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찰기1]금산郡 日 선진현장 연수..."변하지 못하면 죽어라"

지방 행정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들이 대경쟁 시대를 맞아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경영 개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무풍지대에 다름 없었던 지방 행정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충남 금산군은 군수를 비롯해 공무원과 시민 대표,의회 의원, 언론인 등 33명으로 금산판 신사 유람단을 조직해 일본의 선진 지방행정 시찰을 다녀왔다. 지난 7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출발해 29일 심야에 금산군에 도착하는 4박5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 관찰자로 참여했다.

팀웍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무질서한 오합지졸에서 연수가 진행되며 정예로 바뀌어 나갔다. 과학기술자와 기업인들에게도 그 변화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과정을 3회에 걸쳐 옮겨본다.[편집자주]

금산판 신사유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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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1시 일본 센다이 공항. 일단의 사람들이 세관원들과 손짓발짓을 해가며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한국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들. 사정을 들어보니 이들이 가져온 물품 가운데 소주가 꽤 있어 이에 대한 과세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진 것.

결국 약소하나마 벌금을 물고 소란은 일단락 됐다. 밤잠을 설치며 일요일 새벽 5시에 충남 금산에서 출발해 일본에 도착한 뒤의 첫 행동이 벌금이어서인지 다들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다. 특히 단장격인 김행기 군수의 얼굴은 굳어있다.

이들은 금산군에서 행정 혁신을 위한 노력 중의 하나로 일본 선진 지방행정 현장을 보고 오고자 파견된 사람들. 금산군에서는 6백여명의 공무원 가운데 차세대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엄선해 구성했다.

여기에 군의회 의원 3명과 시민 대표 2명, 언론인 2명 등 모두 33인으로 시찰단을 조직했다. 군의 대표선수들인 셈. 시찰 대상은 3천여개의 일본 자치단체 가운데 30년 이상 꾸준히 혁신을 해온 대표적인 지역인 야마카타현의 니시가와마치(西川町)와 아사히마치(朝日町)이다.

소주 세금에 엉망진창 질서...험난한 여정 예고

생각지도 않은데서 시간이 지체되며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일행이 숙소에 짐을 풀기도 전에 찾아간 곳은 야마가타현 자연박물관. 月山(현지 발음:갓산) 국립공원의 너도밤나무 숲을 보호하고, 시민들에게 숲을 소개하는 곳이다.

당초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박물관에 들어가며 양국간의 문화 차이로 또 한 번 김 군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름 아닌 신발 문제. 일본은 실내로 들어서면 대부분 실내화로 갈아 싣는다. 이 때 신발의 정리정돈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들어가는 방향에서 그대로 벗고, 정리정돈은 별로 신경 안쓴다.

때문에 상갓집에 가면 신발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신발을 벗을 때 나올 것을 생각해 신발 코가 출구를 향하게 해놓는다. 또한 어지럽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가지런히 정리해놓는다.

실내화도 정리 요령은 같다. 들어서면서 바로 신을 수 있도록 신발 코가 실내를 향해서 정리돼 있고, 쓰고 난 다음 나올 때도 뒤에 쓸 사람을 생각해 정리를 깔끔하게 해둔다. 이는 문화 차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생활의 기본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

기본이 부족하면 아무리 새롭고, 중요한 것을 보여주어도 내 것으로 습득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게다가 보고 난 뒤에도 “별 것 없네”하는 회의적인 의견이 일부에서 나오며 과연 시찰이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한 때 형성되기도 했다.

한일 합작에 의한 새로운 연수 방식...日교수 쓴소리

이번 시찰은 한일 합작품이다. 한국측에서는 지방행정 전문가인 충북대 강형기 교수와 대진대 허 훈 교수가, 일본측에서는 센슈대학의 고바야시 히로가즈 센슈대학 교수가 전체 일정에 함께 참여해 강의를 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첫날 무질서에 대해 일본측 코디네이터인 고바야시 교수가 쓴소리를 했다. “시찰의 무서운 점은 내가 보기도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보여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무시당할 수도 있다.

여러분들이 시찰을 온 지역은 일본에서는 산악신앙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재생하기 위해 온다. 변하지 못하면 죽어라. 잘못된 공무원 의식은 여기에 죽여 묻어버리고 다시금 태어나 정말 금산군에 필요한 사람들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김 군수도 다음날 아침에 공무원들만 모아놓고 질책을 했다. “놀러온 것이 아니다. 군민들의 혈세를 써가며 군 행정을 바꾸기 위해 온 것이다. 기본 마음 가짐이 흐트러져있다. 이래가지고는 안된다. 차라리 짐 싸서 돌아가자.

