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의학 이야기이지만 소설처럼 재미있는 논픽션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자. '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자. '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처음에는 제목에 끌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과연 남자들 중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왜 그럴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먼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책을 쓴 올리버 색스는 누구인가? 그는 인간의 뇌 연구에 매진하며 희귀 신경질환 환자들의 삶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해온 의사이다. 환자들의 치료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비롯한 '화성의 인류학자', '소생'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다. 20세기 최고의 임상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의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같이 펼쳐보자. 이 책은 미국에서 1985년 출간 이래 전 세계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한 방송에서 책 소개가 있은 후 많은 판매를 보이고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4부, 24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1부, 2부에서는 주로 뇌(특히 대뇌우반구) 기능의 결핍과 과잉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된다. 3부, 4부에서는 지적 장애를 지닌 이들에게 발견되는 발작적 회상, 변형된 지각, 비범한 정신적 자질 등과 같은 현상적 징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 에피소드 중간마다 '뒷이야기'라는 코너를 넣어 저자가 치료과정에서 만난 같은 증상의 다른 환자들에 대한 경험도 들려준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 반열에 오른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한 환자들의 '독특하고 재미있고 기적같은' 임상기록 때문으로 해석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질환 환자들의 임상기록을 소설형식을 빌어 풀어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왜 의사들이 쓴 책은 이렇게 재미있을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기이한 스토리 때문일까? 의사들이 글을 잘 써서 일까?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훔쳤고,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작가의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를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첫 사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시각인식 불능증 환자의 이야기다. 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기억력, 유머감각을 가진 음악교사였다. 하지만 행복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변별하는 능력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다음 인용문구와 같은 상황에 다다른다.

그는 표지에서 시선을 떼고 허공을 보면서(본다는 말이 맞기나 한 걸까?) 사진에 있지도 않은 것들을 꾸며대며 말하고 있었다. 사진에 있지도 않은 강, 테라스, 색색의 파라솔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p 31)

이 환자의 경우, 음악교사인 만큼 음악이 시각을 대신한다. 처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욱 적극적으로 음악에 기대어 사는 것이 권고됨." 실제 그는 질병의 점진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

'길 잃은 뱃사람'에 등장하는 환자는 스무살 이전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그 뒤의 시간들은 그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증상은 알코올로 인한 유두체 신경세포 파괴에 중증 코르사코프 증후군. 현재의 기억을 단 1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자연이나 예술에 몰입하는 순간, 더 할 나위없이 안정을 되찾는다. 그에게는 요양소의 정원가꾸는 일이 권고되었다.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의 주인공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하키와 승마를 즐기던 27세 여성이다. 쓸개절제술을 받기 위해 항생제를 투여받은 다음날, 갑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진단결과는 급성 다발신경염으로 인한 고유감각 상실이다. 크리스티너는 "팔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엉뚱한 곳에 가 있어요. 고유감각이라는 것은 몸에 달린 눈과 같은 것이어서 몸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건가 보군요. 저처럼 그것이 없어져버리면 몸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겠지요? 몸 속의 눈이 보지 못하면 몸이 자신을 보지 못할 테니까요. 그렇지요. 선생님? 그러니 이제부터는 몸에 달린 눈으로 봐야겠네요. 맞나요?"라고 증상을 얘기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왼쪽을 보지 못하는 여자, 밤마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남자, 문학·예술·수학에서 놀라운 천재성을 보이는 저능아, 갑자기 성적 충동에 사로잡힌 90세 할머니, 바흐 전곡을 외우는 백치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올리버 색스는 지난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몇 달 전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시한부 인생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의 삶의 막바지 목소리를 들어보자.

"저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걸 받았고 돌려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저는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고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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