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모교 서울대 두고 세 차례 기부
이전 90억원 포함하면 총 766억원 기부 '역대 최고액'
"KAIST가 과학기술 인재 배출해 국가 발전 이끌어달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23일 KAIST에 개교 이래 최다액인 676억원을 기부했다. 앞서 2012년과 2016년 90억원 가량을 포함하면 총 기부액은 766억원이다. <사진=김인한 기자>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23일 KAIST에 개교 이래 최다액인 676억원을 기부했다. 앞서 2012년과 2016년 90억원 가량을 포함하면 총 기부액은 766억원이다. <사진=김인한 기자>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現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은 23일 KAIST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에서 676억원을 기부하며 "가난과 나라 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이 과학기술 위상을 높여 미국처럼 세계 패권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KAIST가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달라"고 기부 의사를 밝혔다.

앞서 이 회장은 2012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90억원을 기부했다. 이번 기부액까지 포함하면 총 766억원. KAIST 개교 이래 최고 기부액이다. 

이날 기부 협약식에는 KAIST 관계자 50여 명이 모였다. 이 회장이 기부 배경을 밝히는 중간중간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 회장은 80대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메시지에 또렷함과 강단이 있었다. 17년 기자 생활과 평생 사업가로 살아왔던 면모 그대로였다. 80년이 넘는 삶을 회고하는 영상이 끝난 뒤에도 그는 담담했다. 오히려 신성철 KAIST 총장이 이 회장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 가난과 나라 없는 설움이 만든 '국가관'

이 회장은 일제 통치가 한창이던 1936년 8남매 막내로 태어났다. 1956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진학한다. 여느 법대생처럼 사법고시에 도전했으나 떨어지고 법조인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그가 선회한 길은 신문 기자.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신문, 한국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등을 거쳤다. 

이 회장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시작한 주말농장이 계기였다. 부친이 학자금과 결혼 비용으로 주려던 50만원짜리 적금 통장 2개가 밑천이었다. 그는 1971년 '광원목장'을 설립해 목축업에 뛰어들었다. 낮에는 취재하고, 밤에는 돼지와 송아지를 키웠다. 돼지 2마리와 소 3마리로 시작한 사업이 각각 1000마리와 10마리로 늘어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찾아온 돼지·우유 파동 속에서 기자 생활하며 쌓아온 인적 자원으로 문제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 시기 이 회장은 서울경제신문사에서 노조를 결성했다는 오해를 받아 해직됐다. 17년 기자 생활을 접고 절망하지 않았다. 당시 퇴직금 500만원을 받아 2000만원이었던 트랙터를 샀다. 소와 돼지 키우는 일에 전념하다가 건설 붐이 불던 시기 모래 채취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후 여의도백화점 한층을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부동산 사업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부동산 전문기업인 광원산업을 창업해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서전 '왜 KAIST에 기부 했습니까'에서 "기자로 익숙해진 생활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7전 8기의 정신으로 살면서 어려움을 전화위복 계기로 만들었다. 언제나 안테나를 세워 돌파구를 찾았다"고 썼다. 

◆ 모교 서울대 두고 KAIST에 3차례 기부

이 회장이 모교인 서울대를 뒤로하고 KAIST에 기부하게 된 배경은 격동의 역사를 지나오며 부국강병을 위해선 과학기술만이 해법이라는 생각이 컸다. 이 회장은 이날 "서남표 전 KAIST 총장이 TV에서 미국이 잘 사는 이유를 과학기술과 결합해 얘기하더라"면서 "그 순간에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과학 발전이 필요하고, KAIST에 기부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국가 발전을 이끌어왔는데, 반도체 분야 석·박사 연구인력 25%가 KAIST 출신이라고 하더라"면서 "그동안 국가 경제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삼성전자 인재들이 KAIST 출신이라는데 아까울 것이 뭐가 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세상만사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면서 "KAIST는 사명감을 가지고 대한민국과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나갈 영재를 키워 달라"고 주문했다. 

그간 KAIST는 신진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10년간 논문 평가를 하지 않고, 연구 몰입 환경을 조성해 파괴적 혁신을 만드는 '싱귤래러티 교수' 제도를 구상해왔으나 예산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KAIST는 이번 기부액 676억원으로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싱귤래러티 교수 지원에 본격 나선다는 방침이다. 

신성철 총장은 "평생의 피땀으로 일궈낸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은 이수영 회장님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는 KAIST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사명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이수영 이사장님의 뜻을 반드시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나눔의 행복 느껴보라"

이 회장은 "자기가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면서 "모든 젊은이는 7전 8기 도전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남에게 주는 삶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면서 "KAIST에 기부하고 참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삶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자신이 가진 걸 주는 삶을 살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기부는) 후손들이 떳떳하게 가슴 펴고 살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역대  최고액 기부자는 '한의학계 대부' 故 류근철 박사였다. 그는 2008년 8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써달라며 서울·경북에 소유하고 있는 건물과 임야 등 평생 모은 전 재산 578억원을 KAIST에 기부했다. 당시 그는 "KAIST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2001년 300억원, 2014년 215원 등 총 515억원을 KAIST에 기부해 바이오및뇌공학과 미래전략대학원 조성에 기여했다. 이외에도 올 1월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100억원)을 포함해 최태원 SK 회장(100억원)이 기부했다.  

