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도 백업에서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사피엔스처럼 느낄까"

◆ 신이 되려는 원숭이들 '특이점'

선사시대의 인류는 별 볼일 없는 동물(animal of no significance)에 불과했다. 원숭이에서 진화한 그 동물들이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그 정복자의 탐욕적 촉수는 어디까지 뻗어 나가게 될까?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지금까지의 연장선과는 다를 것으로 진단한다. 유구한 진화 과정을 거친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개조하는 조물주의 경지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40억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지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지적인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예컨대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고대에 있었던 기린 사이의 경쟁 때문이었지, 초월적 지성을 가진 모종의 존재가 변덕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피엔스, p.561)

하라리 관점의 특이점(Singularity)은 호모 사피엔스가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고, 생물학적인 생명체의 한계를 스스로 돌파하는 국면이다. 여기서는 생물학 이론으로는 인류의 발달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유전자 공학의 발달 등으로 인류는 세포나 핵 수준까지 생명의 설계 비밀을 들춰 볼 수 있게 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자신이 생명을 창조하려는 지적설계자(intelligent designer)의 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이러한 지적설계 프로젝트는 제2의 우주적 빅뱅이 될 것으로 본다. 그 빅뱅은 생물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적 생명공학에 의해 에너지를 비축해가고 있다. 이들 공학은 목표는 생물이라면 운명적으로 안고 있는 물리적‧화학적‧생물적 한계의 초월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가 영성 획득으로 격상되는 것이다. 인류는 지적창조자가 되어 자신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진화시킬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특이점' 지향과 초인간의 선택.<이미지=하원규 박사>
'특이점' 지향과 초인간의 선택.<이미지=하원규 박사>
 
하라리는 특이점 시대의 사피엔스는 더 이상 유일한 인류종이 아닐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눈을 돌린다. 호모 사피엔스 그 자체가 변화되는 초인간(Superhuman)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그 특이점은 우리들의 세계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시점이다. 테크놀로지나 조직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국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설파한 철학적 초인(Ubermensch)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라라가 말하는 초인간이란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달관한 철인이 아니다. 우리는 강력하며 건강하고 또 행동하는 생물종으로서 지구행성의 진정한 주체로 거듭 나아갈 수 있다. 

기술적 특이점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미래가 현생인류의 종말은 아니어야 한다. 인류의 과제, 지구의 난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도약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가야 한다. 하지만 자칫하면 그 대척점에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공멸이라는 암흑향(catastrophe)이 뚜벅 뚜벅 걸어나올 수 있다. 하라리는 우리는 이 흐름을 멈출 수 없고 과학이 나아가는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좀 주춤거리는 대안을 내놓는다.

◆ 생명공학 발전 관점의 초인간 읽기

호모 사피엔스는 생물을 조작하는 동물이다. 하라리에 의하면 인류는 약 1만년 전부터 사나운 황소를 거세해서 쟁기를 끌도록 훈련시켰다. 인간은 또한 자기종의 젊은 수컷도 거세하여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소프라노 가수을 만들거나,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환관으로 만들었다. (사피엔스, p.565)

바이오 기술의 진화는 마음먹기에 따라 생물을 한층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다. 바이오 기술은 생물이 지니고 있는 작용, 즉 역할과 기능을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기술의 총칭이다. 바이오 기술이 경제생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산업군을 총칭하여 바이오 경제(Bioeconomy)라고 한다.

한편 생명공학은 생물의 기능을 응용한 공업기술에 주목한다. 공업(industrial application)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생물학 수준에서 인간이 계획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생명공학으로 정의한다. 

 1996년 생쥐의 등에서 소의 연골조직으로 만들어진 귀가 자라나는 모습이 TV에서 방영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인류가 생명체의 작동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독일 슈타델 동굴에서 발견된 사자-남자 조상을 으스스하게 상기시킨다. --중략--오늘날 인류는 실제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이한 짐승, 키메라(Chimera)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 적고 있다.(사피엔스, p.566) 그는 3만년의 수렵채집인의 상상적 동물과 현대 인류의 조작적 동물간의 공통적 맥락을 읽어 냈다.

