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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단상]"코로나19와 관련해 과학자를 보고 싶다"

과학계 연구비는 세계 5위라는데 위기 때는 '모르쇠'
전염병은 팩트고 상수···발신 높여 과학기반 다져야
과학자가 안 보인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의 얼굴만 국민들은 쳐다보고 있다. 2달 가깝게 전염병 최전선에서 싸우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영웅은 따로 없다. 위기 때 온몸 던지며 위험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영웅이다.
 
안 보이는 과학자 집단을 보며 국민들은 탄식한다. 도대체 연구비는 20년 넘게 두 자릿수로 늘어나고 GDP 대비 연구비는 최고 수준이라는데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연구는 오래 걸리는 것이라고 해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언제나 국민한테 존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가?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전개되는 위기 국면에 대해 알려줄 수는 없는가?
 
메르스 사태 때 일이다. 온 국민이 공포에 빠져 있을 때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있는 과학자분께 물었다. "이럴 때 생명연은 뭐해요?"
 
나온 대답은 "우리 연구원에는 메르스 전문가가 없어요." 게놈 연구나 신약 개발 등을 하느라고 바이러스 전문가, 특히 메르스처럼 희귀한 바이러스 전문가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사스나 메르스 등 전염병은 우리에게는 가끔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존재였으니 상시 연구인력을 갖추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신종 플루도 왔고, 급기야 이번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도 왔다. 불청객들이 가끔이 아니라 자주 찾아오는 셈이 된 것이다.
 
그동안 연구소에도 변화는 있었다. 생명연에 감염병 연구센터라는 것도 만들어졌고, 한국화학연구원에 융합연구단으로 신종바이러스(CEVI) 연구단도 만들어졌다. 연구자도 늘었고, 당연히 예산도 '대거' 투입됐다.
 
그런데 국난 수준의 재난임에도 이렇다 하게 설명해주는 과학자는 없다. 두 주관기관뿐 아니다. 기초 연구를 위해 국가가 야심적으로 투자한 IBS나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KAIST도 이번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투명 인간'이다.
 
이달 중순 미국에서 열린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연차 총회에 다녀왔다. 가기 전 국내에 코로나19가 퍼지며 참가에 대해 우려도 있었지만 가면 경험칙으로 배울 것이 있어 강행했다. 가서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美 과학계가 활발하게 발신 및 소통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데믹을 팩트 혹은 상수로 본다는 것이다.
 
美 과학계의 활발한 소통은 코로나바이러스 관련해 3번의 메시지 전달에서 볼 수 있다. 연차 총회 개최 첫날인 13일(현지시각)에 총회 장소인 시애틀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었고, 미국에 단 3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와 관련해 화제가 되니 첫날 오전에 긴급하게 기자 회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당초 프로그램에는 없던 일정이다. 오죽하면 발표자 이름도 없이 그냥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기자 회견'이라고 적혀 있었다.('COVID 19'라고 명명되기 전이었다) 기자 회견장은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로 가득 찼다. 발표자는 트레버 베드포드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센터 연구원.
 
트레버 박사는 앉자마자 양해를 구했다. 자신은 감염병을 연구하기는 하지만 바이오 분야라기보다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며 현재로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고 따라서 자신의 발표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이후 자신이 갖고 온 자료를 토대로 설명을 하는데 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과 확산 추이, DNA 구조 등을 데이터 중심으로 말했다.
 
기자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이 있었다. 자주 나온 답변은, 모른다, 아직 밝혀진게 없다, 지켜봐야 한다는 등 유보적 내용이었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연구 현황을 설명했다. 그가 확실하게 말한 것은 단 하나였다. 일부에서 이야기되듯이 코로나19가 인공 조작에 의한 변종이 아니라는 것. 자연 진화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궁금증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나 기자들로부터 나온 반응은 발표나 준비 부족이라는 불만이 아니라 일단 현황을 알게 됐다는 만족감이었다.
 
다음날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등장했다. 그는 전염병 전반에 대해 말하면서 코로나19가 아프리카에 전파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애주의 차원에서 AI와 유전자 편집 등이 어떻게 인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빌 게이츠는 이에 앞서 몇 해 전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이라며 "전염병에 전 인류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라 그가 부인과 함께 설립한 빌 & 멜린다 재단에서는 전염병 퇴치를 위해 많은 투자와 기부를 하고 있다.
 
