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과학자들, 과기계 21대 총선 앞두고 국회에 당부
정책의 긴 호흡·과기이해·국익 위해 일하는 국회 등

"과학기술 정책은 정부를 초월해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긴 호흡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박원훈 KIST 전 원장)

"4차산업혁명의 변혁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 과학기술 이해가 절실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과학기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출연연이 협동하고 융합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의 관료적 통제 최소화 등을 돕는게 국회의 일이다. "(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4년간 국민의 뜻에 따라 법을 만들고, 나라의 살림살이에 필요한 예산을 결정하는 300명의 의원을 뽑는 총선. 15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과학기술인들에게 국회에 바라는 점을 들었다. 과학기술계는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전문가 목소리 경청', '협동 연구체제 구축'을 당부했다.
 
◆ "미래보고 일관성 있게 준비해달라"
 

우리나라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과학기술 정책도 함께 바뀌었다. 녹색기술(이명박 정권), 창조경제(박근혜 정권) 등으로 과학기술정책 쏠림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많은 과기계 관계자들이 지난 20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일관성 있는, 긴 호흡의 과학기술정책'을 강조했다.
 
박원훈 전 KIST 원장은 "정책은 짜임새 있고 일관성 있어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정책이 바뀌다 보니 과학기술 장기계획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기술 정책은 정부를 초월해야 한다. 당장 이번 임기에 연구성과가 나오는게 아니라 그다음 다음 정권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라며 대통령 임기에 맞춰 전체를 흔들지 말고 미국과 같이 특정프로그램으로 특성을 남기는 방향을 제안했다.
 
이어 그는 "총선 때마다 과학기술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올해는 특히 더 심각한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국회 미래연구원 등을 통해 과학기술 장기계획을 세워 정부에 건의하고 국회가 바뀌어도 기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윤정선 KISTI 책임연구원도 긴 호흡의 연구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경제 논리가 아닌 인류 기여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는 기본기가 탄탄해야 필요할 때 위력을 발휘한다. 선택과 집중은 개발도상국 시절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과학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면서 "시급한 분야에 연구비를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유행에 따라 연구비 투자의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지 않도록 하여 과학자들이 긴 호흡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개인과 소속정당의 이익이 아닌, 국민과 국익을 위해 일하는 국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견제가 필요하겠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국회 차원에서 화합하면서 한목소리를 내고 견인차 구실을 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출연연의 J 박사도 "과학기술이 더는 표를 얻기 위한 그때뿐인 정치의 공약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지금과 같은 국가재난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그 중요도가 더 커질 것이다.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적이며 일관성 있는 정책만이 불확실성이 더 커진 미래를 과학기술로 대비할 수 있다"면서 "현장의 과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꾸준히 기울이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최우선으로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연구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균 원자력연 박사이자 AI프렌즈 대표는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과거 어려운 시기가 있었던 AI(인공지능)을 예로들며 " 과학기술이 유행에 따르기보단 탄탄한 기초를 쌓을 수 있는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국회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국가 과학기술 방향을 결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전문가 활동에 신뢰하는 국민들···"전문가 목소리 귀 기울여라"
 
코로나19로 전문가 중심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미국에서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보건원(NIH)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이는 국회가 되어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경제발전은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4차산업혁명의 변혁에도 빨리 발맞춰야 하지만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국회가 전문가 목소리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과 최고과학전문가를 모셔 과학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 마련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정흥채 생명연 박사도 공부하는 국회를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를 통해 전문가 의견과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법제도 도입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미래를 생각하는 국회, 공부하는 국회가 되었으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기술에 대한 정치적 접근이나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지하게 논의하는 국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유용균 원자력연 박사는 과학정책에 전문가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구과제 심사에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과정과 과학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평가기준을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과학기술은 정쟁 대상이 아닌 전문가들의 참여로 인해 이성적인 정책 결정이 수행돼야 한다"면서 "기술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과학기술 정책에 참여해야 한다. 제도라는게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특히 AI의 경우, 과학기술 정책에 허황된 목표가 아닌 먼 미래를 보고 탄탄한 과학기술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참여와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소장은 "정부도 국회도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졸속연구와 쓸데없는 과학 행정을 양성한다"며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현장의 의견에 귀 기울여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그는 연구의 생명인 자율권을 보장해달라는 제안도 했다. 그는 "최근 주 52시간 근무 등 지금은 연구현장을 간섭하는 법들이 너무 많다"며 "연구를 마음껏 못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연구소에 자율권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덕의 한 과학자도 "과학계가 다수 있는 대덕 특구 후보자들이라도 과학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입법을 내야 한다"며 "거기에 필요한 내용을 채우기 위해 토론, 설문조사 등 구체적인 공약 이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 과기계, 국가 시급 사안 긴급 투입가능 여건 만들어주길

과학기술계각 공공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마련이 시급하다는 제안도 있었다. 이는 출연연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같은 전시상황에 조직을 빠르게 꾸리고 운영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우일 회장은 "출연연이 중소기업을 돕고 산업기술도 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는 대학도 기업도 따라갈 수 없다"며 "공공연구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출연연의 오랜 문제였던 PBS(연구과제중심제도)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익명의 S박사도 "연구단체가 힘을 받도록 정치계에서는 공공재로서 연구(▲기후 변화 ▲미세먼지 ▲감염병 ▲ 소외 대상을 위한 공공기술 개발 등)가 자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연구환경 조성을 위한 입법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성우 공공연구노조위원장도 현장의 연구원이 공공연구를 바탕으로 기관과 관계없이 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데 국회가 힘써주길 요청했다.
 
그는 "PBS 제도하에서는 자기 과제 확보가 우선이기 때문에 (코로나19와 같은) 급한 국가적 의제가 있어도 과학자들이 쉽게 나서지 못한다. PBS제도 완화를 위해 출연연 R&R을 마련했지만 결국 기관 간 경쟁을 부추겼다. 경쟁은 연구현장의 힘을 오히려 소진하고 있다"며 "연구원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이끌 4차산업혁명과 지난해 쟁점이 됐던 소재·부품·장비 등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융합연구가 필요하다. 협동과 융합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이 국회의 일"이라며 "정부의 관료적 통제를 최소화하도록 국회가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용환 따뜻한과학마을 벽돌한장 대표도 과기계의 숙원과제인 PBS와 정년환원문제를 거론하며 "두 제도가 그동안 말은 많았지만, 실질적 개선은 없었다. 연구원 사기를 충전해줄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을 보완해 연구원들이 장기적으로 국가를 위해 연구할 수 있게끔 해달라"며 "이번 국회에서는 실용성 있게 제도적으로 법이 개정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장 역시 PBS와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등 과기계 오랜 이슈의 우선순위를 정해 한가지라도 결론을 내는데 함께 동참해주길 바라는 바람을 전했다.

김인호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은 "코로나 같은 전쟁 수준의 초대형 현안 발생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또는 한국연구재단 중심으로 과학기술 전시조직을 구성해 과학기술 인력·예산을 한시적으로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제도마련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이 외에도 ▲가치 중립적인 과학기술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와 ▲합리성에 기반한 입법 활동 ▲해묵은 이슈 해결 ▲과학에 대한 이해 향상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한편, 또 다른 연구자는 "상황이 어쨌든지 간에 과학기술자들이 국민을 위한 적정기술이나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정기술 개발보다는 자기 안위와 영달을 위한 연구에 매진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과학계가 자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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