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한림원, '정부R&D혁신방안' 주제 원탁토론회 개최
관리평가기관 통합, 중소기업 R&D지원 등 화두로 열띤 토론

박성현 원장이 원탁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정윤하 기자>
박성현 원장이 원탁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정윤하 기자>
"독일의 연방교육연구부(BMBF)는 50여년간 지속되고 있으며 막스플랑크연구회와 프라운호퍼연구회 등 출연연의 미션이 지난 70여년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추구되어 온 점이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의 기술혁신투자에 따른 생산성 증가는 평균 14년이 지나야 충분히 발현되는데 정부의 과학기술투자는 이보다 더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과학기술투자에 대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체제와 제도의 안정성이다." (정선양 소장)

"중소기업이 잘되지 못한 것은 출연연구소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의 실패인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을 확실히 분리해야 한다. 중소기업 정책이 우리나라만큼 많은 곳이 드물다. 혁신방안에서 벤치마킹한다는 프라운호퍼가 독일의 강한 중소기업을 만든 것이 아니다. 독일의 강한 중소기업과 프라운호퍼가 잘 만난 것 뿐이다." (안현실 논설위원)

"최근 KAIST 오준호 교수의 연구실에 가서 1시간 넘게 서서 같이 이야기 했는데 그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인상 깊었다. 일본이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니 하지 말라며 모두가 말리는 연구를 13년 이상 노력해서 결국 해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연구자를 우리가 13년 동안 지원해주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우리가 한 부분은 정말 적었다. 열정을 가진 연구자들을 믿고 지원할 수 있도록 앞으로 보다 더 노력하겠다." (안화용 실장)

지난 5월 발표된 정부의 R&D 혁신방안을 두고 연일 토론회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박성현)도 7월 3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정부 R&D 혁신방안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제92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1996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한림원탁토론회는 산학연정의 전문가를 초빙, 국가 과학기술의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과학기술 현안문제의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심층토론회로 특히 기초과학과 정책연구 분야의 석학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최항순 한림원 정책담당부원장이 토론좌장을 맡은 가운데 김상선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안화용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총괄실장, 이공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이장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정책연구소 소장, 정선양 한림원 정책연구센터 소장(건국대학교 기술경영학과 교수) 등이 패널로 지정토론에 참여했다. 

원탁토론회 지정토론에 참여한 패널들. <사진=정윤하 기자>
원탁토론회 지정토론에 참여한 패널들. <사진=정윤하 기자>

먼저 정선양 소장은 "혁신방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발표된 안을 보니 이러한 전환기적인 시대에 맞는가 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걱정스럽다"며 특히 정부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독일과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기술경영 및 정책 분야 석학인 정 소장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MPIfG)와 프라운호퍼(Fraunhofer) 시스템및혁신연구소(ISI) 연구위원을 지낸 독일 전문가다. 

그는 "과학기술전략본부의 설립은 예전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실패원인을 철저히 규명한 후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며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개편은 통합형이 아니라 작은 규모로 다양성을 갖추고 각 부처 산하의 기관들에게 해당 분야의 연구관리를 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독일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회와 프라운호퍼연구회가 서로 다른 미션으로 중복되지 않게 자율성을 갖고 연구를 수행해 온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해놓고 전략적 기초연구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응용연구를 모두 다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니 '한국형 프라운호퍼연구회' 설립 필요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소장은 "출연연은 정부의 미래지향적 과학기술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므로 중소기업 지원에 주안점을 두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또한 대학은 신기술 창업보다는 본연의 자세인 교육의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고 풀뿌리 기초연구를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대학은 소규모의 자율적 연구를, 출연연은 대학이 할 수 없는 대형연구와 국가의 전략연구를 담당해 과제경쟁을 피하고 차별성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현실 논설위원은 먼저 "미래부가 여러가지 여론 수렴을 했다고 하지만 혁신안에 대해 연구현장의 반응은 굉장히 싸늘하다"며 "미래부의 정치적 역량이 너무 아쉽다"고 운을 뗀 후 조목 조목 잘못된 부분을 꼬집었다. 

특히 안 위원은 "정책 관련 연구기관 중 해외에서 가장 잘 알려져있는 곳이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STEPI인데 이런 곳을 통합해버리면 대한민국 씽크탱크의 씨가 마른다"며 "백 년 이백 년 이상 갈 연구원들을 없애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연구평가·관리기관들은 연구자들을 위축시키는 조직이므로 비대하게 통합하지 말고 연구소 하부조직으로 이관해야 하며, 민간수탁과 비례한 출연금제도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안 위원은 "미래부는 무조건 연구현장을 대변해 신뢰를 쌓아야 혁신방안이 현장에 착근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혁신방안에 담긴 내용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패널들도 많았다.

