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창닫기

'각자 도생' 무한 경쟁으로 연구현장 '지리멸렬'

[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③]코로나로 드러난 과학계 민낯
생존 위한 과제 수주 최고···협력은 먼나라 이야기
대덕넷 제안 3 - 과학기술계, 경쟁 아닌 협력 시스템으로 대전환해야
우리나라 감염병 대응 과학기술계 대표로 꼽히는 연구팀은? 한국화학연구원 신종 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다. 두 연구팀 모두 감염병 연구를 위한 최적의 시설을 갖췄다. 화학연은 생물안전등급-3(BL3) 실험실과 의약정보플랫폼을 구축했다. 생명연은 국가영장류센터와 동물이용 생물안전등급-3(ABL3) 실험실, 기능성바이오소재연구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두 연구소에 연구인프라를 비롯한 R&D예산(2010~2019년)에 약 1000억원이 투입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며 어느 곳보다 두 기관의 역할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각계에서는 두 기관의 연합전선 내지는 협력을 기대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두 기관 사이 협력은 커녕 보이지 않는(어쩌면 확연하게 드러난) 경쟁 불꽃이 튀었다. 서로 상대를 평가절하하는 민낯이 표출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샘플 요청단계부터 어느 쪽이 샘플을 먼저 받는지 신경전이 펼쳐졌다. 치료제 및 백신 후보물질을 발굴하려는 같은 목표 아래 두 기관은 질병관리본부에 별도로 코로나19 샘플을 요청했다.

바이러스 샘플은 CEVI융합연구단이 먼저 받았다. 이 연구단은 바이러스 배양을 시작하며 코로나19 대응에 주도권을 잡은 듯 보였다. CEVI융합연구단은 메르스 연구시 개발한 치료제 후보물질과 연구용 실험쥐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CEVI 융합연구단 관계자는 "코로나19를 연구할 수 있는 인력은 우리뿐이다. 실험할 수 있는 마우스 모델이 아직 없다. 동물 실험에 적합한 마우스 모델 개발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진행 과정을 밝힌 바 있다.

생명연 감염병연구센터는 CEVI융합연구단보다 일주일 늦게 샘플을 받았다. 배양부터 실험을 마치기까지는 감염병연구센터가 늦은 듯 보였다. 하지만 ABL3실험실을 보유한 감염병연구센터는 맞불 작전으로 나섰다. 감염병연구센터 관계자는 "메르스 시기 개발한 진단, 치료제 후보물질들을 직접 바이러스를 활용해 실험하고 곧장 동물 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는 영장류까지 실험이 곧바로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배양은 늦었지만 동물실험까지 곧장 가능해 먼저 결과를 낼 수 있고 자신했다.

이들의 경쟁구도는 융합연구단 선정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미래선도형연구단으로 바이러스 감염병 대응 융합연구단을 선정키로 했다. 융합연구단은 일몰제 연구단으로 연구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합류해 연구를 진행한다. 기존에 없던 연구풍토로 연구자 간 협력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취지에서다. 연구예산도 연간 100억원 규모로 연구자들의 관심이 높았다. 

화학연 주관 CEVI융합연구단과 생명연 주관 연구단이 융합연구단 선정을 두고 맞붙었다. 서로의 강점과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모든 과제 선정이 그렇듯이)상대를 이겨야만 살아남는 경쟁 구도로 연구단 선정이 진행됐다. 9개의 출연연과 기업이 참여한 CEVI융합연구단이 선정되며 일단락됐다. 감염병연구센터는 2010년부터 전북분원 내에 국가영장류센터를 건립하며 인프라와 인력을 갖췄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정부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차원에서 두 연구단의 경쟁구도를 협력으로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같은 생존 경쟁은 연구단간 뿐만 아니라 기관간, 연구부서간, 연구자간에 만연하다. 경쟁 중심의 과제 선정으로 협력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는 문화다.

실제 두 기관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출연연간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각자 강점만 설명할 뿐이었다. 왜 CEVI연구단에 생명연이 없냐는 한 기관장의 질문에 책임자가 얼버무려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팬데믹 사태에도 두 기관은 각자도생중이다.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는 수십년간 켜켜이 경쟁구도로 쌓여 만들어진 시스템과 문화에서 누가 누굴 뭐라할 수 없다고 말한다. 

◆ "과기계 문화는 질시, 반목, 투서로 얼룩진 문화"

연구자들은 과학기술계를 두고 과제수주 경쟁판이라고 정의한다. 연구비 수주를 위해 인건비 확보를 위해 부처의 과제 공고를 주목한다. 정부출연금 비중이 그나마 높은 기관의 연구자는 덜하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내부 연구자 간에도 아이디어가 노출될까봐 서로 만나도 일상만 이야기 하지 연구아이디어를 논하지 않는다. 선배가 후배 아이디어를 갈취하는 사례도 적잖게 들린다. 후배가 선배를, 선배가 후배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문화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과제 수주를 잘하는 연구자가 능력자로 대접받는 분위기다. 과제는 보통 2~3년. 평가받고 준비하고 보고하는 과정이 있으니 거의 매년 과제 경쟁에 뛰어든다.

