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표준연 특강서 독창성·사명감 강조
"무조건 서양모방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나"

7일 오전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초청 특강. 임권택 감독은 이날 연구원들에게 독창적으로 사물을 보는 눈과 사명감을 강조했다.
7일 오전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초청 특강. 임권택 감독은 이날 연구원들에게 독창적으로 사물을 보는 눈과 사명감을 강조했다.
"독특한 한국인만의 문화적 개성을 담아냄으로써 세계에서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거듭나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행착오란 남들이 감히 가지 않는 길에 도전한 훈장입니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가장 한국스럽게 담아내는 인물.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과학자들에게 창조경제에 대한 힌트를 제시했다. 7일 오전 10시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초청특강에서다.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와 나의 영화'를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서 "액션영화 등을 찍으면서 깊이 고민한 끝에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낸 삶과 빠른 속도감 등을 버리고 한국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독특한 한국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다"면서 "동양인들의 생활감정을 담아내고 한국의 문화를 녹여내면서 세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전환, 관습 깨는 처절한 투쟁이 필요하다"

그는 이어 "그런 영화는 만들자고 결심했다고 해서 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사고의 전환과 더불어 기존 관습의 틀을 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강조했다.

임권택 감독은 1961년 데뷔해 이듬해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0년 동안 5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1년 평균 5편의 영화를 개봉한 셈이다. 대부분이 액션, 코미디, 멜로 등 흥행만을 목표로 하는 상업영화였다.

"할리우드 2급 아니면 3급 영화라도 만들겠다는 야망만으로 삶과 작품에 대한 고민 없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없어져서 안보였으면 할 정도로 저질 영화감독으로 살았던 부끄러운 과겁니다."

이때의 고뇌가 임권택 감독을 한국문화의 독창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영화감독으로 탈바꿈시킨 계기가 됐다.

임 감독은 "미숙하더라도 한국문화의 독특한 개성을 담아내고 그 독창성이 외국 작품들 속에서 돋보인다면 그것만으로 큰 성과라고 생각했다"면서 "미국과 유럽 영화의 아류를 담아내던 나쁜 때를 벗고 체질을 개선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후 '씨받이', '아다다', '아제아제바라아제' 등 본격적으로 작품성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 과거 기억 속에 묻혔던 판소리가 되살아났고, 1993년 '서편제', 2000년 '춘향뎐', 2002년 '취화선' 등 전통소리를 살린 영화를 제작했다.

7일 오전 10시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초청강연에 참석해 경청하고 있는 연구원들.
7일 오전 10시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초청강연에 참석해 경청하고 있는 연구원들.
"판소리 영화는 이종 융합의 대표 사례"

영화가 흥행하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들이 덩달아 인기를 끄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그런 면에서 판소리를 이용한 영화의 성공가능성은 여전히 의문부호다. 이는 임 감독의 영화제작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는 배우기도 힘들고 듣기도 어렵다. 오죽하면 그 안에 빠져 잘 듣는 것만으로도 귀명창이란 소리를 듣겠느냐"면서 "1993년 서편제를 찍을 때 소리를 영상으로 담고 싶었다. 연기자를 통해 2~3중의 장치를 하면 관객들이 쉽게 판소리를 이해할 것이라 봤다. 그러나 스텝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이해를 못했다"고 제작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화 '취화선' 제작과정의 일이다. 임 감독이 라디오에서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 이별가를 듣고 연출팀에게 배경음악으로 제안했다. 처음 음악을 들으면서 10여 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다음날 '사용불가'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찍고 녹음하는 과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결국 영상은 눈으로만 본다는 생각, 소리는 귀로만 전달된다는 사고를 타파할 때 눈으로 보는 소리, 귀로 듣는 영상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창조경제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7일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초청강연 직후 몇몇 참석자들의 요청으로 성사된 기념촬영.
7일 표준연 대강당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초청강연 직후 몇몇 참석자들의 요청으로 성사된 기념촬영.

"사명감 뒷받침될 때 생명력 오래 멀리간다"

임권택 감독이 표준연 과학자들에게 요청한 마지막 항목은 사명감이다. "이 일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임 감독은 사명감, 의무감의 예로 2000년 선보인 '춘향뎐'을 들었다. 춘향전은 1923년 일본인 감독에 의해 처음 영화화된 이후 총 16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 마지막이며, 같은 해 애니메이션으로 한 작품이 더 나왔다.

임권택 감독은 "소리가 주는 감동에 놀랐는데 기존의 작품들은 판소리가 주는 감흥을 전혀 담아내지 않았다. 서편제 때는 아마추어적 감흥을 바탕으로 찍었다면 이때는 임권택이 소리 안에 깊이 들어가 찍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맛보기로 보여진 '춘향뎐'은 무성영화를 연상시킨다. 조상현 명창의 판소리에 맞춰 프레임과 프레임이 연결된다. 심지어 연기자의 움직임까지 판소리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흘러간다. 안이한 사고와 형식을 깨부수고 고전적 아름다움을 황홀하게 보여줬지만 국내에서는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했다.

그러나 미국 등지에서는 '세계 고전에 버금가는 고전', '판소리, 생경하지만 끝까지 보니 너무 좋은 음악'이라는 상찬을 받으며 예술ㆍ독립영화 등 틈새시장에서 상당히 선전했다. 국내에서는 개봉 10여 년이 지난 요즘 새롭게 주목받으며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임 감독은 "저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감독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는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다. 남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을 새로 시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면서 "이건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는 당시에는 큰 성과가 없더라도 멀리 보면 생명력이 오래 간다"며 각자의 역할 속 사명감을 거듭 강조했다.

임권택 감독은?

임권택 감독.
임권택 감독.

1934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나 1956년 '장화홍련전'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계에 데뷔, 1974년 '증언'으로 아시아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1981년 '만다라'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이후 '씨받이', '아다다',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으로 세계적 여배우들을 탄생시켰다. 2000년 '춘향뎐'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으며, 2002년 '취화선'으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장군의 아들’ 등 101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2007년부터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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