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원자력연 거액 기술 수익금에 내부 갈등 야기
기술이전촉진법 제정 20년, 현장 안착은 여전히 험난
"기술다변화 등 환경 요소 반영하고 TLO 인력 역할 강화해야"

2000년대 초 ETRI는 CDMA(코드분할 다원접속)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고 퀄컴으로부터 받은 기술료 1289억원 가운데 직간접 참여자 등 395명(직접 122명, 간접 94명, 지원부서 및 소송참여자 179명)에게 29억원을 지급했다. 기술료 수입의 2.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기술 개발 직접참여자는 5500만원, 간접참여자는 3000만원, 행정인력은 100만원에 500만원까지 차등 지급했다. 나머지는 연구개발 재투자 명목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외된 연구자들이 불만을 제기했다. 행정인력은 대다수 포함하면서 연구인력은 지급하지 않았다며 지급 기준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불신과 갈등이 커지면서 내홍을 넘어 소송까지 이어졌다. 연구 현장에서는 ETRI 연구진은 이후 돈 되는 연구만 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ETRI의 CDMA 기술 개발로 이동통신서비스가 본격화 되고 한국은 오늘날 통신 강국의 자리에 올랐지만 연구 현장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진게 사실이다. 수익료 지급이 긍정 부분도 있었으나 부정적인 영향도 상당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ETRI는 8년간(1997~ 2004년) 퀄컴에서 2100억원의 기술 수익료를 받았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ETRI는 이후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15년 기술출자한 연구소기업 콜마비앤에이치가 코스닥에 상장하며 보유 지분을 1차 매각했다. 세금과 비용을 제외하고 기술 수익금 330억원을 받았다.

기술 수익금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되고 기술개발에 참여한 연구자와 기술사업화에 기여한 기여자 선정에 들어갔다. 보상심의위원회는 '면역조절기능 증진 및 방사선 방호용 생약조성물 과제'와 '식품의약품 및 화장품 제조용 천연물 고순도 정제 방법 과제'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 11명, 7명(1명은 양쪽)을 확정했다.

가장 높은 보상금을 받은 연구자는 양쪽 과제에서 42.80%, 2.05%를 인정받으며 세금전 41억원을 받았다. 뒤를 이어 30억원, 19억원이 참여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0.87%를 인정받은 참여자는 6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기여자를 선정하고 배분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다. 보상심의위원회는 기여 신청자 23명중 현저한 기여자라는 항목으로 3명만 인정하고 배분율도 0.15%(5000만원)로 확정했다. 기술사업화(TLO) 조직에서는 콜마비앤에이치의 경우 단순 기술이전이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출연연 1호 연구소기업이었던 만큼 기술 발굴부터 연구소기업 설립, 기업합병, 코스닥 심사 지원, 보유 주식 매각 결정 등 기여한 부분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재 심사를 요청했다.

보상심의위원회는 내부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보상심의위원회는 법안에 근거한 합의보다 O, X로 확정하며 기여자의 반발과 내부 구성원 간 갈등을 키웠다. 결국 현저한 기여자 3명의 TLO는 보상을 거절하거나 포기했다. 갈등 구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자력연은 최근 콜마비앤에이치 지분 중 2차 매각을 실시했다. 비용과 세금을 제외한 금액이 748억원에 이른다. 벌써부터 내부에서는 배분결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기존에 기여자였던 TLO에서는 기술사업화 문화 조성과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제대로 된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쩐(錢)의 전쟁이다. 기술료 수익금이 수 억원에서 수 백억원까지 커지며 대박 과학자, 부자 과학자 탄생의 희망이 되기도 했다. 물론 부자 과학자 탄생은 축하할 일이다. 연구개발 성과가 시장에서 인정받고 제품화 되는 부분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있는게 사실이다. 기술이 시장에서 꽃 피기까지는 연구개발부터 기술발굴, 이전,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화, 시장 진출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각각의 단계마다 누군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술 수익금 배분시 이들의 역할을 공정하게 인정하고 보상하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연구자는 과제 참여 여부로 결정이 비교적 수월하다. 기여자는 범위와 역할에 따라 구분이 쉽지 않다. 특히 심사자의 관점에 따라 기여도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 공정성을 갖기 어려운 점도 있다.

배분 문제와 달리 또 다른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연구비를 받아 기술을 개발하고 이전해 발생한 수익금인데 기관보다 개인이 더 많은 수익금을 받는게 과연 맞느냐는 것이다. 또 기관의 인프라와 인력을 활용해 개발한 기술인데 수익금 배분이 지나치게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실제 역할을 하고도 기여자 선정에서 제외되며 연구 문화는 물론 구성원간 네트워크를 흉흉하게 하고 있다는 우려다. 기술 이전과 사업화 촉진을 위해 제정된 '기술이전촉진법'이 오히려 연구환경과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 20년 맞은 기술이전촉진법, 배분은 여전한 갈등 요소

정부는 1994년 발명진흥법을 제정하고 2009년 일부개정을 통해 직무발명보상제도를 시행해 왔다. 발명장려와 연구현장의 기술이전, 사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추진한 일이다.

