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석유 왕국 '후대 위한 길'이라며 원전 건설"
"기관명 개명되는 치욕도 겪어···희망 갖자"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은 지난 6일 "원자력연이 개명되는 치욕도 겪었지만 극복했다"며 "후배들이 좌절하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은 지난 6일 "원자력연이 개명되는 치욕도 겪었지만 극복했다"며 "후배들이 좌절하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석유 왕국에서 왜 원자력을 도입했겠습니까. 원자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필수입니다. 국가 생존의 문제예요."

황무지에서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일궈내는 데 일조한 원자력 석학 입가에서 기탄없는 비판이 이어졌다.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은 "21세기 미스터리 두 개가 있다"며 "하나는 석유 왕국이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력을 제일 잘하는 한국이 탈원전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선 처음으로 대형 상용 원자로, 연구용 원자로, 중소형 원자로를 수출할 수 있는 국가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수출하며 200억 달러 규모 계약을 성사시켰고, 2010년 8월에는 요르단 원자력위원회가 발주한 연구용 원자로 건설사업에서 1억 60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는 2015년 3월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이 독자 개발한 중소형 원자로 'SMART' 수출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장인순 소장은 "UAE는 한국형 원전을 도입하는 배경으로 100년 후를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며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군사 안보를 지키기 위해 원자력을 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3년간 한국에 인력 50여 명을 파견해 기술을 전수 받았다. SMART는 피동안전계통(Passive Safety System)을 장착해 원자로 사고 시 전력 공급이나 운전원 개입 없이 원자로를 자동으로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이 장착돼 세계 곳곳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장 소장은 "SMART는 원자력 잠수함에도 실을 수 있는 기술"이라며 "디젤 엔진 잠수함은 연소를 위해 산소가 필요하고 소리도 많이 나지만, 원자력 잠수함은 소리도 없고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물도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 안보, 에너지 안보를 위해선 원자력밖에 없다"며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서도 원자력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원자력연 개명되는 치욕도 겪었지만 극복···후배들 좌절 말라"

장 소장은 원자력 자체가 굴곡의 역사를 지녔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소가 한국에너지연구소로 바뀔 때 연구원들 가슴은 쪼개지는 심정이었다"며 "원자력연구소가 이름도 못 가지던 시대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1959년 2월 설립된 한국원자력연구소는 20년만인 1978년 4월 첫 상용 원전 고리 1호기를 가동시켰다. 여러 풍파를 겪으며 1980년 12월 한국에너지연구소로 통합되기도 했지만, 1989년 12월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명칭을 환원한 바 있다. 

장 소장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라는 사람은 세상을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며 "멀리 보면 기후 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문제가 있고 가까이 보면 국가 생존이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과학은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며 "원자력 분야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가 활용되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도 커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그는 원자력계 후배들에게 "원자력은 우리 세대보다는 후대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믿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