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포유류는 공룡과의 전쟁에서 무엇을 얻었나?'

'공룡, 인간을 디자인하다'는 일본 NHK 공룡 프로젝트팀이 세계 각지의 공룡화석 발굴지를 발로 뛰면서 기록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공룡의 진화와 멸종을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담았다.

책은 지질시대 순으로 엮었다. 트라이아스기 후기부터 시작해 공룡들이 지배하는 세계인 쥐라기 전기, 포유류가 밤의 세계로 진출한 쥐라기 후기, 백악기 전기 및 후기로 각각 나눠진다.

공룡을 다룬 책에서 많이 볼 수 있듯 '공룡, 인간을 디자인하다'에서도 지질연대표를 담고 있다. 포유류와 공룡간의 1억5000만년 동안의 싸움과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룡과 인간의 시대별 상황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어 이해를 돕는다.

공룡과 인간의 전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지구를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5번의 대멸종에 대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NHK 제작진은 제목을'공룡, 인간을 디자인하다'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 지난 1억5000천만년 동안의 공룡과 인간의 기나긴 싸움의 과정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과정에서 공룡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디자인하게 된 것은 아닐까?

최초의 포유류는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탄생됐다. 지금부터 약 2억2천만 년 전이다. 포유류의 역사는 2억년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포유류의 전체 역사 중에서 60%가 넘는 기간 동안 포유류에게는 강력한 경쟁 상대가 있었다. 바로 공룡이다. 아니 처음에 포유류는 공룡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다. 포유류는 작은 쥐만 했고, 그에 비하면 공룡은 말 그대로 '공룡'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이랬을까?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공룡은 왜 '공룡'이 됐을까? 공룡의 거대화는 식물의 영양이 낮았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자란 쥐라기의 식물이 어느 정도 영양가를 함유하고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슈퍼사우르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대부분 연구자들은 저영양 상태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당시 공룡의 먹이인 겉씨식물(종자식물 중에서 씨앗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식물)과 양치식물은 현재의 속씨식물과 비교하면 양양가가 아주 낮은 식물이다. 공룡은 이런 먹이를 먹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집이 커진 것이다.

영양가가 낮으면 식물을 대량으로 먹어야 하고, 그 정도의 양을 소화시키려면 장이 길어야만 한다. 이것이 거대화의 속도를 높이게 한 것이다.(p 121)

공룡의 조상이 탄생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포유류와 거의 같은 트라이아스기 후기로 추측된다. 그 후 공룡은 약 6500만년 전 멸종전까지 포유류와 공존했다. '공존했다'는 표현은 적절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외는 있지만 공룡과 인간의 관계는 포유류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일방적으로 공룡에게 '당한'시기다. 포유류는 여러 측면에서 공룡과 비교할 수 없이 약했기 때문에 공룡에게 일방적으로 박해를 받았다.

공룡은 1억5000만년 동안 이 지상 세계를 주름잡았다. 그야말로 공룡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원숭이의 조상에서 분리된 후 인류의 역사가 겨우 7백만 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 공룡의 화려한 시대가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류의 역사 중에서 약 60%는 절대 강자인 공룡을 두려워 하는 ‘밑바닥 생활’을 한 것을 상기해 보자.(이 책에서는 여러차례 밑바닥 생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밑바닥 생활을 하던 작은 쥐에 불과하던 포유류는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했는지 궁금하다. 방법 중 하나는 귓속에 있는 모루뼈와 망치뼈의 발달을 들 수 있다. 고막 가까이 있는 망치뼈와 더 안쪽에 있는 모루뼈는 소리의 진동을 내부로 전달하는 중개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진동이 증폭되며, 이 덕분에 작은 소리, 특히 고주파의 소리(높은 소리)도 잘 들을 수 있게 됐다. 귀의 진화는 외견상으로는 아주 작은 변화지만 포유류에게는 혁신이다.

중생대의 포유류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자인 카네기 자연사박물관의 뤄체시(羅哲西) 박사는 진화 과정에서 인류의 청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밤의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섭니다."(p 143)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보자. 밤의 세계로 진출한 포유류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뇌의 발달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뇌에서 정밀한 신호를 손발에게 보내야 한다. 뇌의 크기는 공룡에게 위협받는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뇌의 가장 바깥 부분에 있는 대뇌 신피질은 포유류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조직이다. 대뇌 신피질은 '오감의 종합' '손발의 통제' 등을 하는 핵심 조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오만하다"고 평한다. 이 책 '공룡, 인간을 디자인하다'는 인간이 오만방자하다고 느낄 때, 탐독했으면 좋을 것 같다. 공룡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작은 쥐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만함은 조금 사라질지도 모른다. 겸손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기대일까?

2007년에 출간된 '공룡, 인간을 디자인하다'는 절판됐다. 하지만 인류와 공룡의 한판 대결을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책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 중고서점이 활발해서 절판된 책도 구입 가능하다. 필자도 지난 2017년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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