이날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AAAS 전년도 회장이 직접 주재해 비중을 짐작하게 했다. 이 자리도 급히 마련된 기색이 역력했다. 프로그램에는 없는 연사가 등장했고, 원격으로 화상회의를 하는데 매끄럽지 못했다. 그럼에도 참여자들의 반응은 과학계가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온 Karen Emmeri 샌디에이고 대학교수는 "전공이 달라 궁금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이해가 됐다"며 "트위터로 친구들에게 세미나에서 들은 상황을 중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준비가 부족하지만 새로운 전염병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는 美 과학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는 전염병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불쑥 왔다 사라지는 불청객으로 여겨 불쾌하게는 여기지만 예측할 수 없는 만큼 그때그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인식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이미 사스와 메르스, 신종 플루 등등을 겪었어도 근본 대책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전염병을 겪으며 일부 경험이 축적되기는 하지만 물자를 비축하거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근본 대책은 아쉬운 것이 이번에도 드러났다.
 
그런데 미국 과학계와 지식인들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다. 전염병이 전 세계로 유행하는 판데믹 상황이 반드시 온다고 이들은 믿고 있었다. 시기나 지역 등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는 있지만 언젠가 전염병은 꼭 오고, 수백만 내지 수천만의 인류가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경험칙이고 과학적 판단이었다.
 
질병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것은 올해 발표한지 75주년이 되는, 고전에 속하는 바니버 부쉬의 보고서이다. '과학, 영원한 도전'(Science, the Endless Frontier)의 1장 총론 다음에 바로 나오는 2장이 질병에 대한 부분이다. 국방보다도 질병에 대한 부분을 앞에 놓아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NTI(핵 위협 연구소)에서 나온 Jaime Yassif 박사는 "판데믹은 가정이 아닌 사실이고, 시기가 문제이지 반드시 온다"고 거듭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고, 예산을 투입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동해 대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제로 시애틀을 중심으로 'Nextstrain'이란 상설 네트워크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연구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대응 방안을 찾고 있었다.
 
미국 과학자들의 대응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소통의 속도와 과학자들의 리더십이었다. 소통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에 따라 완전하지 않아도 자리를 마련해 현황을 공유했다. 마치 전쟁터 한복판에서 긴급 상황을 발신하며 적의 공격에 대응하고, 후방에도 대비와 함께 병참 지원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조처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와 함께 전염병과 같은 과학이 작동해야 할 분야에서는 과학자 등 전문가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리드해 나간다는 인상이었다. 지시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에 미루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은 내가 할 일이고, 우리가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으로 처리해 나갔다.
 
다시 오늘 우리 과학계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잘하는 점도 많지만, 신속대응이란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더 많다. 과거보다 분명 연구자도 늘었고, 예산도 투여됐다. 하지만 소통과 책임은 여전히 부족하고 수동적이다.
 
정부의 지시가 있으면 움직이지만 없으면 미동도 안 하는 느낌이다. 협력해야 하는 전문가들도 누군가가 연결해주면 움직이기는 하나 소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하며 협력한다는 소식은 듣기 힘들다.
 
정부도 자칫 감염이란 부작용이 나올지 몰라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발신하지 않고 구경꾼처럼 보이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덕은 코로나 방역의 최후 보루이다. 전쟁으로 치면 특수 부대가 포진된 곳이고, 비축된 물자도 풍부하다. 그런데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 지휘사령부도 없고, 작전 계획도 없다. 자원에는 정부 출연연뿐 아니라 풍부한 바이오 기업들, KAIST, 대학, IBS 등등도 포함된다. 이들 가운데는 전투 의욕이 높은 전투원도 있다.
 
정부나 관변에서 지휘를 맡으라는 것이 아니다. 전쟁과 전투는 현장 상황이 가장 중요한 만큼 정부는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자발성이 강화되도록 해야한다. 전쟁 때 장수에게 모든 결정권을 주어야지 후방에서 참견하면 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가운데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모든 전쟁 상황을 알릴 수는 없으나 현황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지지를 구하고, 동요를 막으며 차분하게 대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가 바탕이 되면 협력과 자원을 통해 더욱 튼실한 방어막을 만들고 승리했음을 많은 전쟁사는 알려준다.
 
지금은 과학자들이 나설 때이다. 그동안 연구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안심시키며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해본 경험이 없다고, 잘 모른다고, 우리 분야가 아니라고, 지금 나섰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는다고...갖가지 이유로 숨어 있을 때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과학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싶다고. 코로나19의 특성이 무엇이고, 현재 연구 현황은 어떠하며, 당장 취해야 할 조처는 무엇이라는 등등의 이야기를. 당장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기다리라면 기다릴 터이니 중간 상황이라도 알려달라는 것이다.
 
과학계는 이번이 달리 생각해보면 국민의 과학상식을 높일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바이러스나 전염병, 진단, 백신 등등의 용어를 이야기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정보와 지식을 흡수하겠다는 자세를 국민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때를 잘 활용해 국민의 과학상식 수준을 높이고, 대비책을 만들고, 잘 극복하면 거꾸로 세계적으로 질병에 강한 국가를 만들 수도 있다.
 
여러 이유로 국민들은 과학자분들께 당부한다. 설명을 좀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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