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경영·창조경제 실현 위해 2일부터 '100일 실천계획' 돌입
"자리 연연않고 결과 도출 배수의 진"-"생색내기용" 논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김흥남)의 핵심 보직자들이 일괄 보직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출연연 간부들이 무더기로 보직사퇴 의사를 밝힌 것 자체가 보기 드문 사례인데다 ETRI가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100일 실천계획'에 돌입한 시점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ETRI 등에 따르면 최근 기관 자체적으로 '위기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기조에 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7명의 직할 부서장들이 보직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퇴 의사를 밝힌 부서장들은 융합기술연구부문 소장, 부품소재연구부문 소장, 방송통신미디어연구부문 소장, 통신인터넷연구부문 소장, 소프트웨어연구부문 소장, 차세대콘텐츠연구소장, 창의미래연구소장 등 ETRI의 핵심 보직자들이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일명 '7인 특공대'로 불리며 ETRI 위기극복을 위해 구성된 '위기경영확대전략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직할 부서장들이 보직사퇴라는 극약처방을 들고 나온 것은 계속되는 기관 운영 위기에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데다 그동안 노조가 지속적으로 한 '기득권 축소' 요청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조 등 일각에서는 '실제 보직사퇴 없는 보여주기식' 대응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ETRI는 기관의 정체성을 찾고, 창조경제의 결과물을 선도적으로 도출하기 위해 지난 2일부터 이른바 '100일 실천계획'에 돌입했다. 앞으로 100일 후인 12월까지 세계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해 ETRI의 기관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다.

ETRI 관계자에 따르면 100일 실천계획은 7명의 직할 부서장들이 작성한 '위기경영 100일 실천 결의서' 내용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 달 29일부터 2박3일의 워크숍을 갖고 결의서를 도출했다. 그 첫 번째 조항에 일괄사퇴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직자들이 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내부 혁신을 주도할 새로운 인물들로의 교체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연구원측의 생각은 다르다.

김흥남 ETRI 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창조경제의 정책에 부응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출연연이 되기 위해 앞으로 100일 동안 필사즉생(必死卽生)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직할 부서장들과 다짐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동안 ETRI는 이들 보직자들 중심으로 '위기경영확대전략위원회'를 운영해 왔으며 이들은 위기경영 해법의 일환으로 보직사퇴와 기득권 축소를 구성원들에게 제안했다. 이들은 보직사퇴 외에도 ▲출장 시 비즈니스 석 이용 금지 ▲주차장 지정석 사용 금지 ▲사무실 공간 축소 등의 기득권 축소 방안을 제시했다.  

ETRI 고위 간부들의 일괄 보직사퇴 결의는 처음있는 일로 위기경영의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에 비장하게 대처하겠다는 판단에서 결정됐다는 것이 ETRI의 설명이다. 앞서 ETRI는 지난 4월 위기경영 선포식을 개최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정부의 새로운 미션 마련 요구에 기관 임무와 역할 재정립에 대해 보다 실질적인 고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TRI 관계자는 "일괄 보직사퇴라고 해서 사퇴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아니다. 창조경제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각오를 다지기 위해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쳤다고 보면 된다"며 "직할 부서장들 뿐만 아니라 원장도 이같은 다짐으로 임하고 있다. 100일 실천 계획이 마무리되는 12월 10일 경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ETRI 노조는 이같은 결정이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결의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ETRI 임무와 역할 정립이라는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긴 했지만, 진짜 연구원들이 힘들어하는 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아닌, 연구원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승적인 대안을 마련해 내야 할 때다"고 지적했다. 

ETRI 내부 관계자는 "위기경영 선포식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직원들 조차 궁금해한다"며 "부처의 채근 때문이 아니라 위기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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