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열린포럼] 유진녕 전 LG화학기술연구원장 발제
"R&D 관리는 실패 관리···도전적 연구에 기회줘야"
"조직문화 바텀업 없다, 리더 역할 그만큼 결정적"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은 9월 대덕열린포럼에서 '기술혁신과 조직문화'에 대해 발표했다. <영상=대전MBC>

이성만 스카이테라퓨틱스 부사장,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이 22일 대덕열린포럼에서 '기술혁신과 조직문화'에 대한 주제로 의견을 공유했다. <사진=대전MBC>
이성만 스카이테라퓨틱스 부사장,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이 22일 대덕열린포럼에서 '기술혁신과 조직문화'에 대한 주제로 의견을 공유했다. <사진=대전MBC>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사장)은 22일 대덕열린포럼에서 "연구자들이 협업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공을 명확하게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팀 협업을 강화하려면 리더들이 부지런해야 한다"면서 "리더가 누가 무엇을 했는지 과정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평가를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전 원장은 이날 '기술혁신과 조직문화'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2년간 LG화학에서 기술경영자로 몸담으면서 조직문화를 바꿔 LG화학 기술을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가 LG화학 기술연구원장으로 있던 10년(05~14) 동안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 폴리머 전지, 3차원 유연성을 지니는 배터리, 3D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은 세계 선도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1위 산업을 다수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은 LG화학 기술연구원 조직문화에 있었다. 유 전 원장은 연구소장·원장으로 있으면서 연구자 특성을 기반으로 조직 전략을 구사했다. 기업 입장에선 연구개발은 현재 출시된 제품을 당장 개선하거나 미래 먹거리 산업을 만드는 생존이 걸린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유 전 원장은 연구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면 연구자 특성을 기반으로 '자율·협업·도전'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유 전 원장에 따르면 LG화학에는 연구원 6000여 명과 연구팀 500개가량이 있다. 내부 오픈이노베이션과 협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협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3D TV 산업 근간을 바꾼 '3D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이다. 개발 당시 1년 매출 45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LG화학·전자·디스플레이가 협업해 만든 결과라고 한다. 

그는 "입사 6개월이 지나면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기술과 다룰 수 있는 장비를 단어로 적어 6000명의 역량을 누구든 활용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했다"며 "1년 동안 개발한 기술을 공유하거나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2팀이 기술적인 문제를 발표하면 참석자들로부터 답을 구하는 포럼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공유했다. 

◆연구자 대우받는 환경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은 연구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면 연구자 특성을 기반으로 '자율·협업·도전'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사진=김인한 기자>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은 연구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면 연구자 특성을 기반으로 '자율·협업·도전'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사진=김인한 기자>
유 전 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연구에만 전념해도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소장·원장이 되어야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테크니컬한 길을 가더라도 사장 처우를 받을 만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LG화학 연구원에선 보직자가 아닌 연구위원이 사장 처우를 받는 제도를 만들었고, 실제로 부사장 처우를 받는 연구위원이 있다고 한다.   

유 전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연구 소장을 선임한다고 하면 연구위원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을 시키는데, 축구 잘하는 노장 선수가 좋은 리더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젊더라도 경영 스킬이 제대로 있는 사람이 소장·원장을 해야 하고, 대다수 연구자에겐 경영에 대한 관심보다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가 대우받고 자율적인 연구 환경에선 프로의식이 뒤따라야 한다. 그는 "프로는 스스로 엄격하다"면서 "자유분방한 가운데 스스로 관리가 되는 조직이면 연구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했다. 

◆"R&D 매니지먼트는 실패 관리"

이날 포럼에서 그는 실패 의미를 재해석했다. 유 전 원장은 "모든 기업이 도전을 장려한다지만 실제 도전이 일어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면서 "실패하면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 보고 0이라고 하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 과제 성공률이 90%가 넘는 문제를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국가 R&D 과제가 90% 이상 성공률을 나타내지만 세계 1등 기초연구나 산업화한 기술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자가 게을렀다면 페널티를 줘야겠지만, 세계 최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겐 도전 기회를 줘야 마땅하다"면서 "그래야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고 국가 R&D 문화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그는 "R&D 관리는 실패의 관리"라면서 "잘하는 사람 칭찬하고 못 하는 사람 벌주는 건 단세포 생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목표가 높아서 실패한 경우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실패 관리가 R&D 성패를 가른다"고 설명했다. 

◆"조직 문화는 바텀업 없다"

유 전 원장은 "조직 문화는 바텀업(Bottom-up)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조직 문화는 구성원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만든다"면서 "자율, 협업, 도전 문화가 가능하려면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술경영 22년 동안 느낀 건 경영이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라면서 "예컨대 '후배들의 마음을 사라' '일관성 있는 지시를 해라' 등과 같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식을 잘 실천하는 것이 좋은 경영"이라고 끝맺었다.

대덕열린포럼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대덕넷, 대전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대전MBC가 공동 주관하는 행사로 매달 과학기술 관련 이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장이다. 이날 패널토론에는 이성만 스카이테라퓨틱스 부사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이 참석했다. 패널토론 내용은 순차 보도될 예정이다. 

왼쪽부터 이성만 스카이테라퓨틱스 부사장,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사진=김인한 기자>
왼쪽부터 이성만 스카이테라퓨틱스 부사장, 유진녕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사진=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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