안화용 실장은 "이번 혁신방안에서 거버넌스를 제외한 콘텐츠를 보면 잘된 부분도 많다"며 "수요자 중심의 지원체계와 질 중심의 평가체계 등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평했다. 이어 안 실장은 "그러나 부처별·사업별 예산 구조로 인한 부처간 사업중복 및 투자비효율성을 해결해야 하고 10년 후, 30년 후를 내다보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선 특임교수는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개편을 요구하고 있지만 혁신방안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며 "R&D 혁신 부분에 주요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만큼 어떻게 하면 혁신방안과 실천방안을 잘 만들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현재 주변의 우려의 상당 부분은 혁신내용 보다는 거버넌스때문으로 본다"며 "거버넌스는 녹록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하고 계획대로 과학기술전략본부를 신설한다면 장관급으로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장재 소장은 "미래부가 과학기술 관련해서 좋은 아젠다를 만들었고 바람직한 혁신방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며 "R&D가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국가 기술혁신 전반적인 부분에서 방향 등이 먼저 마련되고 이걸 통해서 혁신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선 관리기관을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공감하지 않는다"며 "그대로 두고 국가의 공공기술에 대해 관리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이 옳다"고 발언했다. 

이공래 교수는 "지금처럼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노력이라도 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혁신방안의 내용을 보니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교수는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R&D지원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중소기업 대표들은 여전히 당장의 문제해결에만 급급하고 R&D마인드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연구개발 전문부처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에서는 윤헌주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이 '정부 R&D 혁신방안 기본방향 및 주요과제'에 대해 주제발표했다. 

원탁토론회 끝까지 자리한 윤헌주 국장은 패널들의 의견을 열심히 메모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원탁토론회 끝까지 자리한 윤헌주 국장은 패널들의 의견을 열심히 메모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윤헌주 국장은 이번 혁신방안의 특징으로 ▲현장의 목소리 반영, ▲R&D체계 혁신 ▲현장착근 강화 등 3가지를 꼽았다. 윤 국장은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며 지난 연말 미래부 장관 주재로 3회에 걸쳐 진행한 '정부 R&D 혁신 토론회' 내용과 올해 초 실시한 '국가R&D 혁신에 대한 연구자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연구자들은 양적 평가제도 개선과 연구자 친화적 관리체계로의 전환 등을 요구했으며 산업체에서는 시장과 괴리된 연구수행의 개선을 원하고 있어 이를 수렴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국장은 기본방향과 핵심과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이번 혁신방안의 목표는 질 높은 연구성과를 창출해 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 R&D의 틀을 과제·양·공급자·획일적 지원에서 연구자·질·수요자·맞춤형 지원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윤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먼저 기초연구 부분의 가장 큰 변화는 과제에서 연구자 중심으로의 혁신이다. 기초연구는 연구자들의 창의성 제고를 위해 일률적인 지원에서 탈피하여 연구자가 연구기간과 연구비를 조정할 수 있는 맞춤형 지원방식을 추진, 2016년 기초연구지원사업부터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또 국가연구개발평가시 제출하는 평가보고서 및 첨부자료를 축소하고 NTIS를 통한 전자문서 적용을 확대해 연구관리 행정절차를 간소화할 계획이다. 

응용 및 개발연구에서는 산업체를 보다 강조한다. 연구개발 기획단계부터 사업화까지 전 단계에 걸쳐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체제 구축·개발된 기술의 사업화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를 위해 원천연구에서는 기업 수요를 전제로 한 과제기획 및 국내외 시장분석을 의무화하고, 상용화 연구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과제시 비즈니스 모델 제시를 의무화한다. 또한 중소기업 개발 연구는 창의성과 자율성 제고를 위해 기업 스스로 과제를 제시하는 자유공모형의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산학연이 과제수주를 위한 경쟁 구도가 아니라 성과창출을 위한 협력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정부와 민간의 중복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R&D의 상용화 연구 비중과 대기업 지원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국방, 에너지 등 공공분야와 리스크가 큰 대규모 사업과 기업 간 협력 분야 등만 기존과 같이 지원한다. 또 기초, 원천, 상용화 연구별로 지원대상을 명확히 설정하여 상용화 과제는 중소기업 위주로 수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출연연 관련해서는 예산구조를 혁신해 PBS 비중을 축소하고 민간수탁을 활성화하며, 기관 미션 중심으로 출연금 사업을 재정비한다. 또한 연구공헌도가 탁월하 연구자를 테뉴어(tenure:영년직)로 선정하고 기관장 임기 연장을 통해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관리·평가체계 역시 양에서 질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SCI논문건수의 지표활용률을 오는 2017년까지 2.5% 이하 수준으로 감축한다. '조기달성 제도(early exit)', '목표수정(moving targer)', '연구양식 표준화' 등 연구자 친화적 제도도 도입되며, 연구시설장비 공동활용 포털 구축 등을 진행한다.

또 정부의 R&D 콘트롤타워, 씽크탱크 기능 강화를 위해 미래부 내 '과학기술전략본부(가칭)'를 설치하고, KISTEP과 STEPI, KISTI 일부를 통합해 연구관리전문기관으로 재편한다.

박성현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 5월 13일 발표된 정부의 R&D 혁신방안에 대해 현재 과학기술계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다"며 "기획재정부에서 관리하는 사업 위주가 아니라 수요자(연구자) 중심의 기초연구 집행 부분이 강화된 것 등 긍정적인 부분과 획기적인 안들도 포함돼 있으므로 과학기술계의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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