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한달 3쇄, 이광형 KAIST 총장 '미래의 기원' 핵심메시지
'전자는 불안정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인간, 불완전한 환경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한 종으로 부상
자본에 의한 빈익빈 부익부 막기 위해 '로봇세' 신설 필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 인간의 선택 다시 한번 중요

'역사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만들어 가는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형성되는가?'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최근 펴낸 ‘미래의 기원’(인플루엔셜, 556쪽)에서 제기한 질문이다. 묵직한 질문에다 벽돌책에 가까운 두께임에도 출간 한달만에 3쇄를 찍을 정도로 독자들의 관심이 높다. 

그가 이런 역사의 동인(動因)에 궁금증을 품었던 것은 약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래학을 연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전산학으로 시작해 뇌과학(바이오및뇌공학과)을 연구한 그는 2012년 카이스트 내에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만들었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없이 과학기술을 연구한다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이광형 KAIST총장이 자신의 저서인 '미래의 기원'을  살펴보면서 핵심 메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제공 이광형 총장]

이 총장은 이 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가 발행하는 ‘카이스트 미래전략’ 서문을 매년 꼬박꼬박 쓰면서 ‘미래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환한 것은 역사였다. 무엇이 역사를 움직였는지 알면 무엇이 미래를 움직일지도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가 ‘미래학은 역사학’이라고 말한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에서 그가 내린 대답은 후자, 즉 ‘역사는 인간(사상)과 환경(도구)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된다’였다. 역사를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결과로 보는 많은 역사책들과는 결론이 달랐다.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만물의 근원적 입자를 ‘전자’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 전자가 일으키는 힘의 원천을 ‘(전자의) 불안정성’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까지 전자의 불안정성으로 비롯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총장을 최근 대전의 한 식당에서 만나 미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ㅡ 머리말에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내놓는다”고 했다.
“나에게는 가장 필생의 작업처럼 느껴졌던 ‘인생의 책’이다. 오래 의문을 품어온 주제인 데다 집필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탈고했다. 책의 전체 내용 가운데 원래 잘 알았던 분야는 얼마 안 되고 이 걸 쓰기 위해 새롭게 공부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읽었다. 장마다 5개의 섹션이  있는데 각자가 독립된 내용들이다. 해외 출장을 가면서도 비행기 속에서 세션 하나하나 틈나는 대로 완성해 나갔다. 섹션 하나를 쓰는데 두어 달씩 걸렸다. 힘들었지만 가장 떨리고 기쁜 시간이었다.”

ㅡ “역사학이 곧 미래학”이라고 말했다.
“역사 전개의 본질적인 원리를 파악하면 다가올 미래도 상당 부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 공부는 인문학자는 물론 과학자, 예술가에게도 필요하다. 인류학자도 아닌 내가 부족하나마 과학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해석해본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 그리고 그에 맞는 인류의 대응과 적응을 더 많은 이와 함께 구상해보기 위해서다.”

ㅡ 이 책을 빅히스토리( big history) 서적 가운데 하나로 보아도 좋은가. 
“다른 빅히스토리의 관심사가 역사라면 이 책은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다른 점은 통상적인 빅히스토리 서적과는 달리,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가설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보편적 가설과 다르더라도 나의 생각을 적었다. 그렇다고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견해를 조율하는 과정을 갖지도 않았다. 논쟁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ㅡ 우주 만물의 근원이 전자라는 대목은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주장인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 유전자 결정론이었다면 이 책의 결론은 ‘전자 결정론’인 셈인가. 
“전자는 우주에서 가장 동적이고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다. 전자와 전자기력 때문에 원자와 분자가 만들어졌고 모든 화학 원소들이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지구의 생명체 출현, 유기물을 만드는 광합성 작용, 생명체의 신경신호 전달, 뇌의 기억과 지능의 발달, 언어의 출현과 현대문명의 탄생 등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이 전자를 활용한다.”

