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표준연 융합물성측정센터 극한연구팀, 압력만으로 얼음 제어 기술 개발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장치 개발···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게재 

상온에서 얼음을 만들 수 있는 극한연구팀의 기술은 많은 이들에게 화두가 됐다. 연구팀은 예상치 못한 뜨거운 호응이 반가우면서도 극한 연구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왼쪽부터 이윤희, 이근우, 이수형 책임연구원. <사진=박은희 기자>
상온에서 얼음을 만들 수 있는 극한연구팀의 기술은 많은 이들에게 화두가 됐다. 연구팀은 예상치 못한 뜨거운 호응이 반가우면서도 극한 연구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왼쪽부터 이윤희, 이근우, 이수형 책임연구원. <사진=박은희 기자>
"이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뜨아아(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해야 하나요?" "영화 속 냉동인간이 현실에서도 가능해질 수 있나요?"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네요."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산업응용측정본부 융합물성측정센터 극한연구팀은 물을 1만 기압 이상 압축해 얼음을 형성하는 기술에 성공했다. 

예상치 못한 호응에 "얼떨떨하다"는 이윤희, 이수형, 이근우 책임연구원을 만나 연구개발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윤희 박사는 "많은 사람이 측정기술 개발보다는 따뜻한 얼음에 관심을 가져주셨다"며 “흥미롭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일부에서는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연구는 초고압의 극한 연구로 향해 내디딘 첫걸음으로 앞으로도 연구의 성과나 가치를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수형 박사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 나온 연구결과고, 굉장히 고무적인 성취다.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연구 환경에서 이번과 같은 연구가 쉽지 않다"며 "이런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젊은 연구자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돼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근우 박사는 "대학원 전공이 전혀 다른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연구성과다. 융합 연구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며 "연구비 투자에 따른 조기 성과에 대한 압박이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를 믿고 연구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 왜 극한 연구인가?···'압력'으로 얼음 제어 

연구팀이 개발한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사진=박은희 기자>
연구팀이 개발한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사진=박은희 기자>
연구팀은 동적 초고압의 극한 환경을 임의로 구현하고 그 안에서 얼음이 온도에 구애받지 않고 크기나 형태, 성장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데 집중했다. 

이근우 박사는 "기존의 일반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초고압의 환경에서는 새로운 물성 및 현상을 발견할 확률이 높다"며 "3000 K에서 절대 영도로 내려도 원자 두 개가 근접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압력을 주면 원자 반경보다 더 가까이 원자끼리 붙게 할 수 있으며, 새로운 물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윤희 박사도 "초고온, 극저온, 초고압 등 극한 환경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 발견이 많아지고 있다. 21세기 노벨물리학상 17건은 모두 극한 연구에서 배출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물을 1만 기압 이상 압축해 얼음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압력 조건을 제어해 3차원 얼음이 2차원 형상으로 바뀜을 관찰하고 형상 변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는 바이오·식품·의료·항공우주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면, 일반 대기압에서 육류를 냉동시키면 바늘처럼 뾰족한 육각형 얼음 결정이 발생해 세포와 조직이 손상된다.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의 육질과 맛이 떨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고압에서 냉동시키면 뾰족하지 않은 다른 형태의 얼음 결정이 생겨 육질을 보호할 수 있다. 

​또 화성에서는 탐사 활동을 위해 방사선과 가혹한 온도를 견디는 얼음집이 제시된 바 있으나, 이는 지구나 외계 행성의 극한 환경에 존재하는 물 또는 얼음의 형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해 얼음의 다양한 형태와 성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수형 박사는 "자연에서 관찰되는 얼음은 육각판, 기둥, 뿔 등 만 가지 이상의 결정을 갖는다. 다양한 형태의 얼음 결정은 산업적 활용도 뛰어나다"며 "얼음 결정을 온도가 아닌 압력으로 제어하면 기존 얼음이 가졌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국제 수준 독보적 측정 기술 확보···"전공도 바꾸게 한다"

재료공학이 전공인 이윤희 박사는 이번 측정 장비 개발을 위해 고압 물리를 별도로 공부했다. 이 박사가 측정 장비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재료공학이 전공인 이윤희 박사는 이번 측정 장비 개발을 위해 고압 물리를 별도로 공부했다. 이 박사가 측정 장비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연구팀은 초당 대기압의 500만 배까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a real-time dynamic-diamond anvil cell)' 장치를 독자적 기술로 개발했다. 