또 기술이전 활성화를 위해 2000년 기술이전촉진법을 제정했다. 올해로 20년이 됐다. 이 법 역시 공공연구기관에서 개발된 기술이 민간부문으로 이전돼 사업화를 촉진하고 기술경쟁력 강화와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정부는 2007년 기술이전촉진법을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기술이전촉진법)'로 법명을 바꾸고 시행령을 개정했다. 개정의 주요 내용은 기여자 보상을 명시했다. 2010년 8월 제19조제2항을 개정하면서 연구자는 개발한 기술을 이전하거나 사업화 해 얻은 기술료 중 100분의 50이상을, 기술이전에 기여한 사람은 100분의 10이상 배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연구개발특구 육성에 관한 특별법의 시행령(2018년 10월 16일 개정)에서도 기술개발에 기여한 인력 및 부서는 수익금의 100분의 50 이상, 사업화에 기여한 인력 및 부서의 보상금은 100분의 10이상 100분의 50미만을 받도록 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서도 기술 확산에 이바지한 직원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토록 하고 있다.

그런 때문인지 기술 이전이 비교적 활발해졌다는 평가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자료에 의하면 출연연이 기술 출자에 참여한 건은 103건, 그중 매각 건수는 10건이다. 매각 대금은 517억5900만원(2019년 6월 기준)에 이른다. 출자당시 가치평가 금액이 167억200만원으로 전체 수익률은 3배가 넘는다. 원자력연의 매각 대금을 포함하면 1000억원이 훌쩍 넘으며 수익률도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배분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기술 이전에 기여한 인력의 평가가 불명확하게 이뤄지면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기술사업화 확산을 위해 기술이전 기여자에 대한 배분율을 2007년 5% 이상, 2010년 10% 이상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이는 강제조항이 아니다. 출연연마다 기술실시관리지침에 대한 원규를 두고 있다. 때문에 출연연에서 기술 수익금이 발생할 경우 대부분 기술이전촉진법보다 원규에 의거해 보상위원회를 두고 배분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연구자와 기술사업화 인력간 협력보다 갈등이 발생하는 모양새다. 당초 취지와 달리 내부 분란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기술 수익금 단위가 클수록 갈등도 증폭된다. 작은 비율차에도 수억, 수십억원으로 배분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배분율에 민감해진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2년마다 바뀌는 행정 인력에게 큰 금액의 기술 수익금을 지급하는게 맞는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전문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사업화 입장에서는 역할을 한 기여자는 인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도 자리 잡지 못한 기술사업화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그 과정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공정성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기술 사업화 생태계 활성화, 서로 인정하는 문화부터"

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는 사업화 촉진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에 제정된 Bayh-Dole Act에 의해 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가 본격 탄생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경우 수익금의 15%를 TLO에게 배분하고 나머지 85%를 연구자, 지원인력과 조직, 기관(대학)에 3분의 1씩 배분된다. 연구자는 28%정도의 보상을 받게 되는 셈이다. TLO는 15%의 배분 수익금으로 기술사업화는 물론 특허, 창업 전반을 지원한다. 이는 스탠포드 대학이 실리콘밸리의 핵심이 되는 단초가 됐다.

TLO 관계자에 의하면 국내는 미국법을 모방해 TLO 조직과 기술이전촉진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기술 수익금 배분이 지나치게 연구자 개인에 맞춰지면서 생태계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TLO의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내부 조직 간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TLO조직에 대한 배분에 여전히 논란이 많다. 법령에 10% 지급이 명시돼 있지만 많아야 1.5%에서 2% 수준을 지급하거나 안주는 곳도 많다"면서 "기관에서는 행정직원간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며 지급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기술사업화는 부가가치 활동으로 혁신의 매개자이다. 단순 관리를 넘어 기술의 품질을 높이고 기업의 수요를 반영해 기술을 인큐베이팅하는 역할로 행정업무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술 이전 역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으로 전문성과 지속성이 필요하다. 지금은 기관 대부분 2년마다 인력을 교체하는 시스템이다. 기술사업화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적어도 5년 이상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년의 시간이 흐른만큼 환경 변화를 반영해야 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출연연의 TLO 관계자는 "초기에는 산업화를 위해 연구자 지분을 50%로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다변화와 국내, 글로벌 등 사업화를 위한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기술사업화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연구자의 과제가 과제에 머물지 않고 상용화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TLO의 역할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기술 사업화를 위한 장기 R&D도 필요하다. 우리는 정량적 평가로 과제로 끝나며 사업화로 이어지기 어려운 점도 있다"면서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가 쉽게 창업하고 기술 이전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은 자칫 감사의 대상이 된다. 기업과 연구자가 모태 기관과 같이 성장 할 수 있도록 규정 변화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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