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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단상]출연연 예산 파동 유감···文 정부 '철학 빈곤'?

재정 핑계 출연금 초유의 미지급···연구 차질 심대
과학기술은 미래 투자, 과기부는 '육탄방어' 했어야
과학계도 긴축 노력으로 비상 극복 동참해야
출연연이 유례없는 '춘궁기'를 겪고 있다. 사상 초유다. 정부가 재정을 어느 때보다 많이 쓰고 있으나 정부 부처와 출연연 등 정부 출자를 받는 곳은 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인 과학계에 대한 예산 미지급은 생명선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시급한 해결이 요구된다.

미국이 과학 강국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보고서가 하나 있다. 바로 버니바 부시 박사가 1945년 발간한 '과학, 그 영원한 개척(Science, the Endless Frontier)'이란 보고서이다. 부시 박사는 유능한 과학자다. 레이더 기술로 잠수함을 탐지해 내며 독일의 유보트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원자탄을 개발하는 맨하탄 계획에도 관여하는 등 국방과학에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2차 대전 승전에 과학기술로 기여했다.

버니바 부시 박사의 '과학, 영원한 도전' 보고서 표지. <사진=이석봉 기자>버니바 부시 박사의 '과학, 영원한 도전' 보고서 표지. <사진=이석봉 기자>

당시 미 대통령의 과학자문 역할을 한 그는 종전에 앞서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의뢰를 받는다. 종전 이후 미국이 취할 과학정책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미국은 유럽의 전통을 이어받아 과학 연구는 개인 혹은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철강왕 카네기가 연구재단을 만든 것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학회가 출범하는 것 등 민간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정부는 보완적 역할에 그쳤다.

다만 세계 대전을 수행하면서는 국방 연구가 필요했고, 이 부분은 정부 자금으로 대학 등에 연구를 의뢰해 무기 등을 개발했다. 이에 따라 2차 세계 대전 때도 정부가 많은 연구개발비를 대학 등에 투자했고, 맨하탄 프로젝트같은 대형 투자도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그런데 종전이 되면 이전처럼 과학연구를 민간 차원에 맡기는 방향이 옳은지, 아니면 계속해서 정부 투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달라는 것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부시 박사에게 주문한 요지이다.

버니바 부시가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많은 조사를 한 끝에 낸 결론은 앞으로의 과학은 정부 주도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민간 재단 차원의 연구개발은 지속되겠지만 과학이 국방 및 국가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만큼 정부가 중요한 축이 되어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발표 시 미 대통령은 해리 트루만이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기관이 1950년도에 만들어진 과학재단(NSF)이다. 이곳에서 일반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 주제를 받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올해 2월 열린 AAAS(전미과학진흥협회) 연차 총회에서는 부시 보고서 발간 75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 주제는 '안주를 넘어, 미국의 영원한 도전 재도약(Beyond Complacency: Renewing America’s Endless Frontier)'.

발제를 맡은 다이안 수베인 박사는 미국의 연구 환경을 세계 최고로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속적 투자와 인재 양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날이 갈수록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한 제안이다.

AAAS 2020에서 버니바 부시 보고서 75주년을 맞아 열린 세미나의 주제는 미국의 재도전이다. 결론은 세계 최고의 연구환경을 구현해야 하고, 우수한 인재가 올수 있도록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이석봉 기자>AAAS 2020에서 버니바 부시 보고서 75주년을 맞아 열린 세미나의 주제는 미국의 재도전이다. 결론은 세계 최고의 연구환경을 구현해야 하고, 우수한 인재가 올수 있도록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이석봉 기자>

우리나라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효과가 큰지를 온 국민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결국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 냈고, 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읽고 연구해 진단 장비 및 키트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우리는 가장 안전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선진국들이라 여겨진 나라들도 많은 인명과 재산상의 손해를 보며 일상이 마비됐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안정된 상황에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상당 수준 누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바이오니아가 카타르에 진단 시스템을 제공하고, 카타르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23조원 규모의 LNG선 1백 척 한국 발주를 발표하듯이 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 코리아 프리미엄이 생기는 것은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과학기술이 국정의 중심임을 천명했다. 올해 부처 업무 보고를 받으며 1번 타자로 과학기술 분야를 꼽았고, 연구 현장인 대덕에서 과학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과학기술은 국민의 삶을 바꾸는 힘이 있다"며 "경제성장을 이끌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원천"이라고 칭찬했다. 당연히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과학기술에 대한 전폭적 지원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25일 한국경제 주최의 스트롱 코리아 포럼 축사에서 "코로나19 극복 과정에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고, 그 여세를 몰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양자 컴퓨터와 수학 등 기초분야 연구를 통해 국민의 삶이 과학기술로 더욱 풍요로워지도록 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출연연들의 출연금은 일괄적으로 적게 지급됐다. 이로 인해 연구현장은 혼란이 심하다. 어찌어찌 수습은 하겠지만 연구에 차질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세계 과학계는 셧다운 상태다. 한국만이 정상가동되고 있다. 이러한 때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더 나아가 더 좋은 연구 결과를 내놓아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이러한 때야말로 어렵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며 국민을 설득하고 투자를 했어야 한다. 기재부도 모든 부처 예산을 칼로 무 자르듯 일괄적으로 삭감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분야만큼은 미래를 위한 것인 만큼 예외 규정을 두었어야 한다. 과기부는 해당 부처로서 청와대와 기재부를 설득해 육탄방어라도 하며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예산 미지급만큼은 막아 냈어야 한다. 그래야 과학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이후 긴축 재정을 짜도 과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경영의 구루 반열에 들어갈 유진녕 前 LG 화학 CTO는 말한다. 과학자는 존중을 받을 경우 받은 것 이상을 돌려주는 존재라고.(연구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163-165쪽)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과학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이번에 지급된 재난 지원금이 14조원이 넘는다. 출연연 미지급금은 약 3천억원이다. 국민들이 기꺼이 고통분담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액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현명한 존재다. 참을 줄도 안다.

과학은 정권을 불문하고 우리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농부는 굶어 죽을 지언정 내년에 심을 종자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 정권을 쥔 사람들과 관료들의 철학이 요구된다. 과학을 급하면 버리는 분야로 여길지, 생명선으로 보고 최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할지. 역대 정권은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과학을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했다.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했고, 다른 예산을 줄여도 과학 예산을 늘려왔다. 하지만 어려울 때 진심이 보인다고 지금처럼 춘궁기를 만드는 것은 하지하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계도 이번 기회에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과학분야는 예산에 관한한 성역에 가까웠다. 그런 만큼 일부 과학자가 안주한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가 과학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온 만큼 연구에 있어서도 좋은 결과로 보답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바이오는 대단한 성과를 냈다. 그런데 이 성과의 대부분은 기업이 한 것이다. 출연연이 지원은 했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정부 차원의 긴축에 협조 방안을 고민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5천년 역사에서 고난을 딛고 가장 안전한 삶을 유지한 것은 과학기술의 힘이 크다. 국민들이 과학기술자들을 믿어 주었고, 과학기술자들은 성실함과 몰입으로 성과를 냈다. 코로나19로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불투명한 만큼 그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고 그렇기에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지속돼야 한다.

과학은 무엇이고, 왜 하느냐는 철학을 이번 기회에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청와대, 국회, 기재부, 과기부 등 의사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도 이를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최고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원칙을 점검하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사숙고할 계기로 삼는 것도 좋겠다. 

사상 초유의 출연연 춘궁기가 우리에게 의외의 선물이 되어 과학에 대한 철학을 굳건히 세우고, 사태를 빨리 해결함과 동시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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