아래는 기부 약정식 사진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신성철 KAIST 총장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기부 약정식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KAIST 제공>
신성철 KAIST 총장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기부 약정식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KAIST 제공>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23일 KAIST에서 "한국이 과학기술 위상을 높여 미국처럼 세계 패권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KAIST가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달라"고 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23일 KAIST에서 "한국이 과학기술 위상을 높여 미국처럼 세계 패권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KAIST가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달라"고 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글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중복 질문은 하나의 답변으로 압축하고, 논지와 벗어나는 일부 내용은 걷어 냈습니다. 표현에 정제가 필요한 부분 일부도 다듬었다는 점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은 변함없습니다.  

Q. 기부금이 노벨상 배출 밑거름으로 쓰이길 바라셨는데, 노벨상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

A. 노벨상은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상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위상 높이려면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 미국이 과학기술을 통해 세계 패권국가가 된 것처럼 우리가 되지 말라는 법 없다. 

Q. 모교는 서울대인대, KAIST에 3차례 기부하셨다. 특별한 배경이 있으신가. 

A. 2012년까지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이사장이었다. 서울대에 유능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많아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공부는 잘하는데 사회 공헌하는 게 없더라. 사회를 위해 몸 바쳐 일하는 게 없었다. 개인적인 영달에 빠지는 모습을 봤다. 내가 장학금을 주는 철학과 배치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학기술 분야로 시선을 돌렸다. 

서남표 전 총장이 TV에서 한국 발전하려면 과학기술 발전 필요하다고 얘기하던 모습을 봤다. 그게 기부의 원동력이 됐다. 그 당시 서남표 총장이 미국이 잘 사는 나라를 과학기술과 결합해서 얘기하더라. 우리나라 잘 살아야 하지 않나.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일으켜서, 그 정신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 이뤘다. 공업화가 빨라졌다. 과학기술 중요하다. 

서남표 전 총장 연설이 나를 감동시켰다. 연설에서 국민들에게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호응해달라고 했다. 그 모습 보며 '아 저 사람에게 기부해야겠다' 생각했다. 모든 결정은 순간이다. 당시 서남표 총장 얼굴도 몰랐다. 

나는 많이 아팠다. 병원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내 재산이 무의미하게 쓰이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KAIST에 유증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신성철 총장이 아이디어도 많고 참 바르다. 신 총장 임기 내에 KAIST 발전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KAIST에서 기부금을 대한민국 발전과 과학 발전을 위해 긴요하게 써줄 것을 당부드린다. 

Q. 기부 결심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지지해 주셨나.

A. 그렇다. 내가 병원 다니고 기력이 없을 때 남편이 지지해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부하면 싸움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가족들이 의사를 존중해줬다.

Q. KAIST에서 우수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다. 기부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셨는지.

A. 삼성전자가 국가 발전 이끌어왔다. 삼성 반도체 분야 박사급 인력 25%가 KAIST 출신이라고 하더라. 삼성전자 인재가 KAIST 출신. 그렇기 때문에 아까울 것이 뭐가 있겠나. 사람들은 경제를 잘 모른다. 경제 없으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돈이 없으면 녹슨 칼이나 다름없다. 자기 돈을 남에게 주는 건 하느님의 축복이다. 나는 축복을 받았다. 

Q. 도전 없이 불가능한 삶을 사셨는데, 미래 세대를 위해 도전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A. 모든 건 하면 된다. 자기가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열려 있다. 과학은 모르지만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안다. 모든 젊은이는 도전하고 7전 8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나폴레옹이 불가능은 없다고 했다. 나도 많은 시련 겪고 좌절도 했지만, 그걸 하나하나 개척해서 전화위복한 사람이다. 젊은 사람들이 용기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돈 버는 일은 머리만 잘 쓰면 되더라. 자기 생각과 아이디어와 노력만 있으면 이뤄진다. 부모덕으로 사는 사람은 버는 건 모르고 쓰는 것만 알아서 자생력이 없다. 부모들이 고생해서 돈 벌었으니 자식들에 편하게 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부모가 자식에게 돈 주는 건 반대다. 젊은이들 생각과 아이디어 노력만 하면 된다.  

Q. 미래세대에게 나눔의 기쁨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A. 남에게 주는 삶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나는 KAIST에 기부하고 참 행복하게 살았다. 내 생애 이렇게 기쁠 수 없다. 심지어 내 생명을 빼앗으려 했던 사람도 나에게 돌아왔다. 그런 기쁨이 어디 있나. 삶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남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다. 

젊은 학생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자생해서 더 큰 국가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 기부액이 그런 밑거름 될 수 있기 때문에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 것. 이게 밀알이 되어서 우리가 발전하고 우리나라가 외세에 침범 안 되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후손은 떳떳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도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 사람에게 텃세 안 부린다. (기부는) 그렇게 미래 세대가 떳떳하게 가슴 펴고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이다. 

Q. 앞으로 추가 기부 계획도 있으신가. 

A. 추가 기부 계획 있다. 나는 KAIST를 계속 지켜볼 것이다. 노벨상 안 나와도 지원 지속돼야 한다. 뜻에 공감하는 분들 동참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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