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국제 협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 정밀도 성취
日 수출 규제로 변곡점···학습과 소통으로 전화위복해야

"한국의 반도체는 우리들의 도전과 세계적 역할 분담, 냉전 시대 미국의 세계 전략 아래 가능한 성취였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는 우리에게는 큰 위기이다. 사태 전개를 예의 주시하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도록 모두가 합심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관련 연구실적도 탁월하고 현장 경험도 풍부한 반도체 전문가인 박영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최근 그가 포함된 공부 모임에서 '일본의 공격과 한국 반도체의 위기'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의 발표와 참석자들의 코멘트를 통해 위기의 본질을 알아보고 대책을 고민해 본다.

<박영준 교수 발표>
 
반도체는 첨단 문명을 가능케 만든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매년 1.5배, 3년에 3배, 30년에 1000배, 60년에 100만배씩 용량이 커져왔다.
우리는 무어의 법칙에 몸을 실어 오늘날 세계 최고 생산국이 됐다.
그런데 최근 소재 제한에 따라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한계를 돌파하는 기업이 세계에 5개 가량 있다.
삼성 SK하이닉스 인텔 마이크론 TSMC 등이 그 주인공.
그런 가운데 선폭이 머리카락 두께의 100만분의 1인 10나노보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5나노 정도가 가능한 기업은 2, 3개에 불과하다.

이것이 가능하냐, 어렵냐에 따라 시장은 승패가 갈린다.
10나노 이하의 선폭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EUV이다. extreme ultraviolet의 약자.
극자외선으로 회로를 만들고, 이를 반도체로 만드는데 중요한 재료가 감광제이다.

이번에 수출 규제 품목으로 된 도쿄오카공업(東京應化工業)주식회사의 포토레지스트가 그것이다. 이 소재가 공급되지 않으면 대당 2000억원에 해당하는 ASML의 EUV용 반도체 장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20조원에 해당하는 신규 라인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삼성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선정한 비메모리 부분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 번 무너진 고객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도전은 이병철 회장의 결단으로 가능했다.
74세가 되던 시기에 엄청난 도전을 한다. 선진국이 되려면 20만개의 부품에 10년간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후발국이던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반도체를 택했다.
내외에서 온갖 반대가 있었지만,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사업보국이란 신념이 없으면 안 될 일이었다.

한국의 발전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급성장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하나의 대안이었다.
당시 일본에 비해 조악한 품질이었던 삼성 제품을 IBM과 인텔 등이 코치하며 구매해 줬다.
그런 지원이 있었기에 한국의 반도체가 가능했다.
지독한 노력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미국이 한국을 도왔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무어의 법칙이 멈추면 전세계 성장동력이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세계가 역할 분담을 하며 차세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장비는 ASML 등이 한다. 인류를 위한 개발이라고 생각하며 전세계가 힘을 합쳐 만들고 있다.
유럽 사람들도 그런 생각으로 만든다. 자신들 것이란 국수주의 시각이 없다.

소재는 일본이 강하다. 일본이 하기에 다른 나라에서 손을 안 대고 하도록 내버려뒀다. 
제조는 한국이 담당했다. 전세계적인 공급망 속에서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했고, 그것이 세계에서도 통용됐다.

반도체 공급망은 세계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공정한 룰이 절대적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세계 1, 2위인 삼성과 SK하이닉스가 한국에 있다고 가격 담합을 하면 바로 WTO에서 알고 제재가 들어온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일본이 소재 수출 규제를 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아픈 일이고, 세계적 공급망에도 미칠 타격이 크다.
어떤 파급효과가 나올 것인지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일본도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되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반도체에서 재료가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0%, 20%이다.
그런 가운데 EUV를 만드는데 필요한 감광제는 도쿄오카공업만이 한다.
이 회사가 제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모두가 치명타를 입는다.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를 시작했고, 이건희 회장이 세계 최고 회사를 만들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제 3의 도약을 꿈꾸며 시작한 것이 비메모리 부문이다.
여기에는 초정밀 감광제가 필요한데 그것의 공급이 막히게 된 것이다.
뼈아픈 일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팹에는 라인 하나에 20조원 이상 투자된다.
감가상각을 하면 5년간 연 4조원씩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투자를 회수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연 12조원 이상은 팔아야 한다.
칩당 12달러 수준으로 보면 한 달에 10만장, 1년에 100만장을 생산해야 한다.

