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오타와대 교수 "도시 속 랩으로 사회에 과학 스미게 할 것"
"한국 과학계, 사회 설득할 수 있는 정체성 찾아야"
자신 연구 주제로 '플라이 룸' 발간, 번역서 아닌 과학자가 쓴 과학대중서 더 많아져야

김우재 교수는 '타운랩' 활동을 진행 중이다. 안정된 해외 국립대 교수직 대신 과학운동가, 사업가로 나선 것은 과학이 사회에 스며들며 새로운 과학문화가 형성되고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당장 교수직을 그만 둔것은 아니다. 2년정도 진행하면서 준비한 후 타운랩 사업을 본격 진행할 예정이다.<사진=길애경 기자>
김우재 교수는 '타운랩' 활동을 진행 중이다. 안정된 해외 국립대 교수직 대신 과학운동가, 사업가로 나선 것은 과학이 사회에 스며들며 새로운 과학문화가 형성되고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당장 교수직을 그만 둔것은 아니다. 2년정도 진행하면서 준비한 후 타운랩 사업을 본격 진행할 예정이다.<사진=길애경 기자>
어린시절부터 꿀벌이나 개미 등 곤충에 관심이 많았다. 평생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지금은 초파리 연구자로 행동유전학을 연구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초파리 연구자가 아닌 한국 과학계와 정부에 거친(?)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는 과학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김우재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 연말을 이용해 한국을 방문한 그는 사회와 과학을 잇는 '타운랩' 계획을 구체화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학자만의 과학이 아니라 학생, 시민 누구나 연구하고 싶고 궁금한 과학을 직접 실험하며 논문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심 속 랩이다.

캐나다에서는 재직중인 대학의 연구 과제로 이미 타운랩을 진행 중이다. 시민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김 교수는 과학이 사회에 스며들때 과학도 사회도 발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의 '타운랩' 계획을 들은 지인들도 기대감을 표했다.

◆"유행 따르는 연구 하지 않는다"

김우재 교수는 연세대에서 생물학 학사, POSTECH(포스텍)에서 분자 바이러스학으로 석박사를 마쳤다. 

학사를 마친 모교에서 어릴적부터 꿈이었던 동물행동학 연구를 하기 위해 많은(그는 모든 논문을 읽었다고 표현) 논문을 읽고 준비했다. 하지만 기회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1999년 한국은 IMF로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그의 집도 기울며 사립대 대학원의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됐다. 설상가상, 모교는 대학원생 지원 프로그램에 탈락하며 그가 잡고 있던 한가닥 희망도 날아갔다. 악재가 겹쳤다. 그가 사사를 원했던 교수도 그에게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POSTECH를 추천했다.

"POSTECH에서 선충을 연구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안됐어요. 생명체 연구 대신 바이러스를 해보자고 했는데 재미를 찾지 못해 방황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대학의 교수님과 매주 논문 읽고 토론하면서 분자 생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관련 책을 다 읽었어요. 학문의 역사를 알면서 해야 할 연구의 뿌리를 찾고 학문적 정체성도 확립된 것 같습니다."

그는 한걸음 더 나가서 대학원생 중심 '포항 생물학' 이라는 소그룹을 만들었다.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고전강독해 그룹도 만들며 토론을 이끌었다. 우울했던 학문적 좌절도 극복했다.

김 교수는 "분자 생물학을 기반으로 원래 하고 싶었던 행동학도 해보자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자신감을 가지면서 운도 따랐다. 미국에서 포닥을 했는데 초파리의 행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창시자 제자인 유넝 잔에게 사사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잔 교수님은 '유행하는 과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했는데 그분의 연구 철학이었다"면서 "지도 교수님의 영향을 받은 때문도 있지만 스스로 철학도 유행을 쫓는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세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초과학 미래 밝지않아, 누구나 과학자 될 수 있는 토양 필요"

그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캐나다 국립대인 오타와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초파리의 행동을 연구한다. 사진은 그의 랩 로고.<사진=길애경 기자>
그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캐나다 국립대인 오타와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초파리의 행동을 연구한다. 사진은 그의 랩 로고.<사진=길애경 기자>
김 교수는 관광도시로 잘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랩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를 했다. 초파리 행동 연구에 빠진 그는 샌프란시스코 관광을 한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집중했다.

캐나다 국립대 교수로도 임용됐다. 토종 과학자로서 현지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나름 성공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또 다시 우울감이 들기도 했단다.

"과학 예산이 암, 치매, 줄기세포 등 응용 가능한 연구에만 집중되면서 기초과학은 지원이 점점 줄고 일자리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과학자가 해야 할 연구가 아니라 예산을 주는 쪽의 연구만 해야하는 상황이죠.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더욱 갈 곳이 없어지고. 대학생 숫자가 줄면서 대학 교육은 더욱 어려울 것이고요."

그가 보는 과학계, 이공계 대학의 미래는 밝지 않다. 국내 이공계 대학은 이미 지원 대학원생 부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은퇴 후 하고 싶었던 '타운랩' 계획을 앞당기기로 한다. 시민과학으로 일반인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젊은 연구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과 사회를 잇게 된다. 과학이 사회에 스미는 셈이다.

그는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이 있는 것처럼 도심 마을마다 실험실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기초 연구자는 시민과 과학을 잇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가 될 것이다. 미래 과학의 토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캐나다에서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실험실 장비는 3D프린터로 만들 수 있어 고가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서 "수험생을 위한 랩부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랩까지 다양한 랩을 구상했다. 이를 통해 과학이 사회에 스미들고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과학계, 스스로 정체성 찾아야

"사회는 엔지니어가 사라지면 당장 혼란스러워집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가, 미술가, 정치인, 과학자 없어져도 잠시 어수선하겠지만 사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한국 과학계는 투자하면 언제가 성과가 나온다며 예산 투입을 강조하는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한국의 과학계는 진지하게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김 교수는 과학이 사회에 스며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과학이 없어도 당장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지 않지만 구조과학이 없으면 무너질 수 있다. 이처럼 과학의 존재가치를 정면돌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회에 과학이 스며들며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한국은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겉돌고 있다"면서 "과총이나 과학문화축전 예산을 젊은 과학도에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우재 교수의 책 '플라이룸'<사진=대덕넷 DB>
김우재 교수의 책 '플라이룸'<사진=대덕넷 DB>
김 교수는 사회적 이슈에도 과학자로서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 그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광우병 사태시기. 전 국민이 혼란에 빠질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지만 과학자적 입장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누구도 하지 않으면서다.

과학계를 전리품으로 대하는 정권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은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창립멤버로 과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대중적 글쓰기도 활발하다. 연구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지만 한국 과학계의 과학문화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을 쪼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자신의 연구분야를 주제로 한 '플라이 룸(출판 김영사)'을 출간했다.

그는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로 이야기할 때 과학대중서가 된다. 그래야 과학 교양시장이 번역서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만의 시스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익, 과학과 사회 발전을 위한 의견을 제안할 통로도 없다. 그러면서 정권마다 줄서는 과학자들이 반복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하며 "과학과 정치가 굴욕적으로 연결돼 있다. 과학자도 나만을 위한 한자리가 아니라 과학계 시스템이 발전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과학계가 이용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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