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기능 등 정치권 쟁점에 묻혀…科技 현안 묻히나 우려감 증폭
반쪽짜리 미래과학부…원자력硏 이관등 과기중심 부처완성 시급

통상교섭 기능 이관을 둘러싼 인수위-외교통상부 간 충돌사태에 정부조직 개정안의 다른 이슈들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운영 전초기지 역할을 해야 할 미래창조과학부 역시 모든 논의가 실종됐다. 특히 원자력연구원 소관부처와 원자력안전위원회 독립 문제 등 연구현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이슈는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어 과학기술이 다시 '반짝 관심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논의 스타트

지난 4일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국회 차원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됐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여야 10인 협의체와 행정안전위·외교통상통일위·농림수산식품위·국토해양위·교육과학기술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정무위·운영위 등 8개 상임위를 병행 가동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시한인 14일까지 처리되야 할 안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법률 개정안 등 37개에 이른다. 그러나 여야간 협의는 첫날부터 암초를 만나 난항을 겪고 있다. 외교와 통상교섭의 기능 분리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해당부처 수장인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헌법을 흔드는 것"이라는 강성 발언으로 포문을 열자 인수위의 진영 부위원장이 "궤변이자 부처이기주의"라며 공개적으로 맞받아쳤다. 여야의 개정안 논의 첫날은 이처럼 극심한 견해차만 확인한 채 소득없이 끝났다.

양측은 5일 다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지만 통상교섭 기능을 신설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는 문제를 놓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반론을 펼침에 따라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당분간 극심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부처들의 유사한 반발이 줄을 이을 것이란 점이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사활이 걸린 해당부처들은 이미 외곽단체 등을 동원해 치열한 전방위 로비전에 나서고 있어 사안별 협의가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계의 최대 관심사인 미래창조과학부 원안 통과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자력연구원 소관부처 문제 등은 보따리도 풀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계 주요현안 산적…정치권 쟁점에 묻히나

신설될 미래창조과학부는 차기 정부의 제1핵심부처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합의해야 할 쟁점이 산적해 있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 과학기술의 연구개발·협력·진흥, 산학 협력 및 과학기술인력 양성, 국가정보화 기획·정보보호·정보문화, 방송·통신의 융합·진흥 및 전파관리, 정보통신산업, 원자력 안전, 우편·우편환 및 우편대체에 관한 사무를 관장(제28조)"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미래과학부의 기능과 업무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지적이 계속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래·과학기술 관련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존 부처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여야간 협의에서는 결국 미래과학부의 정보통신기술(ICT) 업무 및 우정산업본부·대학-기업간 산학협력 등의 분리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 과학으로 분리되는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기업간 산학협력을 어느 부처가 맡을지를 놓고 이미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5일 열린 국회 교과위 전체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응권 교과부 1차관은 "소관을 옮기는 것보다 개발 지식의 사업화와 기술이전을 제도화할 기본법이 필요하다"며 산학협력 기능의 미래과학부 이관에 반대 입장을, 조율래 2차관은 "미래과학부가 과학기술 육성 차원에서 산학협력을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그동안 논란이 지속돼온 원자력 관련 업무가 어떻게 조정되느냐도 큰 관심사다. 앞서 교과위 회의에서도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가 미래과학부로, 원자력 연구개발 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잇따랐다.

현재 여야간 협의를 기다리고 있는 원자력 관련법안은 크게 정부조직법 개정안, 원자력진흥법 개정안, 원자력안전법 개정안 등 3가지이다. 이들 개정법안에는 원자력 연구·개발·생산·이용에 관한 사무는 산자부 장관, 원자력 안전은 미래과학부 장관이 관장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연구현장과 원자력계에서는 정치권에 이들 3개 법안의 일괄 논의와 함께 원자력 관련 업무조정의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 업무를 미래과학부로 이전하면서 결국 원자력 진흥업무와 원자력연구소가 산자부로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한 만큼 이들 사안이 '패키지'로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과학기술계 쟁점사안들에 대해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집중적으로 따져보겠다'고 한 만큼 이번 개정안 협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협의 시작 첫날부터 불거진 외교통상 기능분리 문제를 비롯 여야간 격돌이 예상되는 굵직한 사안들이 즐비해 과기정책 관련 논의가 묻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제 4일 있었던 여야 10인 협의체 첫 만남에서 미래창조과학부는 방송·통신정책 이관의 적정성, 원자력 거버넌스는 원자력안전위의 대통령 소속 독립기구 유지의 필요성 정도만 언급됐을 뿐 더이상 진전된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로선 미래과학부 속빈 강정…실질적 힘 실어야"

한편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의에서 또 하나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사안은 '과학기술 기반의 창조경제'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느냐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누누히 강조해온 '창조경제'는 새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다.

또한 5년 뒤 박근혜 정권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의 이같은 '과학기술 중심 창조경제 활성화'의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개편안, 특히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인수위 역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의 배경을 설명하며 "창조경제 활성화의 한 축을 담당해 미래 성장동력 발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향후 국회에서 진행될 개정안 협의에서는 창조경제의 구체성과 실현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안이 주요쟁점이 되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5일 이상민 교과위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과학기술계 전문가 간담회에서도 이같은 주장이 반복됐다. 박상대 한국과총 회장, 강신영 과실연 상임대표, 박성현 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신용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 김명수 대덕클럽 부회장 등 과학기술계 주요단체장 19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미래창조과학부의 국가 R&D전담기능 보장해 산업기술과 일자리창출을 같이 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과기계 참석자들은 특히 박 당선인이 공약한 대로 기초과학과 산업기술을 연계해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산업기술 지원기능이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정부조직 개정법안에서는 산업기술 지원기능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기술 연구개발정책, 에너지·지하자원 및 원자력 연구·개발·생산·이용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제37조)"고 되어 있다. 참석자들은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기초원천 기술과 산업 기술의 통합이었는데 현재 개정안에는 당초의 발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개정안에 미래창조과학부에 산업기술 지원기능이 제외돼 있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연구성과를 상용화해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로 연계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고 지적하고 관련 기능과 예산의 상당 부분을 미래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를 개최한 이상민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애초 창조경제의 핵심부처로 주목받았지만 과학기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사실상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산업기술 연구개발과 산학협력 업무를 이관해 실질적인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원자력 연구개발 업무의 미래과학부 총괄과 원자력안전위를 규제위원회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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