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 미스 미국과 한국 원자력

2020 미스 아메리카 실험복 입은 과학도 우승
한국 역대 과기부 장관 '탈원전 스톱' 대통령에 건의
게임 체인저란 공통점···과학은 시대 변화의 주역
미스 아메리카 뉴스와 한국 원자력.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과학과 관련이 있고 '게임 체인저'란 공통 의미를 지닌다. <사진=대덕넷 DB>미스 아메리카 뉴스와 한국 원자력.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과학과 관련이 있고 '게임 체인저'란 공통 의미를 지닌다. <사진=대덕넷 DB>

지난주 후반 색다른 과학 뉴스 두 개가 전해졌다. 하나는 미인대회에서 기존의 수영복이 아닌 실험복을 입은 여성이 우승했다는 보도이다. 다른 하나는 역대 과기부 장관들이 한목소리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소식이다. 둘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과학과 관련이 있고, '게임 체인저'란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미스 아메리카 뉴스부터 보자. 기존의 미인대회는 수영복으로 상징된다. 몸매를 잘 드러내는 수영복이 경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여성의 상품화란 지적이 그동안 숱하게 지적됐지만 미인대회의 공식처럼 변하지 않고 시행돼 왔다. 올해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코리아 등의 대회도 기존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미스 아메리카는 달랐다. 지난해 수영복 심사를 없애겠다는 미스 아메리카 2.0 선언에 따라 몸매가 아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치열한 경합을 거쳐 실험복을 입고 무대에서 화학실험을 선보인 버지니아 출신 생화학도 카밀 슈라이어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뉴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미인대회의 판을 바꾼 게임 체인저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미인 대회가 미모만이 유일 기준이 아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 활동과 지위 향상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다양한 전문직 여성들이 미인대회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알릴 것으로 보인다. 그 변화의 시발점이 과학이라는 점에서 과학계는 남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뉴스인 역대 과기부 장관들의 탈원전 정책 궤도 수정 요구도 되새김질할 가치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 대한 사실상의 '반기'로도 간주할 수 있는 일이다. 과학계는 그동안 힘 가진 사람들에 더 없이 순종적이었다. 불만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았고, 연구비란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그러던 순둥이 과학계가 집단으로 반발한 상징성을 갖는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탈원전을 비롯해 역대 정부의 과학정책에 간혹 일부에서 이의를 제기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역대 수장들이 대거 나선 것은 대한민국 출범 이래 처음이다.

한국의 과학계는 영혼이 없는 집단의 대표 격으로도 간주된다. 과학이란 가치 중립적인 연구를 하는 특성상 자기 생각을 갖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우리의 과학 수용 과정이 캐치업 방식으로 서구에서 이미 완성된 것을 수용하는 수동적 자세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이런 특성을 과학사 전공의 박성래 김영식 교수는 한 마디로 '중인의식'(中人意識)이라고 규정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되고 지배층으로부터 때로는 멸시를 당해도 비교적 안정된 지위와 사회적 대우란 떡고물에 만족하고 타협한다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고 큰 비전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일은 충실히 이행하되 그 이외에는 내 문제가 아니라는 종속성이 한국 과학자들의 독특한 자세라는 것이다.

김영식 교수는 1988년에 쓴 '한국 과학의 특성과 반성'이란 글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관심이 자기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이나 활동에만 좁게 한정되는 일이 많은 것은 중인의식과 같은 태도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전체 사회와 국가의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하며, 이런 문제들에 기여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는 경우도 드물다. 실제로 한국 과학기술자들이 자기 분야의 전문 과학기술 분야 활동 이외 여타의 것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이나 거리감은 아주 심하다. 게다가 과학기술 분야의 과제와 작업들의 계획 재정 관리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기도 한다."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도 김 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특성으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비과학적이란 숱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주류로부터 도전을 받아오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역대 장관들의 반원전 정책 '중단' 요구는 과학계가 더이상 종속적 존재임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물론 이 일로 과학자의 중인의식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인에서 의사결정권자로 변화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하겠다.

서구에서 과학은 역사의 견인차였다. 영국의 산업혁명, 미국의 대량 생산 혁명, 현재의 AI 혁명 등에 있어 과학은 중심축이다. 아인슈타인이나 바네바 부시, 칼 세이건 등등의 과학자들은 과학계의 리더를 넘어 시대정신의 표상으로 리더 역할을 해 왔다. 과학이 정치 종속적이 아니라 파트너였고, 때로는 리드를 해온 것이다.

한국의 발전에도 과학은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1960년대 1백 달러 소득에서 현재의 3만 달러에 이르는 과정은 과학의 시대였다. 앞으로 AI 시대도 과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한국 과학자들이 중인의식을 깨부수고 역사의 견인차로 거듭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무리 시점이다. 새해에는 과학계가 무력감을 이겨내고 환골탈태해 사회를 이끄는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석봉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독자의견
로그인 독자분들의 소중한 의견은 과학과 국민을 잇는 밑거름이 됩니다
0/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