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기초연구 성공,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예산, 평가제도, 연구환경 제대로, 출연연 선진화의 모델이 돼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장 적합한 인물은 우선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 전체를 조감할 수 있으면서 20년, 30년 후를 내다본 과학기술개발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과학자여야 한다."

과학벨트의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리더에 대한 과학기술인들의 의견은 하나같다. 우선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연구자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기초과학연구원. 말 그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연구를 통해 창조적 지식과 미래 원천 기술을 확보해 국가의 미래 먹을거리를 찾고 노벨상까지 기대해보자는 취지에서 설립되는 기관이다. 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29개의 정부출연연구소와 민간 연구소들이 입지해 있지만 응용연구가 대부분이다.

물론 전쟁이후 산업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됐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유일하게 노벨상이 없는 나라, 원천기술이 없는 나라, 국내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 국가 등의 오명이 뒤따르면서 과학강국이란 이름을 무색케 하고 있다. 정부와 과학기술인 모두 기초과학연구원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기초과학연구원 수장에 대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해외 석학도 좋지만 애국심 있어야

교과부에 따르면 연구원 원장은 국내·외 유능한 인재 중에서 공모와 추천을 병행해 선발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구체적 기준안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게 부처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초과학연구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은만큼 과학기술인들이 말하는 연구원 수장의 조건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과학기술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는 연구에 대한 통찰력과 애국심이다.

기초연구는 당장 필요한 분야가 아닌 국가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한편 우리 후손들의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차원의 연구 개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 배경을 초월해 오로지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원 수장을 선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자 중심의 선발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에서 원장을 선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나 정치인의 입김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각 연구단 단장도 마찬가지다. 과학자가 중심이돼 선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출연연 기관장)

"기초과학 분야 연구를 위해서는 국내·외 연구자 중 가장 역량있는 연구자를 리더로 선임해야 하겠지만 외국인은 국내 상황을 잘 모를테고 국내 연구자는 자칫 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 어려운 문제다. 신중한 결정이 필요할 듯 하다."(출연연 기관장)

"국내에 노벨상을 받은 분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으니 현재 연구분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세계적인 인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연구의 흐름을 파악할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부인물을 영입하는 것도 가능하다."(출연연 H박사)

"기관장 출신보다 연구실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와야 한다. 행정을 잘 아는것도 좋지만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출연연 C 박사)

"다음 정권은 복지국가로 간다. 예산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과학 뿐아니라 국내 상황 전체를 보고 적정하게 돈을 쓰면서 꼭 필요한 연구에 집중할 있는 통찰력을 갖춘 인물이 적임자다."(과학계 관계자)

◆기초과학연구원, 국내외 유망 과학기술인이 올 수 있고, 출연연의 선진화 모델로

기초과학연구원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연구원과 연구자들에 대한 처우도 기존 출연연과는 달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기초과학 분야는 쉽게 성과가 나는 분야가 아니므로 무엇보다 연구원들을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신뢰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단순히 출연연 하나 더 생기는 차원에서 정부가 간섭하고 평가해서는 기초과학연구원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연구 인력만 2500명 정도를 필요로 한다.

정부계획에 의하면 대학과 타 기관 소속 과학자의 겸임, 겸직을 활성화 하고 유동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방침이다. 연구비도 3년단위로 100%를 지원하고 각 연구단별로 연구단장이 인력구성, 연구비 배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또 정산, 평가의 업무를 간소화 하는 등 과학기술인들의 연구 집중도를 높여 모험형 연구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한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인들은 국내·외 유능한 인력들이 앞다퉈 한국으로 올수 있는 연구 환경과 처우기준이 분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초과학연구원 2500여 명을 선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외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 출연연 연구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중 소속제도 방법이다."(출연연 A박사)

"기초연구는 연구원과 시설, 그리고 예산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를 믿고 지원해주길 기대한다. 과학자들 모두들 좋은 성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예산 함부로 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예산 뭉텅이로 주고 10년만 지켜봐주면 반드시 성과가 나올 것이다."(출연연 E박사)

"출연연 연구원 중 유능한 인물 선발하고, 대학교수도 기꺼이 올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한다. 외국 과학자들도 스스로 찾아 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원에 대한 처우 등이 기존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우선 한꺼번에 묶음 예산을 지원하는 한편 PBS 평가제도를 적용해서는 안된다."(출연연 U박사)

"기초과학연에 대한 차별화된 지원으로 기존 출연연에서는 서운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출연연 선진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 서울공대 대신 KAIST 만들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시작할 때 반발이 많았다.

그러나 KAIST의 좋은 영향이 전국 대학으로 확산됐다. 마찬가지로 기초과학연구원이 잘돼 출연연 선진화의 모델이 되고 다른 연구소로 확산되길 기대한다."(출연연 기관장)

"대덕이 국민에게 성과를 돌려줄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출연연의 역할이 컸지만 지금은 삼성 등 기업이 더 많이 연구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 대덕도 새로운 문화를 창도해야 한다."(대덕 기업인)

"과학기술계도 이젠 제대로 해야 한다. 실패를 국가에서 눈감아줘야 한다는 말이 너무 많다. 과학자들도 제대로 함으로써 실패하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실패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계획은 과학자가 세우고 공무원은 계획과 결과에 의해 감사하게 된다. 계획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원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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