경쟁문화가 오랫동안 반복되며 협력은 먼 이야기가 되고 있다. 질시, 반목, 투서가 과학계의 문화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출연연 책임연구자는 "기재부에서 반도체 후속으로 하이리스크하이리턴(HRHR) 미래 먹거리 마련에 900억원을 지원할 테니 기획하라고 한 적이 있다. 양자컴퓨팅, 수소연구단을 구성해 기획서를 썼는데 서로 주관기관을 하겠다고 예산 배분으로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면서 "협력이 중요한 오늘날 과학기술 분야에서 지금의 과학계에 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탄식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연구자 10명 중 과제 준다는데 싫다는 연구자는 없다. 당장 과제가 없으면 연구도 할 수 없는 구조인데 누가 마다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들에게 사회문제 해결, 사명감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경쟁 시스템 구조가 지속되며 연구자들도 자연스럽게 물들고 있다. 연구벌레는 온데간데 없고 과제충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구자들의 과제수주 매몰현상은 국민이 기대하는 과학계의 성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배경이다. 연구자들이 진정한 문제해결을 위해 연구활동을 한다기 보다 과제 수주와 다음 과제 수주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이 굳어진지 오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1000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됐어도 제품화까지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기사 원문보기>

◆ 25년간 누더기 된 PBS, 해결책은?

정부는 그동안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R&R)을 재정립하고 정부출연금 비중을 높이겠다고 발표하며 PBS를 손봐 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고민과 현장의 의견이 배제되며 PBS는 누더기가 됐다는 목소리가 다수다. 연구자들이 느끼는 변화도 없는 게 사실이다. 억대 과제부터 수백억 과제 모두 여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 출연연 소속 B 연구원은 PBS가 여전히 출연연끼리, 연구기관 내에서 '불협화음'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과제를 수주하지 못하면 인건비조차 확보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과제 수주로 '돈 따오는 사람이 출세하는 시스템'이다. 아이디어 싸움이기에 같은 기관 내에서도 의견교류가 없다. 흔히 밥그릇 싸움하느라 자신들이 만든 구역으로는 들어오지 말라는 '영역표시' 사례도 발생한다. 연구현장의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한 부서가 Z라는 아이템으로 과제 기획을 하려는데 타 부서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를 막는 일도 있다. 또 열심히 공동 기획했더니 부서 인건비가 부족하다는 명목으로 후반에 끼워주지 않는 문제가 실제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적 평가 시스템도 문제로 꼽았다. 예를 들어 논문은 전문가 3명이 협력해 쓰는 것이 이득이지만 실적은 정량적 저자 수로 나누기 때문에 혼자 쓰는 것이 이득이 된다. B 연구원이 말하는 실적 평가 시스템은 4명의 저자가 논문 한 편을 쓰면 주저자는 2/(4+1) = 0.4점, 공동저자는 1/(4+1)=0.2 점식으로 부여받는다. 기관 실적과 연구재단 등의 과제평가 기준도 비슷하다.

본인 부서 과제가 아니면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인건비를 채우기 위한 연구가 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연구원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성과쪼개기도 만연한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연구성과가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연구현장에 최근 희망적인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연구과제의 개인화 대신 팀제 운영을 도입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연구개발 방향을 분명히 하며 팀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변화는 실행에서 시작된다. 첫발을 내디딘 표준연의 사례에서 변화의 싹이 움틀 수 있기를 바란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 대덕넷의 제안 ③ – 과학기술계, 경쟁아닌 협력의 시스템으로 대전환

   <3대 세부 제안>
  1. 개인평가 지양하고 팀단위로 평가체제 전환.
  2. PBS 단계적 폐지하고, 새로운 미래형 협력시스템으로 전환.
  3. 국가 비상시 범출연연(과기원 포함) 주도 공동대응 협력체 가동.

연구현장에서는 연구문화로 반목과 질시의 경쟁이 만연하다고 꼬집는다. 생존을 위한 과제 수주에 매몰되며 연구벌레는 사라지고 과제충만 늘고 있다고 탄식한다.<이미지= 이미지투데이>연구현장에서는 연구문화로 반목과 질시의 경쟁이 만연하다고 꼬집는다. 생존을 위한 과제 수주에 매몰되며 연구벌레는 사라지고 과제충만 늘고 있다고 탄식한다.<이미지= 이미지투데이>
길애경·이유진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독자의견
로그인 독자분들의 소중한 의견은 과학과 국민을 잇는 밑거름이 됩니다
0/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