웨이퍼 한 장에 1000개 칩이 만들어지고 칩 당 100억개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
한 달내 모든 요소가 완벽해야 가능한 게임이다.
원료가 부족해 한 달에 5만장이면 칩 하나에 24달러란 이야기다.
그러면 집에 가야 하는 비즈니스이다.

각종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나라가 세계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재료 하나로 크게 타격받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성장동력이 하나 꺽이는 셈이다.
갈수록 성장동력 마련이 어렵다. 미칠 영향은 상상이 힘들 정도이다.
국민 모두도 이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박00 박사: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취업한 첫 직장이 삼성전자이다. 1986년 3급 사원으로 기흥공장에 발령 받았다. 256KDRAM을 3교대로 만들었다. 여고 출신 생산직 사원들과 함께. 당시의 꿈은 IBM 납품이었고, 일본 반도체 회사인 NEC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사업보국 인재양성 합리추구란 삼성 사훈을 지금도 외우고 있다.

첫 반도체엔 60KDRAM을 만들 때는 여사원을 포함해 모두가 60km 행군을 했다고 들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세계 최고가 가능했다. 이들의 동상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경북대 전자공학과 30주년 행사가 있었다. 경북대 총장이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에 이런 행사가 있는지 몇명이나 알겠냐며. 이런 행사는 대통령이 참석했어야 한다는 이야기했다.

오늘날 세계 최고가 된 3요인을 꼽으라면 이병철 회장과 여고 출신 생산직 사원, 경북대 전자공학과라고 생각한다. 입학 당시 한 과 정원이 700명이었다. 30년간 집중해 인재를 양성했기에 오늘날의 IT 대국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00 박사: 경북대 전자공학과는 정말 대단한 학과이다. 특성화 대학으로 시작해 많을 때는 한 학년에 900명이 넘었다. 당시 연고대 보다 높은 성적을 가져야 입학이 됐다.

서울대와 KAIST가 연구실에서 근무했다면 경북대 전자공학과는 생산현장에서 일하며 연구실에서 나온 결과가 양산되는데 기여했다. 이들이 대량으로 배출돼 산업 현장으로 가면서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발돋움하게 됐다.

박영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공부 모임에서 '일본의 공격과 한국 반도체의 위기'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
박영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공부 모임에서 '일본의 공격과 한국 반도체의 위기'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
박영준 교수: 우리나라에 반도체 소재인 폴리머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많다. 그러나 국책연의 치명적 약점인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어려워서 극미세의 세상을 구현하지 못한다. 연구자들도 샐러리맨화하는 것은 문제이다. 프로로서의 문제 의식이 아쉽다.

최00 교수: 우리는 근대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근대란 관찰을 통해 고도의 정련된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시대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근대를 실현한 집단이 삼성이다. 관찰력과 집요함 등을 훈련시켜 사회에 보급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능력이 없으면 감각 쾌락 이념 신념 집단적 광기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자세히 보려면 객관성, 객관적 능력이 필요하다. 반도체를 하려면 고도의 관찰이 필요한데 단순히 하나의 산업이라기 보다 사회 전체의 수준을 가늠케 해준다고 하겠다.

조00 고문: 과거 한일간에 갈등이 있을 때 늘 미국이 뒤에 있으며 거중조정 했다. 그런데 트럼프 이후, 한국의 현 정권이후 한미간 거리가 멀어지며 지금은 그 존재감이 약하다. 이번 문제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이유의 하나이다.

정00 대표: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은 이번 일에 대해 각각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것이다. 제국은 자기주도적으로 움직인다. 우리도 그럴 수 있도록 사회전체적 인식 전환과 내부 단합에 기초한 전략이 필요하다.

한00교수: 지식인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우리 사회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서 전략적 차원의 논의가 이뤄질 때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00 박사: 건륭제가 자금성에 시계 전용 건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원리를 보기 보다 완상용에 그쳤다. 우리나라에 돌을 수집하는 사람이 많지만 돌을 분류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동양은 이것이 약하고,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반도체가 갖고 있는 특성과 우리 시스템이 갖고 있는 약점 등을 전반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속수무책으로 당황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최00 교수: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은 지식인들이 세를 결집하고 국가의 방향을 정했다. 중국에는 강유위, 당사동 등등이 그들이다.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 등등이 있다. 그에 비해 조선에는 개혁파의 무리가 너무 적었다. 사회 변혁의 주류가 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지식인들의 결집과 새로운 세계관의 정립이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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