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다…열정이 없다"는 출연연에 보내는 경고이자 SOS
전투 치르는데 필수품은 총알·식량…출연연이 공급 못하면 누가하나

일요일이었던 지난 23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저녁 늦게까지 대덕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 기업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KAIST에서 진행된 '출연연 기술사업화 워크숍'. 식사도 도시락으로 대신하는 그야말로 '끝장토론'이었다. 저녁 8시부터는 30~40대 젊은 연구원, 벤처기업가, 20대 대학원생과 대화를 나눴다. 배석자도 없는 격의없는 자리였다.

최 장관의 목소리 '톤'은 전과 달랐다. "잘해줘서 고맙다"고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앞으로 더 잘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출연연을 바라보는 온도차가 크다. 더 이상 요구만 할 때가 아니다. 이제 국민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할 때는 긴장감이 돌았다. "출연연으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할 때는 무언가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이 정도 역시 기관장의 의례적인 인사치레나 주문사항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부적으로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날 진행된 대화에서는 출연연 관계자들이 직접 들으면 모골이 송연할 만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기술사업화 등과 관련해 출연연 기관장의 보고를 들은 최 장관은 "정말 그렇게 잘 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숙제를 하나 내주겠다"고 했다.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뜨끔했을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젊은 연구원과 벤처인들이 이런저런 주문사항을 내놓자 "대덕에 왜 그렇게 많은 특혜를 주느냐는 질책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출연연이 아직도 요구만 한다. 가능한 선에서 다 들어줄 생각이다. 그렇지만 책임은 출연연이 져야 한다"면서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데 여전히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에 없는 고강도 경고 메시지다.   

최 장관과 미래부, 그리고 출연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정부의 출연연 정책 기조는 '안정된 연구환경 조성'과 '자율성'이다. 대통령은 물론 장·차관도 연구현장(출연연)을 흔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내내 논란이 됐던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백지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물갈이론'과 관련해서도 출연연 기관장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만큼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 장관도 밝혔듯 출연연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뚜렷하다. 출연연에서는 안정된 연구환경 조성과 자율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정년보장, PBS 개편, 평가제도 개선, 인건비 문제 해결 등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위에서 볼 때 출연연에 이미 많은 것을 해줬으며 이제는 결과를 내놔야 할 때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 자율성을 준다고 하는데도 뭔가 해보겠다는 아래로부터의 열정과 열의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도 높다. 

최 장관은 출연연 기관장을 역임했다. 누구보다 출연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또 스스로에게 맡겨진 임무도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자율성을 주고 싶은데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주변에서 출연연을 이대로 둘거냐고 채근하는데 출연연에서는 자꾸 더 요구만 하니 답답하다. 실제 최 장관은 이번 방문에서 "온도차가 뚜렷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새정부의 슬로건인 '창조경제'는 출연연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장순흥 KAIST 교수도 대통령직인수위원직을 마친 뒤 한 인터뷰에서 "출연연 체제를 지금처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수많은 사람, 조직과 전투를 치러야 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정말 출연연이 잘해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만큼 출연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얘기다. 밖에서 볼 때 출연연은 여전히 "비효율적이며, 예산투입 대비 결과는 적고, 월급만 많이 받고 편하게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최 장관은 '위'에서 출연연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총알과 식량이다. 이것을 공급해줘야 할 곳은 출연연이다. 그런데 공급이 원할하지 않다.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최 장관이 이번 대덕 방문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은 전투를 치르고, 이길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일종의 SOS 신호다. 동시에 이렇게 하다가는 전투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 메시지다. 이제 출연연이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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