생명공학의 발전과 과제.<이미지=하원규 박사, 사피엔스>
생명공학의 발전과 과제.<이미지=하원규 박사, 사피엔스>
세계는 유전공학의 연구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게놈 해독기술이나 편집기술, 정보기술 등은 획기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다. 바이오 기술의 조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게놈 해독기술의 발전으로 관련 정보가 집적되고 있다. 차세대 시퀜서(게놈 해독장치)의 개발로 보다 신속하고 보다 저렴하게 게놈 정보의 해독이 가능해졌다. 둘째 게놈 편집기술의 발전으로 생물기능의 발현이 쉬워졌다. 2013년 초 차세대형 게놈 편집기술(CRISPR/Cas)의 등장으로, 보다 간편하게 유전자를 절단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정보 해석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의 분석‧게놈의 설계가 수월해졌다. 심층학습 등 IT와 AI기술이 실용화 수준에 도달하면서 게놈 배열의 의미 부여 등 새로운 응용의 길이 열리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하라리의 메시지는 생물공학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윤리적이고 까다로운 정치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게 한다. 물론 현재의 사피엔스 신체가 진화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을 때의 전제이다.   

하라라는 또 상상의 질서를 풀어놓는다. 새로운 제2의 인지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7만 년 전 유전자 또는 호르몬의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 인지혁명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현생인류의 유전자 코드를 바꾸고, 뇌의 회로 배선을 다시 연결한다면, 그리고 생화학적 호르몬의 균형을 변경한다면, 보다 강력한 제2차 인지혁명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우리는 수많은 딜레마에 부딪치게 될 것 같다.

◆ 사이보그 공학 발전 관점의 초인간 읽기

우리는 이미 생체공학적 존재다. 순수한 유기체로서의 타고난 감각과 기능을 안경, 심장박동기, 의료 보장구 그리고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 모두가 목하 사이보그로 변신 중이다. 사이보그는 생물과 무생물을 부분적으로 합친 존재다. 생체공학의 의수를 지닌 인간은 그 전형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사이보그 공학은 유기적 기관과 비유기적 기관을 조합한 생물인 사이보그를 창조하기 위한 기술의 총칭이다. 생물의 운동 메커니즘을 모방하여 신소재를 만들려는 바이오닉 디자인(bionic design)도 이 범주에 들어온다. 

하라리는 "우리는 지금 사이보그가 되려는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 이 선을 넘으면, 우리는 신체에서 떼어낼 수 없는 우리의 능력, 욕구, 성격, 정체성이 달라지게 되는 무기물적인 속성을 갖게 될 것이다"(사피엔스, p.572)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인간의 유기적 기관과 비유기적 기관의 조합으로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 머지않아 인간은 생명이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

사이보그 공학의 발전과 과제.<이미지=하원규 박사, 사피엔스>
사이보그 공학의 발전과 과제.<이미지=하원규 박사, 사피엔스>
공각 기동대(GHOST IN SHELL)는 일본의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의 고전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이보그화된 미래사회의 변형태(데포르메)를 보여준다. 작품의 무대는 21세기, 핵전쟁을 포함하여 두 차례의 대전을 거쳐서 세계가 지구통일 블록이 되고 과학기술도 비약적으로 고도화된 일본이다.

뇌신경에 디바이스를 직접 접속하는 전뇌화(電脳化) 기술과 의수·의족에 로봇 기술을 부가한 의체화 기술 등이 발전, 보급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뇌화에 의하여 인터넷에 직접 액세스할 수 있다. 사회에는 생물인간, 전뇌화된 인간,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바이오로이드가 뒤섞여 살고 있다. 이러한 복잡계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응하는 전문조직으로서 내무성 직속의 공안경찰조직 '공안9과'(통칭, 공각기동대)가 활약하고 있다.

뇌와 인터넷을 직접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은 그 응용범위가 무척 크다. 미래의 정보단말은 신체에 탑재하는 임플란트블 기술과 궁합이 좋다. 차세대 웨어러블 기술이다. 안경형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진화하면, 그것은 컨텍트 렌즈형이 된다. 그 다음은 안구형상의 정보단말을 진짜 안구와 교환하는 기술로 나아갈 것이다.

