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과학자를 찾아-3] '방사능 변호사' 박경배 박사

대덕연구단지가 첫삽을 뜬지 30년. 강산이 세번이나 변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꿋꿋하게 연구활동을 벌인 과학자들이 있기에 대덕연구단지는 한국과학기술의 메카라는 명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매주 금요일 30여년 동안 연구단지를 초연하게 지키고 있는 과학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주]

지난 95년 원자로에 생쥐 한마리가 떨어졌다. 연구실을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었다. ‘사고를 친’ 연구원이 불려왔는데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홀뮴165를 먹인 놈인데 어떻게 떨어졌지…” “가만 홀뮴이라. 반감기가 얼마지?” “아마 26시간이 될겁니다” 순간 ‘방사능 변호사’를 자처했던 박경배(57 하나로이용사업단 단장) 박사는 머릿 속이 번쩍거렸다.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물질인 홀뮴을 찾아낸 것이다.

“냄새, 색깔, 맛이 없는 물질인 방사능은 칼과 같습니다. 잘못쓰면 생명을 헤치는 흉기가 되지만 제대로 쓰면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 20년간 ‘방사능은 생명을 구하는 도구다’고 끊임없이 외쳐온 박박사는 실제로 하나로 원자로를 누구보다 많이 드나들었다. 그의 방사능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하나로는 국산신약 3호인 ‘밀리칸주’를 그에게 선물로 안겨줬다. 그가 개발한 홀뮴-키토산 화합물로 만든 이 주사약은 실날 같은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간암환자들에게는 햇빛 같은 존재다.

원자로 안에서 중성자를 쪼인 홀뮴을 키토산으로 감싸 암부위에 주사할 때 발생하는 베타선이 암세포를 파괴하는 원리를 이용한 치료제다. 더구나 홀뮴의 약효를 안정적으로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키토산은 다른 약물질도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응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임상실험을 맡은 연세대 이종태 박사는 “밀리칸주는 환자들에게 통증이 거의 없고 간암세포을 괴사시키는 성공율이 80%가 넘어서는 혁신적인 신약”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74년 공채 1기로 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한 박박사가 방사선치료제 개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방사선의 죽음의 물질’ 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부터다.

‘아빠가 원자력연구소에 다닌다’는 놀림을 받은 아들을 보며 오기가 발동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이 생명의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보고 싶었습니다. 인체 속인 ‘간’, 뼈와 관련된 ‘류마치스’, 바깥에서 볼수 있는 ‘피부’ 이 모든 것을 치료하는 약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홀뮴은 패치형 피부암 치료제, 류마치스 치료제, 악성 종양 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원은 한우물을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밀리칸주도 95년부터 20년 가까이 한 분야에 몰두하다보니 나온 결과물입니다. 관리자가 됐다고 연구를 게으르게 하면 연구원으로서의 생명은 끝입니다” 실제로 그는 국내 3대 대형시설로 꼽히는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책임지는 ‘사업단장’을 맡고 있지만 위탁과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후배들에게도 끊임없이 연구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산업체와의 협력연구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밀리칸주를 개발할 때 세브란스 병원의 이종태교수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임상실험이 가능했고, 동화제약과 협력을 했기 때문에 상품화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후회없이 연구했습니다. 한가지 남은 바람이 있다면 신약개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일부 분야에서는 ‘임상실험’ 기준을 완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방사선 약품의 경우 극소량을 쓰는데다 국부적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부작용의 위험이 적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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