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물은행, 65만개 물질 보유···로봇 도입해 즉각 대응
이선경 센터장 "상반기 감염병·호흡기 물질 기업 이용 급증"
"상반기 이용 1000회 넘어, 바이오기업 실력 뛰어나"


한국화합물은행 라이브러리. 영하20도의 공간에서 로봇이 화합물을 찾아 제공한다.<영상= 길애경 기자>

폭염 속 들어선 영하 4도의 방. 시원하다 못해 춥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입구부터 빽빽한 선반마다 작은 서랍들이 가득하다. 각각 이름표도 붙여있다. 화합물의 특징, 기부자의 이름, 바코드까지. 서랍하나를 열자 이름표를 단 플라스틱병이 빈틈없이 놓였다. 이어 영하 20도의 공간. 들어가진 못하고 외부에서만 볼 수 있다. 로봇이 위 아래로 쉴 사이없이 작업중이다(이전에는 사람이 방한복을 입고 출입했단다). 로봇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작은 샘플 하나를 꺼내 놓는다. 65만개의 화합물이 보관된 '한국화합물은행'이다.

신약개발의 시작점 한국화합물은행(이하 화합물은행, 센터장 이선경).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며 화합물은행의 문턱도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올해는 기업들의 코로나19 관련 물질 요청이 쇄도했다. 평소 한해 내내 지원하는 수치를 이미 상반기에 넘어섰다. 이 센터장에 의하면 1000회 이상 이뤄졌다.

화합물은행은 말 그대로 화합물을 저장하고 유통한다. 연구자들이 국가연구개발을 통해 확보한 화합물을 모으고 관리하며 필요한 연구자에게 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한다. 때문에 연구기관, 대학, 기업의 연구자가 연구개발 전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화합물은행은 2000년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이미혜) 내에 문을 열었다. 미국 등 과학선진국 국가들은 필요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화합물질을 관리한다. 우리는 화합물 관리 역사가 깊지 않아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모으며 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초기의 화합물은행은 장비도 시설도 거의 갖춰지지 못했다. 화합물의 중요성을 인지한 화학연 내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우선 모으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이 직접 예산 확보, 화합물 수집에도 나섰다. 실험실을 찾아다니며 연구자들의 냉장고 속 화합물을 모았다. 그렇게 시작돼 20년이 흐르며 65만점의 후보물질을 갖췄다. 임상 라이브러리 외에도 천연물 라이브러리도 구성돼 있다. 각 물질을 바코드로 분류하고 샘플작업까지 완료해 요청 즉시 서비스 가능하다. 기업들의 이용도 다수다. 국내 신약개발의 시작점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이다.

내달이면 화합물은행 출범 20주년이 된다. 올해 5월 화합물은행은 화합물 관리와 정보시스템, 외부공개 DB를 통합한 DB플랫폼을 구축했다. 로그인없이 누구나 검색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화합물DB플랫폼으로 거듭난 것.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리며 화합물은행의 역할도 빛났다. 물성정보는 물론 필요한 화합물을 빠르게 제공하면서 K사이언스, K바이오의 기반이 됐다.

우리나라 화합물을 수집하고 관리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신약개발의 시작점 한국화학연구원 내 '한국화합물은행'이다. 플랫폼화해 서비스를 제공, 누구나 쉽게 찾고 활용가능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상반기는 평소 한해 요청 수치를 넘어서며 어느때보다 분주했다. 화합물은행 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발했다. 앞줄 왼쪽부터 이유리 연구원, 김선호 기술원, 이선경 책임연구원(센터장), 박희정 연구원, 뒷줄 왼쪽부터 강영묵 선임연구원, 이윤호 선임연구원, 김선우 기술원, 이현규 책임연구원.<사진= 길애경 기자>
우리나라 화합물을 수집하고 관리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신약개발의 시작점 한국화학연구원 내 '한국화합물은행'이다. 플랫폼화해 서비스를 제공, 누구나 쉽게 찾고 활용가능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상반기는 평소 한해 요청 수치를 넘어서며 어느때보다 분주했다. 화합물은행 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발했다. 앞줄 왼쪽부터 이유리 연구원, 김선호 기술원, 이선경 책임연구원(센터장), 박희정 연구원, 뒷줄 왼쪽부터 강영묵 선임연구원, 이윤호 선임연구원, 김선우 기술원, 이현규 책임연구원.<사진= 길애경 기자>
◆ "실험실 들어가 냉장고 털기부터 시작"

"초기에는 기탁하는 분들이 거의 없었어요. 30년동안 연구를 정말 열심히 하신 분이 정년퇴임하신다면서 갖고 가라고 해 연구실에 갔어요. 냉동고에 있는 물질들 6000여종을 다 털어(?) 왔는데 절반은 버렸어요.(웃음) 전기가 나갔다, 들어 왔다 했었는지 물기로 라벨 표시가 다 지워져 있는 거에요. 그중 300~400개만 쓸 수 있었어요. 너무 아깝죠."

2000년대 초 연구자들 사이에 화합물 공유 인식이 거의 없었다. 화합물은행도 막 시작단계로 화합물을 제공한다면 그냥 반가웠던 시기였다. 물질 표준도 없어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모으기부터 했다.