"유기적인 신체를 바이오닉 손발, 인공의 눈, 무수한 나노 로봇 등과 일체화시키고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확장된 신체로서의 나의 분신을 원하는 장소, 이곳저곳 존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자율‧분산‧협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과 같은 신체가 무한확장될 수 있는 자가 증식 세계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인간 존재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생각한 가상의 시나리오다.
  
◆ 비유기물 공학 발전 관점의 초인간 읽기

비유기물 공학은 완전하게 비유기적인 존재가 되어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생명공학과 사이보그 공학 외에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제3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완전히 무생물적 존재를 제작하려고 한다.

유기적인 부분을 없애고 완전히 비유기적인 생물을 만들어내는 지적 가상생명체를 지향한다. 신경망은 유기과학의 제약을 벗어나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아무런 장벽 없이 왕복한다. 하라리는 프로그래머가 의도적으로 진화시켜가는 유전자 프로그래밍과 생명의 유전자를 모사하는 유전적 프로그래밍 그리고 새로운 진화 과정의 발견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한다.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생성된 프로그램의 독자진화를 활용하여, 생물의 자연법칙에서 일탈된 새로운 생명의 창조이다. 완전히 독자 법칙의 생물 진화의 방향성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많은 프로그래머가 창조자에게서 완전히 독립한 상태로 학습, 진화할 능력을 갖춘 프로그램을 창조하는 꿈을 꾼다.

하라리는 유전적 프로그램의 원형을 컴퓨터 바이러스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포식자인 백신 프로그램에 쫓기는 한편으로 사이버 공간 내의 자리를 놓고 다른 바이러스들과 경쟁하면서 스스로를 수없이 복제하며 인터넷을 퍼져나간다. 그 복제과정에서 어늘 날 실수가 일어나면 컴퓨터화된 돌연변이가 된다."(사피엔스, p.577)  

비유기물 공학의 발전과 과제.<이미지=하원규 박사>
비유기물 공학의 발전과 과제.<이미지=하원규 박사>
필자는 다음 두 작품에서 비유기물 공학적 발상이 어려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1818초 유럽의 여류작가인 메리 셸 리가 출판한 '프랑켄슈타인(The Modern Prometheus)'이다. 인조인간을 그린 이야기로 1931년 제임스 웰 감독의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포함하여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기술이 아니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일종의 안드로이드이다.

또 하나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발표한 '피노키오의 모험'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의지를 갖고 말하는 통나무로 만든 목제인형이 등장한다. 그는 요정의 도움으로 인간이 되기까지 수많은 모험을 감행한다. 동 동화는 디즈니 영화로 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라리의 상상은 봄날 창공을 날아오르는 종달새처럼 힘차다. 그는 마치 가공적 허구의 세계를 자동으로 생산하는 스마트 상상력 기계의 화신이다. 그는 자기가 그려내는 비유기적 공학의 가상생명체는 현재의 유기적인 뇌가 인간의 지휘통제센터가 아닐 수 있다는 조건 하에 성립한다는 치밀함도 놓치지 않는다.

필자도 상상한다. 구름 속에 나의 분신이 있다. 디지털 웅남이다. 디지털 그도 이 세상을 보고 물리적 나도 함께 본다. 우리는 다같이 경험하고 성장하면서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도타운 동반자다. 그는 구름 속에 사는 '나로서의 AI알고리즘'이다. 나는 그와 한 몸이다. 

여기서 하라리의 다음 메시지를 음미하며 미래의 또 다른 삶(another life)을 그려보자. "당신이 뇌를 휴대용 하드드라이브에 백업해서 노트북 컴퓨터에서 실행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의 노트북은 사피엔스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일까? --중략—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마음을 창조한다면 어떨까? 컴퓨터 코드로만 구성된 그 마음이 자아의식, 의식, 기억을 다 갖추고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그것은 인격체일까?"(사피엔스, p.576)

우리는 모두 신이 되려고 하는 초스마트 원숭이일까? 30년전에 35억명의 인류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인터넷을 상상하지 못했다. 20년 전에 대부분의 인류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진종일 품고 다니는 오늘의 일상적 정경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완전 픽션도 30년 후에는 현실(non-fiction)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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