초고압 환경을 구현하는 다이아몬드 앤빌셀에 실시간 구동제어, 분자 진동 측정기술 등을 동기화해 접목함으로써 물질의 압력, 부피, 영상, 분자 구조 정보까지 동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확보한 것이다.

이수형 박사는 "물질이 형성되는 초고온, 초고압에서는 원자의 움직임이 빠르므로, 극한 환경에서 물질의 형성 과정을 측정하는 장비개발이 필요했다"며 "이번 기술은 압력을 빠르게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므로, 물 분자의 결정화 과정을 상세히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고압 측정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이윤희 박사는 전공인 재료공학뿐만 아니라 고압 물리까지 공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분명히 같은 용어를 이야기하는데도, 깊이 들어가면 물리를 전공한 다른 두 박사의 말을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생기기에 고압 물리를 새롭게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도 유사 장치가 있으나 압력, 부피 등의 동시 측정이 불가능하다"며 "우리 연구팀은 초고압의 극한 연구를 위해 측정 장치의 개념을 정하고 현실화했다. 동시 측정이 가능한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한 만큼 물 이외에도 다른 물질의 상변화 및 상형성 과정을 측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공동 주저자로 참여했던 김용재 박사(전 표준연 박사후연구원)도 재료공학 전공에서 고압 물리로 연구주제를 전환했다. 3년간 치열하게 연구에 몰두한 끝에 초고압 극한 분야에서 이번 연구성과를 비롯한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획득, 현재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로 이직해 초고압 쇼크(high pressure shock)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근우 박사는 "김용재, 이윤희 박사와 같이 공학 전공에서 물리와 같은 이학 연구로 전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잘 견디리라 생각했다. 고압 물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시작하는 단계다. 우리가 좋은 기술을 갖고 있으면 극한 연구 분야에서 앞장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함께 연구를 이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 "남들이 못하는, 감히 시도하지 않는 연구에 도전" 

연구팀은 융합연구로 R&D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에 도전에 나갈 예정이다. <사진=박은희 기자>
연구팀은 융합연구로 R&D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에 도전에 나갈 예정이다. <사진=박은희 기자>
연구팀은 융합연구로 R&D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에 도전할 예정이다.

​연구팀이 지난 2015년 극한 연구를 위해 뭉친 이후 매년 연구 성과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전공도 다르고 연구 분야도 달랐던 이들의 연구가 지속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세 박사 모두 '융합연구'의 강점을 강조했다.

​다른 분야의 전공을 극한 연구라는 공통점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팀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함께 많은 토론 시간을 갖는다. 

​이근우 박사는 "융합연구가 제대로 되려면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서로의 기술적 지원과 협력은 물론이고, 같은 대상에 다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창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한다.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시간에 비례해 그만큼 좋은 성과도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형 박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믿고 의지하기에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파악하고 해결하려 한다. 또 옆 사람이 잘하면 나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선의의 경쟁도 펼쳐 함께 발전해 나간다"고 말했다. 

​이윤희 박사는 "연구팀의 문화가 수직적이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우리 팀은 수평적인 문화가 지배적이다. 학술적인 부분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외 생활에서는 나이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으니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피력했다.

극한연구팀, 이들의 도전은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이기에 가치가 있다.

​"51대 49는 95대 5로 움직이는 것보다 불안해 보일 수 있지만, 집중과 통찰에 바탕을 둔 51은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앞선 연구자들이 닦아놓은 95라는 길에서 실패는 없겠지만 그저 그런 발견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죠. 연구자로서 가치 있는 도전에 있어, 51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연구팀은 앞으로도 극한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펼쳐 가장 앞선 측정기술을 확보하고 표준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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