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과학이 첨가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볼까?

'맛있다, 과학 때문에'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과 이웃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박용기 박사가 쓴 맛 과학책이다. 나는 박 박사를 잘 안다. 몇 번 식사를 같이했고, 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모임에서 강연을 하며 자주 만났다.

그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정년퇴임한 후 초빙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학생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과학 강연을 하고 있다. 일간지 및 연구원 사보에 생활과 과학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면서 과학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과학자는 과학책을 써야한다'고 강조한 '과학자의 글쓰기'를 쓴 필자 입장에서 그에 딱 맞는 '맛있다, 과학 때문에'가 나와 무척 반가웠다. 나는 서둘러 책을 읽었다. '맛있다, 과학 때문에'는 어렵게만 느끼는 과학 지식을 음식으로 알기 쉽게, 맛깔나게 정리한 과학책이다. 요즘 '과학과 맛'이라는 테마는 많은 책에서 볼 수 있다. 과학과 맛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요리는 식재료에 일정 시간 열(에너지)을 전달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식재료에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재료의 구조가 바뀌고, 성분 간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맛과 식감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매일매일 먹는 음식에는 이런 다양한 구조의 변화와 반응이 고스란히 숨겨있다. 다만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른채, 또는 큰 관심없이 그냥 조리된 음식을 즐길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 속에 어떤 과학 원리가 숨어있는지 관찰하고, 음미해 보자. 적어도 '맛있다, 과학 때문에'를 읽는 동안에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보자.

내가 보기에 이 책에 많이 나오는 음식은 커피다. 커피도 음식인가? 그냥 그렇다고 치자. 나도 하루에 2잔의 커피를 마시지만 커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맛있다, 과학 때문에'를 읽으며 커피에 많은 과학이 숨어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놀랐다. 그야말로 '커피 한 잔의 과학'이다.

나른한 오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졸음을 쫓아주는 것은 물론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카페인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이 뇌 속에 들어가 아데노신이 결합하기 전에 수용기에 먼저 결합함으로써 아데노신이 졸음을 유도하는 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졸음이 올 땐 커피 한 잔. 하지만 하루에 섭취하는 카페인 양은 300~400㎎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럼 커피는 언제 마시는 것이 좋을까? 막연히 나른한 오후라고 하지 말고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신경과학자인 스티븐 밀러(Steven Miller) 박사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하루 동안 변하는 사이클을 근거로 커피 브레이크를 정했다.

밀러 교수에 따르면 오전 10~11시, 그리고 오후 1~2시 사이가 가장 효율적인 커피 브레이크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 시간만 되면 우리 연구원의 카페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구나!

그런데 왜 사람들은 쓴맛의 커피를 즐길까? 그 이유는 커피의 향과 커피 속의 카페인이 우리 뇌에서 기분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쓴맛을 내는 음식은 독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쓴맛을 즐기고, 음미하고, 서로 권하기까지 한다.

커피 얘기 하나 더. 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 하는 걸까? 그것은 커피 속의 카페인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힘이 솟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면서 데이트를 한다면 심장 두근거림이 자신과 데이트를 하는 사람 때문이라고 느껴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현상을 오귀인 효과(misattribution effect)라고 부른다.

저자인 박 박사가 커피를 좋아해서(물론 내 짐작이지만) 그런지 '맛있다, 과학 때문에'에는 커피 얘기가 유난히 많다.

커피는 언제 처음 마셨을까? 발원지는 에티오피아이다. 목동 칼디(Kaldi)는 어느 날 염소들이 어떤 나무 열매를 먹은 후, 너무 흥분해서 밤에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직접 먹어보았는데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듯 느껴졌다. 목동은 그 열매를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가져갔다. 목동의 얘기를 듣고 겁을 먹은 수도승이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열매를 불에 던졌다. 그런데 열매가 불에 구워지자 매혹적인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커피향이다.

그래서 칼디는 구워진 열매를 꺼내 갈아서 뜨거운 물에 넣어 마셔보았다. 더 이상 얘기하면 잔소리다. 우리들이 즐겨먹는 커피는 그렇게 탄생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커피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앞으로 칼디에게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건네야 할 듯하다. 칼디! 땡큐~~~

커피 얘기가 길었다. 다른 얘기를 해보자. 맛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영국 옥스퍼드대학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는 스페인의 유명한 와인 시음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우리의 뇌 중에서 시각과 연관되는 부위는 전체의 반을 차지하지만 맛을 느끼는 부위는 2%에 불과했다. 이것은 뇌가 음식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고, 예측하는데 색과 같은 시각 정보에 크게 의존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즉, 동가홍상(同價紅裳)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스크림 튀김'이다. 아이스크림을 튀긴다는 것이 말이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말이 된다. 그것도 너무너무 잘 된다. 아이스크림을 일반적인 냉동보관 온도보다 차갑게 큰 덩어리로 만들고, 그 위에 파이 크러스트 같은 튀김 옷을 얇게 입힌 뒤 뜨거운 기름에 짧게 튀겨내면 된다. 이렇게 하면 뜨겁고 차가운 이율배반적인 아이스크림 튀김을 만들 수 있다. 튀김옷이 튀겨지는 초기에는 내부로 열이 느리게 전달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은 녹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박 박사는 '맛있다, 과학 때문에'에서 "20년 전 위암 수술후 10일 금식을 하다 처음 물을 마셨을 때 너무 달콤했다"고 감격했다. 나는 책을 읽고 이렇게 박 박사에게 전하고 싶다. "오랜만에 '맛있다, 과학 때문에'를 맛있게 잘 먹었다"고. 커피도, 아이스크림 튀김도, 간고등어도, 식혜도, 와인도, 군고구마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넨다. 다른 사람들도 커피 한 잔 하면서 '맛있다, 과학 때문에'를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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