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이기주의에 발목잡혀 난항...대승적 결단 긴요

국보법 등 4대 입법의 여야간 줄다리기 와중에 한 켠에서 국가적 과제임에도 지역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진통을 겪는 법이 하나 있다. 바로 R&D특구법. 여야간에 과학기술이 2만달러 시대를 이끌어갈 견인차라는 총론에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 실행 방법에 있어서는 커다란 견해차를 보이고 있고, 특히 한나라당의 주장이 고질적인 지역이기주의에 기반해 입법 전망마저 불투명해지며 과학기술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당초 정부 여당은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취지에서 R&D특구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대구출신 의원들의 주장에 따라 선택과 집중이 아닌 나눠먹기식으로 입법 취지가 변질됐다.

또 법안 소위에서 과학산업단지로 지정된 지역을 R&D특구의 후보지로 하자는 수정안에 대해서도 대구가 빠졌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아예 입법 자체를 무산시키려하는 움직임을 보여 공당의 행동으로는 적절지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지역이기주의에 의해 국익이 실종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구 지역주의앞에 국익 실종

R&D특구법 관련 상임위인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이해봉(대구 달서乙) 위원장은“대덕R&D 특구법을 연내 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R&D특구를 통해 한국 과학기술의 도약을 기대해온 과학기술계 및 관심있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게하는 폭탄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자.

17대 국회 개원시부터 한나라당 대구출신 의원들은 R&D특구 유치를 정치생명이 달린양 주력해왔다. 이를 다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부터 대구출신의 이해봉 의원이 맡았다. 내무 전문관료 출신으로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과는 그동안 전연 관계가 없는 인물.

여기에 대구지역에서 한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밀었던 강재섭 의원과 같은 중진의원이 포석으로 놓였고, 과학기술인 출신의 비례대표인 서상기 의원과 대구달서구 출신의 김석준 의원 등 4명이 포진했다.

정부 여당에서 제2 과학기술 입국을 표방하고 세계적인 수준에 이를 한국의 과학기술 대표주자를 키우기 위해 R&D특구법 입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대구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사건건 개입했다.

공식화된 것은 이해찬 국무총리의 R&D특구 원칙 재검토 발언 와전. 이해봉 위원장실에서는 지난 9월 이해찬 국무총리가 R&D특구법을 기본 여건이 조성된 지역은 특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원점에서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발표를 했다.

이전까지 정부 여당의 원칙은 지난 3월 대통령이 주재한 R&D특구 토론회에서 현재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만을 특구로 한다는 것이었다. 취임이래 지방의 균형발전을 강조해온 노무현 대통령도 과학기술만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취한 결단이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30년간 투자가 이뤄져온 대덕이 한국 과학기술의 저수지가 돼 여기에 우선 물이 채워지고, 지속적인 투자로 물이 넘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자”며 ‘대덕’만을 우선 R&D특구로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과학기술부, 대전광역시는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해 효과적인 R&D특구의 설치에 대해 중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터져나온 이 총리의 발언은 정부의 방침이 기본에서부터 바뀐 것을 의미하는 만큼 발언의 사실 여부와 진의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이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총리의 입인 이강진 공보수석은 “그 자리는 총리가 원구성을 마친 국회 주요인사들과 첫 상견례하며 덕담을 나누는 자리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며 “R&D 특구 지정의 원칙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등의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오명 과학기술부총리(당시 과기부장관)도 “과학기술부의 입장은 바뀐게 없다”며 ‘대덕 R&D특구’ 관철 의지를 밝혔다. 실제 균형위 과기부 대전시로 구성된 T/F팀은 정책연구와 입법 초안 마련 등의 작업을 계속했다.

또한 서울과 대전에서 두 차례의 공청회를 열었고, 그 의견을 수렴해 ‘대덕R&D특구법’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대표주자 키우자", 한나라당-"나눠먹자"

정기국회에는 강재섭 의원 등이 발의한 R&D특구법도 함께 제출됐다. 정부안이 과학기술에 있어 한국의 대표주자를 선발해 이를 집중적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자는 선택과 집중안이라면, 의원발의안은 지역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투자를 집중하지말고 골고루 분산하자는 개방안이었다.