왜 우리가 한국을 벗어나 일본까지 왔고, 이곳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시찰에 임하도록 하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박5일 동안에 이들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고바야시 교수 특강

고바야시 교수는 4박5일의 기간동안 3번의 특강을 통해 지역을 어떻게 봐야하고, 지역개발의 핵심인 인재 육성은 어떻게 하며, 공무원들의 기본 근무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가르쳤다.

첫날 있은 1강을 요약, 소개한다. “시찰은 무서운 것이다. 내가 보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거꾸로 상대방이 나를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보고자 하는 기본 자세와 눈이 있으면 많은 것을 가져가나 그렇지 않으면 보고 느낀 것도 없고 상대방도 존중하지 않는다.

은행에서 무엇을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자치단체의 경험을 훔치는 것은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부디 많이 보고, 느끼고, 훔쳐가기 바란다. 흔히 어떤 시책의 결과를 보고 그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성공했다고 금산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고, 어떻게 했는지 그 뿌리를 봐야한다. 만약 일본 제자한테 이 지역을 사례 연구하라고 한다면 적어도 2,3달은 이곳에서 살라고 할 것이다. 하루, 이틀 봐서 전체적인 이해를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시찰을 해야한다.

애물단지를 보물단지로 바꾸는 역발상 필요

야마가타는 기본적으로 눈이 많고, 산업이 들어서기 어려워 사람이 살기 곤란한 지역이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갔다. 당연히 낙후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모두가 떠난 것은 아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남았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이 지역이 살 수 있을까하고 고민했다. 그 일환으로 니시가와塾이라 하여 스터디 그룹도 만들었고, 인재 육성을 위해 국내외로 사람들을 연수시켰다. 니시가와 쿠폰이라고 도회지 사람들이 지역을 찾거나 특산물을 살 때 할인해주는 쿠폰도 만들었다.

그 가운데 이 사람들이 잘 한 것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물이다. 여기는 해마다 적설량이 연간 5m에 달한다. 이 눈들이 쌓인 것이 녹아 만들어진 물은 도회지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이 물을 도회지에 팔아 수익을 내고 있다.

다른 것은 눈이다. 일년의 반은 눈에 갇혀 지낸다. 이 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졌다. 남은 사람들이 이 눈이 여름까지 남아 있다는 것에 착안해 여름 스키장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스키장이 4월초에 문을 닫는다면 이곳의 스키장은 4월초에 개장한다. 그래서 휴가 절정기인 7월말까지 운영한다.

그동안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 자원을 거꾸로 활용한 사례이다. 지역의 가장 문제점,애물단지라고 여겨졌던 부분을 이용하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역발상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절실하게 고민을 해야 해답이 나온다.

애정 열정 긍지...지역변화의 원동력

발전하는 지역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거기 사는 주민이나 공무원 모두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지역이 잘 살 수 있을까하고 항상 고민을 한다.

둘째는 열정이다. 장애를 만나도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더 도전을 한다.

셋째는 자긍심이다. 지역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는 만큼 상급기관에서 오라고 해도 안간다. 이러한 것이 기반이 돼 지역 발전의 초석이 놓인다. 흔히들 주민들이 애착을 못갖고, 요구만 많이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공무원들은 과연 얼마나 주인 의식을 가졌는가.

경험칙으로 보아 공무원이 주인 의식을 갖고 열정을 갖고 일하면 주민들은 당연히 변한다. 남 탓 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아라. 지역을 활용하고 관광자원을 개발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이다. 인재가 육성돼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자원과 시설이 있어도 사람으로부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산보를 하는데 주민을 만나 길을 물었는데, 싫은 소리를 하면 다시는 그 마을을 찾지 않는다. 반면에 지역에 사는 초등학생이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면 인식이 달라진다. 또 지역민들이 좋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외지인의 시각에서 좋다고 느껴져야 한다.

지역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일체가 돼 변해야 하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열정,자부심이 필요하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일본의 전통적인 산악신앙의 중심지이다. 이 곳에 와서 사람들은 과거의 나를 죽이고 새 생명을 받아 떠난다. 과거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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