"연구자분들 특성상 연구성과로 얻은 물질은 본인이 독점하기를 원하시죠. 기탁을 해도 물질의 지식재산권은 당연히 연구자분에게 있어요. 지금은 특허 등록이 돼 있거나 특허를 생각하지 않는 물질만 기탁을 받습니다. 화합물 구조까지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수집전 이를 비교하고 확인하는 것은 화합물은행 구성원의 역할이고요."

이선경 센터장은 "연구개발한 물질을 여러사람이 활용하려면 기존보다 좀 더 만들어야한다. 연구자들이 자기가 필요한 양보다 더 만들려면 예산, 시간이 더 들어가는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구비를 조금 지원하면서 기탁이 늘었다.  지금은 국가연구비로 연구개발한 성과만 받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기탁연구성과제도 등 기탁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를 통해 기탁을 활성화 하고 있다"면서 "그러면서 기탁이 증가한 것도 있다. 특히 2014년 예산지원이 늘면서 로봇을 도입하면서 활용도도 높였다. 데이터 순환도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 시작은 화합물은행에서"

"올해 상반기는 정말 분주했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화합물을 찾는 기업, 연구자가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긴급요청이 많았어요. 보통 일주일 걸리는데 바로 다음날 달라는 식이었어요. 물론 다 대응했어요. 플랫폼화, 시스템화가  다 되어 있어 즉각 대응합니다."

이 센터장의 목소리에 자긍심이 담겼다. 화합물은행은 화합물을 수집하면 분류작업을 통해 화합물 최상 조건인 영하 4도, 습도 50% 방에 보관한다.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화합물 제공 요청이 오면 적합 화합물을 스크리닝해 필요한 양을 제공하게 된다. 절차상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화합물은행은 요청에서 제공까지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각각의 물질을 미리 스크리닝해 냉동 보관하고 있다. 요청이 오면 로봇을 통해 바로 찾아 해동과정을 거쳐 거의 하루만에 제공한다.

이선경 센터장은 "화합물을 요청 즉시 제공하기 위해 각 물질마다 미리 스크리닝하고 바코드 작업해 냉동 보관하고 있다. 영하 20도, 습도 50%의 공간이 그 곳"이라면서 "각각 화합물마다 품질 유지와 재고관리가 생명이다. 2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은 최상의 플랫폼을 갖추고 관리, 서비스한다"고 강조했다.

영하4도의 라이브러리. 기탁자들이 제공한 화합물을 특성, 기탁자명, 바코드로 정리해 보관하고 있다. 65만종에 이른다.<사진= 길애경 기자>
영하4도의 라이브러리. 기탁자들이 제공한 화합물을 특성, 기탁자명, 바코드로 정리해 보관하고 있다. 65만종에 이른다.<사진= 길애경 기자>
올해는 감염병이나 호흡기 질환 화합물 요청이 특히 많았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요청이 크게 늘었다. 이 센터장은 "올해 상반기에는 대학보다 기업이 더 많았다. 하루에 50~60개씩 요청이 있었는데 오전 7시반에 출근해 오후 8시반에 퇴근할 정도로 분주했다"면서 "그래도 기업에서 제시한 시험계획서를 보는데 국내 바이오기업의 실력이 무척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화합물은행의 화합물은 국내연구자 제공이 우선이다. 해외 제공은 국내외 공동연구일 때만 제공한다. 화합물 역시 중요한 국가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에 의하면 그동안 확실하게 나온 신약은 아직이지만 임상에 들어간 물질은 여럿이다. 기업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신규 타깃 검증까지 활용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 센터장은 "화합물은행은 국가적으로 큰 자산이다. 대덕과 판교의 바이오 벤처, 대기업에서도 많이 가지고 갔다"며 "해외는 우리보다 먼저 했지만 민간 기업 중심으로 화합물은행이 운영되다보니 필요 기관에서는 펀딩받아 자체적으로 하게 된다. 우리보다 규모나 화합물질 숫자도 적다. 부러워하는 해외연구자도 다수"라면서 며 향후 성과에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화합물은행을 운영하는 수장답게 각 연구실에서 보유중인 화합물 기탁을 당부했다.

그는 "그동안 기탁자가 1000명이 넘는다. 연구자 중 200종까지 기탁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탁 문화가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면서 "각각의 연구자들이 개별로 보관하는 것보다 최상의 조건에서 보관하고 관리한다. 블랙아웃에도 전기가 제공돼 화합물 변화를 막는다"며 라이브러리의 강점을 들었다. 

이어 그는 "재고 관리도 데이터화 해 기탁자, 재고량 등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더 많은 기탁으로 많은 연구자, 기업에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영하20도 공간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 로봇을 활용해 화합물을 찾고 정리한다. 이선경 센터장이 설명하고 있다. 뒷면이 영하20도 공간이다.<사진= 길애경 기자>
영하20도 공간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 로봇을 활용해 화합물을 찾고 정리한다. 이선경 센터장이 설명하고 있다. 뒷면이 영하20도 공간이다.<사진= 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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