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SDF융합연구단, ICT 기술 활용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
CCTV·센서·GPS 등 현장 상황 검역본부로 즉시 송출 기능
국가적 가축질환 기여 위해 연구···"연구자에게 장벽 중요치 않아"

(왼쪽부터)김기현 위촉연구원, 윤환식 실장, 유한영 연구단장, 이봉국 실장, 김대회 선임연구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와 치료에 힘쓰는 의료진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는 릴레이 캠페인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며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왼쪽부터)김기현 위촉연구원, 윤환식 실장, 유한영 연구단장, 이봉국 실장, 김대회 선임연구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와 치료에 힘쓰는 의료진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는 릴레이 캠페인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며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돼지 분비물통을 차로 운반하는데 냄새가 상당히 지독하더라고요. 며칠 동안이나 냄새가 안 빠져서 애먹었습니다. 산중턱 눈밭을 구르고, 다치면서 야생 멧돼지 유인에 성공했습니다."

ICT 분야 과학기술인들이 돼지 분비물을 옮기고 산을 오가며 눈밭을 굴렀던 연구 이야기가 화제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SDF(Smart Defense for Foot and mouth disease) 융합연구단의 얘기다. 

유한영 SDF융합연구단장은 연구 당시를 회고하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과학자가 산 속에서 궂은 일 하느라 고생했겠다?"는 질문에 유 단장은 "국가에 기여하는 일에 장벽은 없어요"라고 시원하게 답했다.

SDF융합연구단이 돼지 소변으로 고군분투했던 사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멧돼지 유인을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African Swine Fever) 확산 방지를 위해서다.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 주범으로, 사람에게 전염되지는 않지만 돼지에겐 치사율 10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 감염병이기에 개체 수 조절이 시급한 문제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9월 사육 돼지의 첫 발병 이후 총 14차례 확진이 있었으며, 야생 멧돼지는 지난해 누적 확진이 55건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500건을 넘어서며 발병이 급증했다.

현재 경기·강원도 일대에 광역 울타리와 포획틀을 설치해 멧돼지의 남하를 막고 있지만 울타리를 뚫는 등 멧돼지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하고 주이동 경로가 험준한 산악 지형이기에 개체 수 조절에 난항을 겪고 있다. 

유 단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를 사람이 신발에, 또는 새가 입에 묻힌 채 사육돼지를 접촉하면 그 돼지는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다"며 "그 정도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이성과 생명력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연구 배경에 대해 "축산업자들에겐 생계가 달린 문제기에 융합연구단이 가진 ICT를 활용해 평지에서도 멧돼지 포획이 가능한 방안을 구축해 기여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 눈밭 구르며 분비물로 멧돼지 유인···'ICT 기술' 활용

SDF연구단원들이 멧돼지 유인 연구를 위해 옥천군 청산면에 CCTV 설치와 암퇘지 분비물을 살포하고 있다. <사진=ETRI 제공>
SDF연구단원들이 멧돼지 유인 연구를 위해 옥천군 청산면에 CCTV 설치와 암퇘지 분비물을 살포하고 있다. <사진=ETRI 제공>

연구진은 수의사로부터 가임기의 암퇘지가 수퇘지의 힘이나 서열을 능가한다는 말에서 멧돼지 유인 아이디어를 얻어 냈다.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연구진 입장에서 계속 멧돼지 유인작전 실패를 맛봤던 터라 '유레카'를 외칠만한 아이디어 였다. 실현 가능성이 높았기에 곧바로 농가에서 대량의 암퇘지 분비물을 얻어 멧돼지 유인 작전을 추진했다. 

첫 시도는 지난 1월,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진행됐다. 유 단장은 "완주군 지구에 연락했더니 CCTV 등 설치에 제출서류가 많아 직접 설치했다"며 "사람들의 왕래가 전혀 없던 길이기에 설치 도중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눈밭을 구르는 등 다사다난했다"고 되돌아봤다. 

연구진은 분비물 살포 후 멧돼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차 시도부터 성공적이었다. 멧돼지가 실제로 유인된 것이다. 연구진은 반대로 유인된 멧돼지가 분비물의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분비물을 치워봤다. 그 결과 멧돼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범위를 넓혀 옥천군 청산면으로 향했다. 무작위 CCTV 설치 후 첫 3일 동안 분비물 없이 멧돼지 출몰지역 여부만 확인했다. 연구진은 비출몰지역인 것을 확인 후 분비물을 살포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총 7마리의 멧돼지가 포획된 것이다. 
 

