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접목해 사고·고장 예측, 국방·안전에 응용
ETRI, 원자력연, 기계연, KIST, 생명연 등 활발
"AI 국가전략, 구체성 떨어지고 솔깃한 내용만 종합"

사람처럼 생각하면서도 24시간 쉬지 않는 인공지능(AI)은 어떤 미래를 불러올까. 먼 미래까지도 아니고, 가까운 미래에는 수천만 건이 넘는 사고 시나리오를 수 시간 내에 분석해 중대 사고를 사전 예측하거나 사고 발생 시 최적의 사고 대응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인간 뇌 구조를 모방한 반도체 칩은 저전력으로도 복잡한 연산, 추론, 학습을 하며 미래 사회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AI 연구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고 예측, 사고 대응, 지능형 반도체, 단백질 구조 분석, 설비 고장 확인, 자율군집 주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접목되고 있다. AI 연구활동의 흐름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가장 활발하다.

◆ ETRI·KIST, AI 활용한 지능형 반도체 연구 진행

ETRI는 올 7월 연구 인력 1800여 명 중 450명을 AI 연구소로 투입해 연구 역량을 결집시켰다. AI 기초부터 응용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음성·언어·시각지능, 빅데이터 처리는 물론 지능형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지능형 반도체는 인간 뇌 구조를 모방한 반도체 칩으로 저전력으로도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또 AI 알고리즘과 시스템을 활용해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 등도 개발 중이다. 

이윤근 ETRI AI 연구소장은 "연구소에서는 AI 핵심 알고리즘부터 시스템, 인프라, 서비스 개발까지 다룬다고 보면 된다"며 "AI가 기존에는 각 분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ETRI는 조직 개편을 통해 기초부터 응용까지의 AI 모든 분야를 합쳐 큰 성과를 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KIST는 차세대반도체연구소에서 자가 학습능력을 갖는 신경망 모사 반도체 칩 개발을 위해 서울대, POSTECH(포항공대), KAIST,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국민대, UC얼바인과 협력을 진행 중이다. 미래 정보, 에너지 분야의 핵심 전자기술 구현에 필요한 박막형 전자재료와 소자 설계를 하고 있다. 공정, 분석을 위한 원천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 

◆ AI 테스크포스팀 결성···"원자력 사고 예측 및 대응, 폐기물 AI로 대체 목표"

원자력연은 AI를 연구 분야에 응용하기 위한 테스크포스팀(TFT)를 별도로 꾸렸다. 올 하반기부터 지능형컴퓨팅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이달 초 AI 전문 인력 5명을 채용했다. 원자력 분야 안전성 향상을 목표로 하면서도 연구원에 있는 AI 인력을 모아 미래 역량 결집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다. 원자력연은 사고 예측, 대응은 물론 폐기물 처리까지 AI로 대체할 계획이다.   

원자력연 지능형컴퓨팅 테스크포스팀은 지난 2016년부터 원자력 분야에서 나온 논문을 전수 조사한 결과 '디지털 트윈' 분야가 가장 많다. 디지털 트윈은 물리적인 사물과 컴퓨터에 동일하게 표현되는 가상 모델이다. 원자로 운전을 가상화해 모의실험을 함으로써 실제 자산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분야다. 원자력연도 사고를 가상화하고 모의실험해 사전 예측도를 높여갈 예정이다. 

TF팀장 유용균 원자력연 박사는 "AI를 원자력 분야에 접목하면 원자로 운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상 징후를 사전 예측할 수 있다"며 "연구용 원자로, 입자 가속기 등 다양한 시설에서 나오는 다량의 운전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면 인간이 몰랐던 규칙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원자력 분야에 필요한 AI 핵심 연구를 하고, 연구원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일들을 서포트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 기계연, AI로 국방·안전 등 공공 분야 기여
 

AI 기반 대피로 안내 시스템. <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AI 기반 대피로 안내 시스템. <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인공지능(AI)을 통한 기계 이상 감지 모습. <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인공지능(AI)을 통한 기계 이상 감지 모습. <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기계연은 AI 연구를 공공 분야에 접목하고 있다. 특히 국방, 안전, 산업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 선경호 시스템다이나믹스연구실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운전 중인 기계설비를 영상 촬영한 후 AI가 자율적으로 기계의 고장 여부를 진단하는 머신 비전 기술을 개발했다. 딥러닝 알고리즘인 '합성곱신경망'(CNN)을 이용해 기계 장비의 가동 영상을 학습해 기계 장비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기계연 스마트산업기계연구실은 공군 활주로 제설 장비를 무인화하기 위해 특수임무 차량의 원격 운용과 자율군지주행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2022년 실증을 목표로 원거리 실시간 조작과 강설 환경 등 극한 조건에서 사용이 가능한 센서 융합과 이를 이용한 자율주행 장애물 대응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기계연 인공지능기계연구실은 최근 개발한 AI 딥러닝 모델을 이용한 화재 대피 안내 시스템을 소개했다. 이 기술은 지하철 역사 내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AI가 안전한 방향으로 승객을 안내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이용하면 지하철 역사 내부에 설치된 30여 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온도와 일산화탄소, 연기농도 등에 따라 화재 위험성을 평가하고 최적의 대피로를 선정해 방향을 표시한다. 

한형석 기계연 책임연구원은 "지하철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핵심은 승객이 골든타임 내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이라며 "AI를 활용해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해 시민들의 안전한 삶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생명연은 AI를 활용해 단백질 구조 분석, 신약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에서는 바이오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진행 중이다.

핵융합연은 태양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핵융합' 반응을 인공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가상환경 구축을 AI로 활용할 계획이다.  

◆ 국가 인공지능 전략 발표에 현장 반응? "구체성 떨어져"

지난 17일 정부는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며 기업과 민간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는 조력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민간 데이터 개방과 과감한 규제혁신을 자신했지만, 연구 현장에선 기대 보다 우려가 적지 않은 분위기다.

한 기업의 K 인공지능연구소장은 "정부가 AI 반도체, 스마트공장, 바이오, 의료 등 산업 전반에 AI를 활용한다고 했는데, 원천기술이 모두 다르다"며 "이번 발표는 대중들이 솔깃할 만한 내용들만 모아 놓은 것 같다"고 일갈했다.

그는 "한국에서 AI를 쓰고, 딥러닝·머신러닝 같은 최신 기술을 활발히 다룬다는 모습을 외형적으로 보여줄 게 아니라 현장에 모자란 근원 기술부터 파악해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선경호 기계연 책임연구원은 "AI 연구 성패 여부는 데이터가 절반 이상 차지한다"며 "이번 AI 국가전략 발표에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확보하기 위한 기반 구축에 대한 방안이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선 책임연구원은 "연구할 때 국방, 에너지 분야 시설에 데이터를 달라고 요청하면, 보안 문제 때문에 공유 자체가 안 된다"며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식에 대한 구체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서인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AI 국가 전략이 지금이라도 발표돼서 다행"이라면서도 "국가 전략인데 한국 특색이 많이 부족하고, 글로벌한 컨셉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미국, 중국 등 AI 강국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방안이 없고,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민간 참여가 중요한데 민간 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중심으로 AI 전략을 이행한다고 하는데, '타다' 문제 하나도 해결을 못 하는 상황에서 실행력, 조정력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BH 전담 AI 비서관이라도 있어야 추진 동력이 생기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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