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강국 중국의 첫 출발지...지도자의 강력한 의지 실현

선전(심천)시 홍보물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모습이 있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위로 젖히고 앞으로 나아가는 황소. 얼핏 볼때는 증권시장에서 상승세를 나타내는 황소인 불(bull)로 보인다. 그러나 현지인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매 전혀 다른 뜻. 이

황소의 이름은 척황우. 황무지를 개척하는 소란 뜻이다. 소란 전통적으로 일꾼을 이야기하는데 중국내에서는 공무원 혹은 공산당원을 지칭한다고. 이 소 뒤에 있는 것은 거대한 나무 뿌리. 사회에,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 박힌 잘못된 인습을 의미한다.

이를 뿌리채 파내고 황무지를 옥토로 일구는 일련을 노력을 상징한다. 이는 다름 아닌 개혁. 선전의 개혁에는 덩샤오핑이란 중국뿐 아니라 세계 현대사의 거물이 형형한 눈빛을 내며 배후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선전 특구와 덩샤오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3번의 실각을 겪고 오뚜기처럼 복권한 덩샤오핑이 일생을 두고 가져온 화두는 강국 건설. 그의 흑묘백묘론과 성자성사론(姓資姓社-성이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론 등등 그만의 이론은 인민이 잘 살고, 국가가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전이 중앙정부에 의해 경제 특구로 지정된 것은 1980년 5월. 당시 중국은 1978년에 끝난 문화대혁명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이었고, 경제개발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특구에 의한 불균형 성장론을 택하고 홍콩과 인접한 선전을 1호로 지목한다.

덩샤오핑은 중국 개혁개방과 관련해 중요한 시기에 선전을 방문해 거대 중국號의 침로를 잡는다. 1차 방문은 1984년. 지난 4년간의 경제 성적을 보고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경제특구란 개혁개방정책이 옳은 것이었음을 증명한다(深圳的發展和經驗證明,我們建立經濟特區的政策是正確的)"고 말했다.

중국에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차 방문은 1992년. 개혁개방에 따른 자유주의 물결이 민주화 요구로 연결되며 체제를 위협했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지 3년만의 일이다.

중국 내부에서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싸움이 한창일 때. 모든 공직을 물러난 大원로로서 노쇠한 몸을 이끌고 다시 이곳을 방문한다. 여기서 그는 오늘날 중국의 대성장을 가져온 남순이란 새로운 장정을 통해 중국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 선전을 시작으로 주하이(珠海), 상하이(上海) 등 개혁지대를 돌아보는 노정이었다.

남순강화에서 그는 개혁과 관련한 중요한 발언을 한다.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는 표준이 있다. 생산력 발전에 유리한가, 종합 국력을 키우는데 유리한가, 인민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유리한가 등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한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진입했다. 성숙된 공업화 과정을 생략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자본주의의 특징인 생산력 발전 및 상품경제 성숙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최소한 1백년 동안 생산력 발전 및 성숙, 상품 유통경제 조성 등의 과정을 거쳐야할 시기에 있다. 그게 바로 사회주의 초급단계이다."

"특구를 설치할 때부터 자본주의냐, 아니냐고 걱정들이 많았는데, 센젠이 이룬 성취가 그런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답변해주고 있다. 경제특구의 姓은 '자'(자본주의)가 아니라 '사'(사회주의)다." 남순강화를 계기로 중국은 성장제일주의 노선을 걸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불평등, 불균형 발전도 용인됐다. 이른바 선부자론(先富者論). 일부 계층이 먼저 부자가 되도 좋다는 것이다. 이후 중국에는 외국 투자가 거대 중국 시장을 놓고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들어왔다.

현재의 후진타오 주석과 장쩌민 前주석은 덩샤오핑의 노선을 충실히 걸어오며 중국을 다시 제국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만큼 선전과 덩샤오핑의 관계는 굳건하다. 덩샤오핑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대표적 장소는 두 곳. 한 곳은 시 중심부에 위치한 리안후아산 공원. 해발 2백여m가 되는 산 정상에는 덩샤오핑의 동상이 건립돼 있다. 코트를 입고 맞바람을 헤치고 걷는 모습의 전신상.

그의 사후 3년뒤인 2000년 10월1일 중국 건국일에 장쩌민 당시 주석의 휘호로 건립됐다. 이 동상을 배경으로 중국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선전을 방문하는 공무원이나 당간부들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

그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일직선상에 선전의 또다른 상징물인 대붕(大鵬-전설상의 큰 새)을 본딴 지붕을 한 시청이 자리잡고 있다. 또 시청 앞에는 2004년 완공된 중국 최대 규모의 전시장인 선전 컨벤션 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특구 정책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또다른 한 곳은 구시청 바로 옆에 위치한 대형 초상화. 길이 가로 약15m에 세로 약3m 크기의 이 초상화에는 선전의 발전된 모습이 배경으로 그려져있고, 덩샤오핑은 온화한 얼굴로 발전상을 바로보고 있다. 초상화에는 그의 말이 쓰여있다.

‘당의 기본 노선을 1백년간 흔들림 없이 지키자’. (堅持黨的基本路線一百年不動搖) 마치 선전의 발전이 최소한 1백년간은 지속되리라는 보증수표 같다. 선전시 사람들이 덩샤오핑을 여전히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았다.

우리에게는 과연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사진 찍고 싶어하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고 되물었다. 또 진정한 개혁이란 구호가 아니라 새롭게 공장이 들어서고, 길이 뚫리며,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늘어나는 피부에 와닿는 실체여야 한다고 다시금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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