  옥천군 청산면에 암퇘지 분비물 살포 후 멧돼지가 유인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멧돼지들이 분비물통에 몸을 비비고 있다. <영상=ETRI 제공>  

연구진은 멧돼지 유인을 위해 다양한 ICT 기술을 접목했다. 우선 들어갈 순 있지만 나올 순 없는 큰 포획틀 안에 분비물과 음식을 넣어 놨다. 연구진은 멧돼지가 틀 안으로 들어오면 감응센서가 인지, CCTV가 해당 장면을 촬영한 후 검역본부에 자동영상을 송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검역본부 관리자는 GPS를 통해 어느 지역에 멧돼지가 잡혔는지 송출된 영상과 사진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관리자가 외부에 있을 시에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유 단장은 "처음 분비물로 유인한다는 발상을 누군가는 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실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며 "등잔 밑이 가장 어둡듯 당연하게 여긴 사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유 단장은 연구 중 CCTV 확인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설치된 카메라가 생체 움직임을 포착하기 때문에 나뭇잎이 흔들려도 작동돼 하루에도 몇천 장씩 찍혔다"며 "일정 기간 이후 수거해 찍힌 사진들을 확인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경기도 파주 등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지역에 추후 재발병을 고려해 재입식 허가를 안 해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렇기에 이러한 연구로 광역 울타리 내의 멧돼지 개체 수를 최대한 조절하면 축산업자들이 재입식 허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축산업자들에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재앙과도 같다. 유 단장은 "이러한 연구가 대단히 큰 성과는 아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통제에 한 부분을 일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현재 환경부와 지자체 등과 협력 중이며 향후 멧돼지뿐만 아닌 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 관리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음성 분석·이동 경로 파악 등···ICT로 '구제역' 잡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구제역 연구에 사용되는 가축 음성 분석 기기, 가축 활동성 분석 기기, 현장 진단키트·리더기, 사람 관리·영상 장비가 나열돼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구제역 연구에 사용되는 가축 음성 분석 기기, 가축 활동성 분석 기기, 현장 진단키트·리더기, 사람 관리·영상 장비가 나열돼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SDF융합연구단의 주 연구는 구제역이다. 연구진은 구제역 연구를 진행 중, 확산 추세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인지하고 그동안의 연구 노하우를 접목하면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은 ICT 기술로 돼지의 활동성, 사료 섭취량, 소리 변화 등을 파악해 구제역 감염 여부를 진단한다. 구제역 감염 돼지는 움직임이 적고 사료 섭취량이 적으며 소리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ICT 모니터링 기술로 감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향후 구제역 발생시 농가를 오간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에 농가 출입 차량이 축산 차량인지 일반 차량인지, 차량 하차 인원과 농가 내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하는 센서도 구상했다. 

구제역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현장 진단키트도 개발했다. 유 단장은 "기존 감염 여부가 의심되는 돼지는 검역본부 관계자들이 현장 방문 후 돼지 시료를 직접 채취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며 "그렇기에 돼지 타액만으로 간편하게 현장에서 구제역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키트를 구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진단키트는 유전자·PCR 검사 동시 진행이 가능하다. 또한 타액을 묻힌 튜브를 리더기에 넣으면 검사 결과가 검역본부로 즉시 공유돼, 혹여나 발생할 개인의 은폐 가능성도 막을 수 있다. 

◆ "연구의 가치? 연구자들 특성 조화되는 것이 중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이 중요한 거지 가리키는 손가락은 중요하지 않아요."

ETRI가 왜 이런 연구를 하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유 단장이 강조한 말이다. 그는 "방법이 ICT든 아니든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은 분야를 초월한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유 단장은 물리 전공이다. 동료 연구원들도 처음 유 단장의 멧돼지 유인 연구 도전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결과물을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됐다는 후문이다. 

유 단장은 "연구 분야가 다방면인 사람과 한 분야만 파는 사람 등 가지각색의 연구원들이 존재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조화되는 것"이라며 "과학기술계가 서로를 존중하며 넓은 시야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ETRI SDF융합연구단의 ICT 기술을 활용한 멧돼지 포획 실험 CG 자료. <영상=ETR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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