'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나선 바 있다. 최 의원이 미래부와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로부터 제출받은 '기관별 임원 현황'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임명된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 과학기술분야 산하 기관장에 친박 계열 인사들의 낙하산 보은 인사가 이뤄졌다는 것.

그는 "임기가 1년 이상 남아있는 이준승 KISTEP 원장, 이승종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최태인 한국기계연구원장 등이 연이어 줄사표를 낸 것 또한 본격적인 물갈이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며 최근 임명된 출연연 기관장 선임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과학기술분야 산하 기관 및 출연연 기관장들에게 일괄사표를 받고 일부 임원들은 낙하산으로 지목해 중도하차 시켰다"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이나 기준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 물갈이가 이루어지고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진다면 일선 연구원의 혼란은 물론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연연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A 기관의 수장 자리는 아예 힘겨루기에서 이긴 부처가 자리를 차지하는 식으로 위상이 하락한 지 이미 오래다. 과학기술과 출연연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기술계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은 출연연을 더욱 더 병들게 하는 폐단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나 대덕에 애정과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부처와 정권의 낙하산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 상황은 누가봐도 체념할 수 밖에 없다.

지난 10월 8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진행된 25개 출연연 협약식이 한 예다. 그 자리는 25개 연구기관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출연연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일종의 언약식과 같은 자리였다. 그러나 25개 대표 중 기관장이 참석한 곳은 12곳 뿐으로 나머지 기관은 부원장이나 선임연구부장이 대리 출석했다. 협약식보다 먼저 잡힌 약속이 먼저라는 이유였다.

모든 행사에 기관장이 참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출연연 간 협업 연구를 약속하는 자리인만큼 모두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기관장들의 신경이 어디로 쏠려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관장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연구원에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기관장이 와야 한다. 그저 자기 자리 보존하기 위해 오는 인사는 사실 필요없지 않나 생각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 출연연의 역할을 위해 중지를 모으자?…"중심이 없으면 의견도 모아질 수 없다"

중심이 없으니 모아지는 의견도 있을 수 없다. 대덕의 위기, 출연연의 위기를 외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중지를 모아보자 수없이 이야기해보지만 정작 의견을 모을 구심체가 없어 매번 흐지부지 사라져버리고 만다.

출연연을 대변할 협의체도 마땅치 않다. 그나마 과학기술계, 출연연 이름을 내건 단체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한 관계자는 "현재 출연연을 대변한다고 하는 단체들을 보면 대부분 활동하는 사람들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특정 단체를 대변한다고 하면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해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체들이 간부들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생각이 단체의 생각, 그리고 출연연의 입장이 되버리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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