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원소프트랩, 7일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 초청 CEO포럼 개최

"위기관리의 예를 쉽게 하나 들어볼까요? 저는 절대 젊은 여사장이 모는 차에는 단둘이 타지 않습니다. 사고가 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정말 만에 하나 사고가 나서 둘 다 죽었을 경우,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언론에는 '윤석철 교수, 젊은 여성과 자동차 밀회 중 사고사'로 실릴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지켜온 명예는 한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한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현대 위기관리법입니다." 한국의 피터 드러커는 "'가진 것 없던' 20세기는 경제적 최선책의 시대였다면, '가진 것 있는' 21세기는 최악의 회피가 중요해졌다"며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 위기관리법을 설명했다.

영림원소프트랩은 7일 오전 서울 코엑스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제56회 영림원 CEO 포럼'을 개최했다. 5주년 기념 포럼의 강연자는 첫 회를 장식했던 윤석철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국내 경영학의 대가로 꼽히는 윤 교수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주제로 21세기 경영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위기 대비 전략을 설명했다. 윤 교수가 처음 화두로 던진 것은 '시큐리티 홀(Security Hole:안전침몰점)'. 시큐리티 홀은 인간과 조직의 안전이 위기 속으로 침몰될 수 있는 상황·경우·지역 등을 의미한다.

윤 교수에 따르면 언제나 예외 없이 정확한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태양계 행성들과는 달리 인간이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 등에는 언제나 시큐리티 홀이 존재하고, 때로는 아주 사소한 곳에도 있다.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에 당시 일본 제일의 강자였던 요시모토 군대가 세력이 미미했던 노부나가 군대에게 급습을 받아 괴멸 당한 협곡 ‘오케하자마(Okehazama)’가 군사적 시큐리티 홀이라면, 맥도날드의 커피 컵 뚜껑은 아주 사소한 서비스의 시큐리티 홀이었다. 맥도날드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 시스템)를 통해 구매한 커피 컵 뚜껑을 열다가 쏟아 화상을 입은 고객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배상금을 지급한 적이 있다. 맥도날드는 이후 커피 컵 뚜껑을 재설계했다.

"인간이 자동차 만든 지 120년이 됐는데 아직도 리콜(recall) 사태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걸 보십시오. 인간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에는 영원히 '잘못될 가능성', 시큐리티 홀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할 겁니다." 윤 교수는 이어 시큐리티 홀과 '머피의 법칙'을 연결시켰다. 머피의 법칙은 흔히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할 때 쓰이는 용어지만, 이에 대한 진정한 정의는 '잘못될 수 있는 일은 언젠가는 잘못될 것(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이다.

머피의 법칙의 이러한 정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의미 파악이 쉽다. 예를 들어 해저 터널 속을 달리는 열차가 탈선사고를 일으킬 확률은 100만분의 1로 아주 작지만, 이 열차가 매일 20회씩 10년 동안을 왕복한다면, 10년 동안에 탈선사고가 날 확률은 14.6%로 무시할 수 없을 만한 수치가 된다. 더 장기적으로 계산해 볼수록 잘못될 확률은 높아져 '잘못될 수 있는 일은 언젠가는 잘못될 것'이라는 머피의 법칙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윤 교수는 시큐리티홀과 머피의 법칙을 연계하면 얼마나 위기가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자 한 것. 그는 "어떤 설계나 시공 혹은 일반 경영 의사결정 속에 잠재하는 '잘못될 가능성'이 단기적으로는 매우 작다 할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매우 증가한다"며 "경영자라면 그 관리를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칼 포퍼(Karl Popper)의 철학이다. 영국의 과학철학자 포퍼는 '최선(the best)의 선택보다 최악(the worst)의 회피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최악 회피 비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의 비용은 이보다 수십 배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포퍼의 가르침은 한국의 우지(牛脂)파동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초창기 한국 식품 회사들은 미국에서 우지를 수입해 라면 제조에 사용했다. 1979년, WHO 규정에 우지가 비누·화장품 제조에 쓰이는 공업용으로 분류돼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다수의 회사들이 '정제 후 사용하므로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 한 회사만 원가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톤당 84달러의 식물성 기름으로 교체했다. 결국 1989년 한국은 우지파동 시큐리티 홀에 빠졌고, 식물성 기름으로 교체한 한 회사만 소비자 신뢰도가 상승해 지금까지 라면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0세기는 완만한 경기변동의 시대였습니다. 또 가진 것 없던 시대였죠. 그랬기 때문에 경제적 최선책을 선택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급격한 격동의 시대입니다. 9·11테러라든지 2008년 금융시스템 붕괴 등 엄청난 시큐리티 홀이 발생하죠. 때문에 머피의 법칙을 장기적 차원에서 수용해 위기를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나리오 준비가 필요합니다. 또 지금은 가진 것이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중요합니다."

영림원 포럼은 현재 5주년 기념 특강을 진행 중이며. 윤 교수의 강의를 포함해 포럼 내용은 홈페이지(www.ksystem.co.kr)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한편 10년에 한 번, 그동안의 경영 연구에 대한 책을 펴내는 윤 교수의 4번째 저서 '수단매체와 목적함수'가 내년 1월 출간 예정이다. 이번 강의내용은 윤 교수의 출간 예정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윤석철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CEO들이 강연장을 찾았다. ⓒ2010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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