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흥의 최고의 교육, PSC]①프랑스 '에꼴 42'의 탄생

장순흥 부산외국어대학교 총장은 ‘장순흥의 PSC 공부법’이란 제목으로 PSC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PSC는 Problems Finding and Solving, Self Learning, Collaboration의 머리글자입니다. 저명한 원자력공학자인 그는 KAIST 부총장시절, 당시 서남표 총장과 함께 개혁을 주도해 국내 대학개혁의 단초를 놓았습니다. KAIST 부총장과 한동대 총장, 부산외대 총장으로 대학을 경영하면서 PSC와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합니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원자력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SW) 교육기관인 '에꼴 42' 내부 모습. 이 곳은 자기주도적학습 기반으로 문제해결과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으로 유명하다. [사진= 장순흥 부산외국어대총장]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SW) 교육기관인 '에꼴 42' 내부 모습. 이 곳은 자기주도적학습 기반으로 문제해결과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으로 유명하다. [사진= 장순흥 부산외국어대총장]

혁신적인 교육현장을 직접 찾아갈 때마다 항상 마음이 설렌다.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육의 새로운 새싹 하나를 발견 때의 흥분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곳이지만, 당시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꼴 42'였다. 이곳의 방문은 나에게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게 했다. 3층 건물은 고풍스런 파리의 건물들과 달리 현대적인 모습이었지만, 샹젤리제 거리의 끝에 갑자기 등장하는 라데팡스의 갑작스런 시간여행의 감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유적지에 급조된 편의점시설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교장의 모습에서 친숙한 엔지니어의 향기를 맡으며, 묘한 기대가 생겼다. 그는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물리학 박사 출신인데, 프랑스 파리에 와서 좁은 골목길에 전산학원을 차렸다고 했다.  니콜라 사디락 초대교장이다.

그러나 에꼴 42의 벽에는 진품 모던아트들이 걸려있었고, 분주히 청소차가 지나다녔기에 먼지 하나 없었다. 컴퓨터가 가득한 강의실에는 교수는 보이지 않았고, 학생들이 과제를 하는 것 같았다. "직원은 40명이고, 그중 20명은 프로그래머, 나머지 20명은 청소원입니다." 교장은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학생은? 교수는?” 이렇게 반문했다. 신비의 숫자 42는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해답'이라고 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티쳐가 사라진 학교가 탄생했구나. 그는 이론 물리학 박사공부를 할 당시, 방정식을 형성하며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했고, 그 결과 IT만큼은 독학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고 했다. 그래서 파리로 건너와 학원을 차렸고, 지금은 3000명의 학생을 40명의 직원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졸업 학년, 이런 것보다 태권도 승단 시험처럼, 21레벨을 먼저 성취하면 졸업인데, 빠르면 1년 늦어도 3년 걸린다고 했다.

완전 자기주도학습이다. 입학시험은 한 해에 세 번 보는데, 한 번에 300명을 뽑는다고 했다. 자격은 고등학교 졸업이나 검정고시 이런 것이 아니고, 무학력도 응시할 수 있다. 한 달간 시험을 보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대로 합격을 시킨다. 보통 1000명 정도가 와서 시험을 보는데 한 달간 지내려면 비싼 파리의 방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은 실내체육실에 에어메트를 깔고 침낭에서 밤잠을 해결한다고 했다.
 

필자(가운데)와 만난 에꼴42의 초대 교장 니콜라 사디락(왼쪽), 오른쪽은 필자와 동행한 이재영 한동대 교수.
필자(가운데)와 만난 에꼴42의 초대 교장 니콜라 사디락(왼쪽), 오른쪽은 필자와 동행한 이재영 한동대 교수.  [사진= 장순흥 부산외국어대총장]

그래서 일년 세 번 시험을 보면 대략 1000명의 입학생을 갖게 된다. “한달 동안의 입시”, 그들은 그것을 수험생을 수영장에 담근다고 표현했다. 한 달간 수험생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서로 토론도 가능하고, 컴퓨터로 온갖 정보를 확인하며 진행되는 그야말로 열린 입시다. 떨어져도 금새 다시 볼 수 있으니, 관대하다. 무엇보다 학력이 필요 없으니, 어쩌다 사춘기의 회오리에 빠졌던 친구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입시는 당초 이 학교가 학원에서 출발한 까닭이다. 학원이야 학원비를 받고 가르치는 곳이니, 학생이 누가 되었던 받아서 가르치는 게 소임이다. 누구든 IT를 배우겠다고 학원비를 낸다면, 그는 배울 마음의 자세가 된 것이니 받을 수 밖에. 그가 파리의 좁다란 골목에 학원을 차렸을 때, 그야말로 학원은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파리 날리는 파리의 학원 에꼴 42.. 그런데, 그 좁은 골목에 또 다른 파리 날리는 집이 있었으니, 바로 애견 미용실이었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애견 미용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은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퇴근하다가 골목 한쪽 끝에서 '컴퓨터 교습'이라는 문구가 적힌 희미한 불빛의 학원 광고판을 발견했다. 심심한데 학원이나 다녀보자고 마음 먹은그녀는 바로 이 에꼴 42에 등록을 했고, 얼마지나 원장이 제시하는 자기 주도 학습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혼자 문제를 만들어보고, 프로그램을 짜서 풀어보면서 강아지 미용을 하는 일도 즐거움이 더해졌다.

강아지 털이 미용실 바닥에 떨어질 때, 그녀의 머릿속에는 알고리즘이 자라났다. 그녀가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프랑스의 유명한 이동통신 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일취월장했고, 마침내 회장실의 비서가 되었다.

그녀의 프로그램 실력을 알아본 회장은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물었다. 고졸이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회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너를 가르친 곳을 가르켜 달라고 했다. 파리 뒷골목의 파리 날리는 학원 에꼴 42를 그녀와 함께 직접 찾아간 회장은 눈물을 글썽였고, 즉석에서 3층짜리 에꼴42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물론 원장은 교수는 없는 학원을 만들겠다고 했고, 회장은 좋고 그 대신 자신이 사들인 진품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쓰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청소부를 더 고용해야 했다.

나는 파리에서 흥분에 사로잡혔다. 그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교육의 관성이 비록 크지만, 교육 혁신은 이렇게 가능하구나. 소싯적에 읽었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왔던 신비의 숫자 42는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해답'이라고 했다. 에꼴 42는 교육에 대한 궁극의 답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 들어차면서 장순흥의 교육 PSC에 대한 구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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