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의 한의학 이야기]

설 전주에 발표된 체질대표 얼굴이 뜻밖의 빅 히트를 쳤다. 난생 처음 4대 TV 방송사 공동 녹화를 하고, 썰렁하리라던 교과부 기자실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면서 분위기가 다르다 싶더니, 급기야 주요 인터넷 사이트의 검색 순위에서 네이버, 구글 1위, 다음 2위까지 올랐다. 다음 날엔 네이트온 메신저에도 대표얼굴이 떠 있었으니, 이젠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체질진단 과학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뜻밖이라는 내 느낌, 그다지 기대가 없었던 것은 왜였을까? 실은 이번 성과는 작년 초 이맘 때 발표했던 체질 진단 툴 실용화의 부속 산물일 뿐이다.

당시 사상체질의학회에서 발표회를 하고 대학병원에 베타버전을 공급하면서 보도 자료를 뿌릴 때 상당히 기대를 했었지만, 언론의 반응은 시들했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세계 최초의 '한의학 진단 과학화' 성과라고 우리 연구팀만 자부심이 가득했던 것이다.

역시 대중을 사로잡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인가 보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한의학에 대해 국민적 신뢰가 의문 부호를 달고 있는 지금이지만, 미래에는 신뢰할 수 있는 진단 능력을 갖춘 한의학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한의학의 진단과학화는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 체질대표 얼굴의 바탕이 된 체질진단 툴의 성능은 아직 썩 좋지 않다.

그것은 과학적 연구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연구 대상 자체가 매우 낯설고 풀기 어려운 토픽이기 때문이다. 사상체질의학은 체질이 다르면 같은 병이라도 그 병리 기전이 다르고 따라서 서로 다른 약을 써서 치료하는 의학이다. 유전자가 다르면 병리 기전이 다르고 따라서 서로 다른 약을 써서 치료한다는 현대의 맞춤의학과 전체적 논리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다른 점은 현대 맞춤 의학이 유전자의 차이로 진단하는데 반해, 사상체질의학은 체질의 차이로 진단하며 체질은 표현형의 조합으로 구별한다는데 있다. 바로 여기에 표현형 체질 진단의 어려움이 있다. 안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얼굴 형태는 매우 다양한 유전자와 환경요인의 조합으로 형성된다. 물론 성형의 경우를 제외하고도 말이다.

체질진단에 유용하게 쓰이는 턱 너비의 경우 선천적으로 타고난 골격에 의해 결정되는 면도 있지만, 살이 찌면 커지고 나이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이것을 연령 이동 평균 곡선에 따라 연령보정도 하고 BMI 보정도 해서 가급적 선천적 요인을 뽑아내서 쓰기는 한다.

그럼에도 완전히 환경 요인을 배제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런 연구를 하는 연구 그룹이 전 세계에 전무하다보니 모든 기초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안면 인식과 연구 분야가 비슷한 듯 하나 안면 인식은 대강의 패턴을 식별하는 것일 뿐 우리처럼 정확한 길이와 각도와 비율을 계산할 필요까지는 없다.

예를 들어 눈 꼬리 각도 같은 변수를 구하기 위해 눈꺼풀의 윤곽을 오려낼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우리 연구팀의 안면연구팀은 얼굴 각 부위의 윤곽을 정확히 오려내서 각 세부의 길이와 각도를 계산해 낸다. 표현형 연구는 원래 유전학의 출발점이었다. 완두콩에 주름이 있는지 없는지, 색깔이 노란색인지 연두색인지 등등이 어떻게 유전되는지에 대한 관찰에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표현형은 판별이 매우 간단한 경우이고 따라서 표현형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단순하다. 하지만 얼굴 형태 변수들은 연속형 변수이고 그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르는 것들이므로, 당연히 판별도 어렵고 유전자도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수들이 많이 모여 체질대표얼굴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연구를 우리는 왜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임상에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유전자 맞춤의학은 이상은 좋으나 아직 임상에서 현실화된 것이 전혀 없다. 질병도 하나의 표현형이고 특수한 유전 질병이 아닌 당뇨나 심혈과 질환 같은 대부분의 현대적 질병은 사상체질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많은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소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정적 유전자를 찾기가 어렵고 그래서 임상에서 활용될 날이 요원한 것이다.

이에 반해 사상체질의학은 유전자를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이미 임상 현실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를 찾기 전에 체질진단에 결정적인 표현형을 찾고 이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만듦으로써 임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전자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표현형을 결정하고 이 표현형은 다시 유전자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 사이클을 갖고 있으므로 장차 유전자 맞춤의학의 확립을 위해서도 먼저 표현형 연구를 세련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 우리 한국에서 출발한 표현형 맞춤의학이 세계로 펴져 나가는 때를 기다려 보자.

체질별 대표얼굴.  ⓒ2012 HelloDD.com
체질별 대표얼굴.  ⓒ2012 HelloDD.com

▲김종열 본부장 ⓒ2011 HelloDD.com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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