두 법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정부안은 대표주자를 키워 원천기술 확보 등 미래 먹거리를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특정지역에 집중투자하는 만큼 ‘특혜’라는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

의원입법안은 상대적으로 여러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과학기술의 특성인 선택과 집중을 무시한 나눠먹기로 세계적 수준에는 못 미쳐 국가전체의 투자 효율성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지난 7월 경제자유구역과 지정과 특별 감사를 시작하며 “당초 특구는 인천지역 1곳만이 지정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정치 논리에 의해 부산과 광양 등 으로 확대돼 국가의 투자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 법은 국회에서 지난달 24일 공청회를 통해 일전을 벌였다. 정부 여당은 세계적인 기술 경쟁 상황에서는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한 만큼 현재 여건이 가장 잘 갖춰진 ‘대덕’을 R&D특구로 지정하자는 논리를 폈다.

한나라당측에서는 지역경제가 빈사 상태에 놓인 만큼 새로운 수혈을 위해 지정 요건을 완화해 특구 대상을 늘려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대구와 광주를 추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공청회 논의를 바탕으로 여야는 법안 소위를 구성해 절충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 정부여당은 야당안을 일부 수용해 ‘대덕’만의 배타적 특구 지정이 아닌 여건이 갖춰진 지역도 포함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여건이 갖춰진 지역이란 과학산업단지로 지정돼 단지가 조성된 곳. 전국적으로 대전외에 광주 전북 전주, 충북 오창 등 4곳으로, 이에 따르면 올해는 대구가 포함되지 않는다.

한나라당안 수용,그럼에도 대구 빠지자 '배째라'

그런 가운데 이해봉 위원장의 특구법 연내처리 거부란 폭탄 발언이 나왔다. 개정안으로 할 경우 본인들이 주장해온 ‘대구’가 빠지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R&D특구법을 이번 회기에 상정할 수 없다고 돌출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계에서는 손으로 달을 가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대구가 R&D특구에 포함되지 않으면 통과를 못시키겠다는 것은 억지이고, 지역이기주의의 극단적 사례라는 지적이다.

R&D특구법이 대덕을 위한 것에서 대구를 위한 것으로 변질됐고, 한나라당 주장을 따르면 ‘대구R&D특구법’이 돼야 한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구와 한나라당이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다가 정권이란 큰 것을 잃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구는 과거 두 번의 정권을 탄생시킨 전통있는 지역이고, 섬유를 기반으로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에따라 대구지역에는 역대 정권에서 많은 투자가 있었고,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도 밀라노 프로젝트라 하여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지역산업 부흥을 위한 투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대구 지역 사람들도 밝히듯이 밀라노 프로젝트는 몇몇 사람의 농단으로 당초 세계적 섬유 산업 육성이란 취지를 못살리고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대구 사람들은 지역 경제가 극도의 체력 저하가 된만큼 새로운 수혈이 필요하고, R&D특구가 신규 수혈처의 하나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구를 눈여겨 보는 사람들은 대구가 자체내의 효율적 산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말한다.

밀라노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합리적 의사 결정에 의한 자금 집행이 아니라 지역내 실력자 몇몇 사람에 의한 나눠먹기로는 돈만 들일뿐 투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전통 도시 '대구'의 체모 지키고, 한나라당 발상 전환해야

과거 정치권력에 의해 나눠먹기식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시기는 지났고, 이제는 그런 의사결정을 해서도 안된다. 효율 및 효과를 따지지 않고 지역 논리에 따라 묻지마 투자를 한 것이 결국 한국 경제의 IMF 금융지원을 불러왔고, 오늘날 경기침체의 주범이 됐다.

대구도 이제는 특구 유치 등의 발목잡기를 통한 자원 확보에서 벗어나야 하고, 어떻게하면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 전통있는 지역인만큼 국가 전체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고, 진정한 지역 발전의 밑거름을 만들 수 있다. 한나라당도 각성해야 한다. 대구가 주요 지지기반이라하여 당론이 지역 이해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차기 집권은 우물에서 숭늉찾기이다.

정권 창출에는 대구 유권자들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도권 사람들의 표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사람들은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국가이익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한나라당이 일부 지역이기주의에 휘둘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한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박근혜 대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후광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이 민주화 세력들의 비판이 있음에도 국토 전체를 바라보는 대 지휘자(그랜드 마스터)로서 기획을 했고, 지역 산업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선친의 유산이기도 한 대덕연구단지가 단순 연구단지에서 산업이 가미된 R&D특구로 거듭나 2만달러 시대 달성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면 박정희 그랜드 플랜의 완성이고, 이는 가문의 영광일 뿐 아니라 국가의 영광이 될 것이다.

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 상임위에서는 R&D특구법을 둘러싸고 마지막 승부수가 펼쳐질 예정이다.

아무쪼록 지역의 이해를 초월해 진정으로 국가가 발전할 방안을 찾아 식어가는 한국의 성장 엔진이 다시 데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과학기술계는 물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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