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수연구원 선별연장안에 노조 강력반발
눈치보는 출연연…올해 대상자 56명 냉가슴만

정부의 우수연구원 정년연장안을 둘러싸고 각 출연연이 노조와의 해법을 찾지 못한채 해를 넘길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한국천문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일부 출연연이 정년연장제도 도입 움직임을 보이자 공공연구노조와 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지난 18일 오전 11시 천문연 앞에서 '정년차별 폐지와 선별적 정년연장 도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출범식을 열었다.

천문연은 지난 10월 내부 설문조사와 11월 시행공고 등을 거쳐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우수연구원 정년 연장제를 도입했지만 노조로부터 단체협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올해 1명인 퇴직자예정자가 정년연장을 신청하지 않아 2012년은 시행 계획을 유보됐다는 후문이다.

에너지기술연도 17일 우수연구원 정년 연장제도 도입을 위한 규정심의위원회를 개최했지만 노조의 반발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른 20여 곳의 출연연은 노조의 강한 반대와 타 기관의 파급효과를 우려해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7개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에 종사하는 연구직은 약 8000명으로, 이 가운데 올해 61세 정년을 맞는 인원은 56명이다.

내년부터 매년 97명, 98명, 130, 130명이 정년을 맞게 된다. 올해 초 국과위는 경기회복과 함께 연구자의 처우개선 및 사기진작책의 일환으로 27개 과기분야 출연연에 재직 중인 연구직 약 8000명의 10%에 해당하는 800명까지 65세 정년을 적용 받도록 하되, 기관별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이 안은 지난 2월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 이사회에서 각각 통됐다. 노조가 반대하는 이유는 우수한 실적을 거둔 10%를 선별해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성과를 내기 위한 경쟁 및 줄서기로 연구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연구원 간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년연장 대상자는 책임연구원 7년 이상을 지낸 우수 연구자로, 기관별 평가작업을 거쳐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과위가 향후 5년간 정년 대상자 중 책임연구원 7년 이상을 지낸 연구원의 총수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90% 가량이 적용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7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8월 KIST가 정부 출연연 중 가장 먼저 우수연구원 정년 연장제를 도입했다. KIST는 자체 정년연장심의위원회를 거쳐 7명의 연구원을 정년 연장 대상으로 선정했다.

제도를 도입한 출연연들은 퇴임을 앞둔 모든 연구원의 정년을 한 번에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퇴직을 맞은 연구원 숫자가 몇 명 되지 않아 올해 안에 제도를 도입해야 모두 정년연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KIST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KIST는 정부안을 도입하며 영년직연구원제도 심사 기준과 같이 특허나 논문실적 등을 정량화해 평가를 실시했다. 이번 정년퇴직 대상자 중 기준에 미치지 못한 대상자들은 연구소를 떠났다.

올해 정년을 맞은 한 연구원은 "출연연의 정년연장은 과거 IMF 때 줄인 것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고 이공계위 사기진작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의 주장처럼 65세 일괄 환원이 사회적으로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퇴직을 앞둔 직원들 중엔 경험이 축적된 우수한 인재도 있는 반면 제대로 역할을 못해 후배들에게 짐이 되는 사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연구현장에 출근해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퇴직을 앞둔 한 연구자는 "노조의 구성도, 정년 기준도 각 출연연의 똑같지 않은데 상위조합이라는 이유로 모든 출연연을 동일한 조건으로 진행하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각 출연연 별로 해당 노조와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화를 통해 각 기관의 제도와 실정에 맞게 정년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만족하는 정년연장제도 도입은 갈수록 요원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실제 각 출연연별로 퇴직일도 생일을 기준으로 해당 월, 해당년도 12월, 또는 상반기·하반기에 진행하는 등 통일된 규정은 없었다. 또 대부분의 기관이 연구원 61세, 기능직 58세 퇴직이지만 식품연구원은 10여 년 전부터 연구직과 행정직의 관계없이 정년 61세로 통일해서 출연연 정년제도의 우수사례로 꼽히고 있다.

기계연구원도 연구직과 행정직 구분 없이 책임급은 61세, 선임급은 58세가 퇴직연령이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연구원은 "현재 연구직에만 해당하는 10%의 규정은 기능직, 행적직 등 다른 직종 근무자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수 있지만 차기 정부에서도 정년연장에 대한 우호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차츰 확대해 나가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객관식 답안을 컴퓨터로 채점하는 것이 아니기에 노조의 주장처럼 우수연구원 10%를 선정하는 기준이 기관별로, 기관장 별로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연구과제 평가처럼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면 최대한 공정한 결과,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출연연의 인사업무 담당자는 "과기계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측면에서 사회전반이 정년연장을 얘기하고 있다. 과기인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정년연장을 풀어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각 기관들이 제대로 된 논의 조차 시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와 기관이 함께 협의해 중요사항을 정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 출연연별로 노조 가입률이 50%를 넘는 곳이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대화의 여지도 주지않는 일방적인 주장은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생각을 전했다.
 

▲긱 출연연별 정년 대상자 인원과 정년연장제도 관련 논의 내용.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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