과학문화운동가 박문호 박사는 2022년 6월 펴낸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에서 전자를 근원적 입자로 제시했지만 이 총장의 주장과는 다소 달랐다. 박 박사는 자연을 구성하는 입자로 전자, 양성자, 광자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우주의 시작에서 지구와 생명의 탄생,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 인간 의식의 출현에 이르는 자연 현상의 유장한 역사가 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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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전자가 지금을 만들었다면 미래를'만드는 것도 전자일 것 아닌가.
“그렇다. 인간의 역사가 그랬기 때문에 앞으로도 인간은 이러한 전자의 활동을 기반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분석하는 이 책이 전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ㅡ 그 전자가 어떻게 작동하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가. 
“전자의 불안전성에 답이 있다. 전자는 가볍고 작으며 원자의 외곽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동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물질 속에 균일하게 분포하지 못하고 전기적 불안정성을 만들어낸다. 불안정한 것은 안정화되려고 노력한다. 불안정성, 즉 불안정에서 안정성을 찾아가려는 경향성이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고, 이 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이다.”

ㅡ 그러고 보면 불안정성, 불완전성, 미완성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건 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통찰이 될 것 같다.
“전자의 속성을 좇는 과정에서 불안정성, 불완전성, 미완성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인간을 보라. 무기가 될 만한 이빨이나 뿔도 없고, 위험 상황에서 재빠르게 도망치기에는 다리 근육도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하다. 불완전하고 부족하다. 그래서 인간은 뇌세포를 불안정 상태로 만들고, 뇌를 불안정 상태로 발전시켰다. 테니스에서 상대방의 공을 받아야 할 때, 뒤꿈치 들고 불안정한 상태로 있어야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다. 불안정한 상태에 있어야 불현듯 닥치는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고 더 유리하고 창의적인 생존 방법을 찾아낸다.  그 결과 인간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종이 됐다. 만약에 인간의 뇌가 좀더 안정 상태로 태어났더라면, 느긋하고 둔감하여 외부 자극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

ㅡ 많은 역사책들은 역사를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결과로 분석한다. 
“단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긴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빅뱅과 생명의 출현, 진화, 산업혁명, 인공지능 등 대변혁은 환경(외부 조건)의 변화에 거기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인간은 우주, 태양계, 지구 등 장구하고 거대한 외부적 조건의 산물이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몫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의 선택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외부 변화에도 대응 방식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ㅡ 자유의지 보다 중요한 변화의 동인이라는 환경은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나.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도구나 기술을 생각하면 쉽다. 자연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제철기술, 인쇄술, 망원경 또는 현미경의 출현은 인간에게 새로운 환경을 가져다줬다. 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컴퓨터, 휴대전화, 자율자동차 등의 신기술이 인간의 일상과 생활규범, 나아가 사상까지 바꾼다. 물론 그 방향이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론 사상이 도구와 기술을 촉진하고 지배하기도 한다.” 

ㅡ 현대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도구들은 뭐라고 보나. 
“이제 기술은 생활을 개선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사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즉 인체와 정신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줄기세포 기술은 질병치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생명윤리 논란에도 불구하고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AI 기술은 인간의 육체 뿐 아니라 정신 노동도 대신할 것을 보인다.”  

ㅡ 과학기술이 지구환경을 다시 안정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면 화석연료 외에 다른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핵융합에너지다. 핵융합이나 소형모듈원자로(SMR, 전기출력이 300메가와트(MW)급 이하인 작고 모듈화된 형태의 원자로) 등으로 친환경 에너지원을 만들 것이다. 인공광합성 기술이 성공하면 지구 생태계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미 방출된 탄소를 포집해 활용하는 기술들이 충분히 성숙해지면 지구 환경은 다시 안정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실용화되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지구 생태계를 잘 유지 관리할 책임이 있다.”

ㅡ 로봇세를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은 빈부격차를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로봇세는 격차를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일하는 사람이 로봇으로 대체될 경우, 로봇이 올린 부가가치를 자본가가 전부 취할 공산이 크다. 로봇세는 노동을 하는 로봇의 소유주에게 세금을 부담시키는 제도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실업자가 된 사람들을 부양하는 재원은 이 것이 최선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려해볼 법하다.”

ㅡ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보면 그 기술을 어떻게 선하게 활용할 지가 중요하다. 이 책도 그 어떤 훌륭한 기술도 인간의 통제 하에 있어야만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찌 보면 이런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맞는 말이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인간의 사상이다. 그래서 역사는 환경(도구)과 인간(사상)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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